창비주간논평
잡아먹힌 사람들의 이름
노동자들은 도로를 파고 통신회사의 데이터센터로 가는 전용 전선을 묻고 있었다. 작업시간은 5시까지인데 이미 6시가 넘었다. 길은 어두워졌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시작되면서 사거리는 붐볐다. 이들은 사거리의 한갈래, 왕복 5차선 도로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전선을 묻고 땅을 다지던 롤러가 잠시 멈췄다. 롤러 옆에는 주황색 안전고깔이 있었다. 고깔이 롤러의 바퀴에 끼었다. 운전자는 잠시 내려 고깔을 빼내려고 롤러의 기어를 중립에 놓았다. 운전자가 롤러에서 내리는 순간 옷깃에 기어가 걸렸다. 롤러는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했다. 운전자는 롤러에서 떨어졌고, 롤러 바로 앞에 있던 노동자 세명이 그대로 치였다. 세명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라지만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한번의 사고는 수차례의 메시지를 보내 경고한다. 읽지 못했거나, 읽지 않았을 뿐이다.
지역의 활동가들이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는 이 사고의 이름을 쉽게 명명하지 못했다. 지역의 이름을 넣느냐, 원청의 이름을 명시하느냐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보도자료를 내보낼 때 외에는 지역 이름도 빼고, 기업의 이름도 뺐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지역의 이름이 들어가는 걸 반대했고, 가해자의 범법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였다.
대책위는 사고 현장에 분향소를 세웠다. 사고 현장 바로 앞에 위치한 식당 주인의 배려가 있었다. 시에서는 장례식장을 꾸리게 돕고 시장이 조문을 갔다. 안타까운 죽음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쓰인 포스트잇과 국화, 막걸리가 놓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촛불을 켜고 추모식을 열었다.
경찰 조사는 빠르게 시작되었다. 발주자는 대기업 통신사였고 이 일을 건설회사가 맡았다. 건설회사는 다시 하도급 업체에게 직접 공사를 맡겼다. 희생된 사람들은 하도급 업체의 인부들이었다. 대책위에서 원청 기업에 연락을 했으나 기업에서는 만나주지 않았다. 대책위는 시의원들을 만나, 해당 지역 관청의 관련 부서를 찾아가 허가권을 내준 책임을 물었다. 담당 부서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모든 공사 현장을 전수 조사하고, 작업시간을 어기며 늦게까지 일한 정황도 파악했다. 유족과 기업 사이에서 보상 문제도 중재했다. 정치인들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공언했고 법안을 바꾸겠다고도 했다. 원청에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예상대로 롤러 운전자가 가장 먼저 구속되었고 불법하도급에 관한 경찰 조사가 이어졌다. 대책위는 원청 기업 사옥에 찾아가 규탄 시위와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끝까지 책임자는 만나보지도 못했다. 사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두달여 앞둔 터에 벌어졌다.
소설가 김훈이 중대재해 사고에 부쳐 “낙엽처럼 떨어지”는 목숨들이라고 한 말이 자꾸 떠올랐다.(「아, 목숨이 낙엽처럼」, 한겨레 2019.5.14.)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라고 썼던 그의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서 어른거렸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는 재해에 관한 자료가 있다. 재해 유형에 따라 검색도 가능하다. 재해 유형은 다음과 같다. 떨어짐, 끼임, 부딪힘, 깔림, 뒤집힘, 물체에 맞음, 교통사고, 무너짐, 폭발, 파열, 감전, 넘어짐, 화재, 화학물질 누출·접촉, 절단, 베임, 찔림, 직업병, 진폐, 빠짐, 익사, 산소결핍, 사업장 내 교통사고, 이상온도 접촉,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동물상해, 체육행사 등의 사고, 작업관련질병, 폭력행위, 기타, 분류불능. 산업재해 사망사고 사례를 읽으며 동사만 찾아본다. 추락해, 매몰돼, 깔려, 끼어, 떨어져, 덮쳐, 부딪혀, 쓰러져, 넘어져, 맞아, 빨려 들어가. 동사는 반복된다. 2021년 한해 동안 2,146명의 산업재해 사망자가 보고되었다.
당시 중재에 나섰던 관련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은 사건이라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없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됐으니 이제는 원청이 책임을 지게 될 거예요. 그러면 저희도 더 철저히……” 나는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단어를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가 엑스 자를 여러번 그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고용관계가 명확한 노동자에게 해당된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을 규정한다. 다시 말하면, 고용관계가 불명확한 노동자는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주로 산업 현장이 그렇다. 산업 현장은 문명의 이기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돌아간다. 좁은 면적에 더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 더 빠른 통신망을 제공하기 위해서, 더 많은 전기를 만들려고,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Citius, Altius, Fortius)를 위해.
사건이 있기 몇달 전, 연일 폭염이 이어지던 여름에 우리 사무실 앞 도로에서도 같은 발주사가 시행한 공사를 했다. 도로를 깨고 뭔가를 묻고 다시 덮었다. 점심시간엔 공사 현장 노동자들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죽은 사람들과 롤러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대다수가 중년을 훌쩍 넘긴 남자들이었다.
도시의 하천에 내려와 밤늦게까지 웅크리고 있다가 물고기 한마리를 잡아먹는 해오라기의 영상을 본다. 몇시간이고 기다려 배를 한번 채웠다. 인간은 배가 불러도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가려고 다른 사람을 잡아먹었구나. 잡혀서 먹힌 사람들은 사고 현장과 재해의 이름으로 남았다. ‘롤러사고 사망자’처럼. 분향소는 철거되었고 이들이 도로를 파헤쳤던 이유인 데이터센터는 내후년에 준공될 것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갈수록 증가하는 기업데이터센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짓는단다. 거기에도 수많은 노동자가 투입될 것이다. 건물의 연면적과 목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건물을 짓기 위해 일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하나 /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문화공동체 히응 대표, 집필노동자
2022.2.1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