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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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정치교체의 시간표

강경석

결국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0.73%라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저 득표차였다. 승패를 떠나 모두를 생각하게 만드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촛불대항쟁으로 치러진 19대 대선에 맞먹는 투표율로 볼 때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주류미디어의 선(先)규정은 고의적 여론 왜곡이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정권심판 대 정권유지'라는 기본구도 또한 정치공학적 타성이 만들어낸 허구였음이 밝혀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현 정권을 심판하되 승자의 폭주도 가로막은 결과라는 일각의 해석 또한 반만 맞고 반은 놓친 안이한 판단일 것이다. 여소야대라는 조건 아래에서 새 정부의 폭주가 이미 예정된 것처럼 단언할 근거도 부족하지만 선거결과를 통해 폭주의 가능성이 완벽히 차단되었다고 말할 근거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행 정치제도하의 대통령 권력은 막강하다. 게다가 당선인 스스로가 자신은 정치신인이기에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고 여의도 문법 따위는 모른다고 선거기간 내내 강조해왔던 터다. 이러한 자기인식이 협치와 독주의 두 가능성을 모두 지닌 것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오히려 유권자들이 차단하려고 했던 것은 정권재창출이 이뤄졌을 경우 발생할지 모를 민주당의 일방독주 가능성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지난 총선 이후 민주당 정권이 실제로 일방독주를 자행해온 탓에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다는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도로 따져볼 문제이지만, 선거 막판에 꺼내든 촛불혁명의 정신과 그 구체적 실현방법의 하나로 제시된 정치교체론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유권자들의 의구심을 온전히 불식시키는 데 실패했다. 다당제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골간으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긴 했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신뢰의 근거보다 불신의 계기들이 미친 여파가 크게 와 닿았던 셈이다.

 

민주당의 정치교체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의구심이 끝내 말끔히 걷히지 않은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정치교체론의 등장 자체가 너무 늦었고, 둘째는 지난해 4·7재보궐선거에서 애초의 약속을 깨고 서울과 부산에 후보 공천을 강행한 전력이 있으며, 셋째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소수정당들이 주도한 정치개혁법안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보수야당과 함께 비례위성정당 설치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물론 반촛불세력의 선공을 저지한다는 명분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역순으로 나열한 일련의 과정에서 비례위성정당 문제는 일종의 ‘원죄’에 해당한다. 0선의 거대야당 대표가 등장하고 국회경험이 전혀 없는 양당 유력 대선주자가 선출되는 이변의 연쇄는 명백히 국회불신, 즉 정치교체에 대한 국민적 여망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촛불민심의 향배를 정확히 읽고 총선 당시부터 민주당이 위성정당의 유혹을 뿌리치며 정치개혁에 진정성을 보였다면 좀더 명분있게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차후 대선 캠페인 기간 중 정의당 등 진보 소수정당들과 더욱 긴밀한 연대를 모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졸고 「촛불국회를 만들 차례다」, 창비주간논평 2020.2.19 참조). 그러나 대선 구호로서 정치교체론이 늦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데서도 짐작되듯 민주당은 마지막까지도 정치적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후련히 떨쳐내지 못해 시간을 허비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다르다’는 선언과 뒤늦은 호소만으로 불신의 그늘을 벗어던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라는 의제설정 자체는 촛불민심을 정확히 반영했고 또 일정하게 효력을 지닌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보수야당이 소위 프레임 전환을 위해 서둘러 야합에 가까운 후보 단일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만 보아도 역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정치교체라는 의제도 촛불혁명 정신을 제도화하는 중대한 일부이지 그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다른 모든 개혁의제들이 질서있게 수행되기 어렵고 촛불혁명으로 다양하게 분출된 정치적 의사들을 제대로 반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헌법적 제도와 절차를 최대치로 존중하면서 그 혁신을 추구하는 촛불혁명의 유례없는 점진적·합헌혁명적 특성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도 명확히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반촛불세력이 정권을 탈환했다. 촛불대항쟁으로 시작된 촛불혁명은 일차적으로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교체의 요구를 포함한 것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그러한 정치교체는 일단 실패했다. 민주당의 선거 패배로 진행 중이던 촛불혁명도 심대한 타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패배가 곧 촛불의 패배는 아니다.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교체가 반촛불세력의 역공과 민주당정권의 자충수로 실패했다면 이제는 정치교체를 통한 정권교체로 새로운 촛불정부를 세우는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전체 유권자들의 반신반의, 그러나 의심 쪽이 더 높았던 지형이 이러한 선거결과를 낳았던 셈이니 이번 선거결과를 규정한다면 윤석열 현 당선인이 이기고 이재명 전 후보가 진 선거라기보다 유리한 여건 속에서도 전자가 질 뻔했고 불리한 환경 아래서도 후자가 이길 뻔했던 선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범진보진영의 득표 합계가 처음으로 보수진영의 합계를 넘어서기도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여전히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오히려 이번 선거로 단기 목표가 명료해진 측면이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정신승리’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촛불시민들은 각자에게 촛불이 무엇이었는지 자기인식을 심화해야 할 단계이고 172석의 민주당은 패인을 정확히 통찰하고 빈틈없는 정치교체의 시간표를 마련할 때다. 지금 주어진 조건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계기가 되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거기에 달렸다.

 

 


강경석 / 문학평론가

2022.3.1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