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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중독과 우크라이나 전쟁, 한국도 책임있다: 러시아의 침공을 막을 강력한 방법

한재각

러시아 푸틴의 기대와 달리,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군사작전’은 빨리 끝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든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에 가득 찼든 서로를 향해 죽음을 퍼붓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목숨을 잃고 도시들은 파괴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에게 재앙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전세계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운 이 전쟁이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단지 독재자 푸틴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러시아를 적으로 삼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장과 동진이라는 배경을 보지 않고는 이 전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전쟁 자체를 가능하게 한 화석연료체제를 언급하지 않고서 해결책을 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대표가 “인간이 유도한 기후변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화석연료와 이에 대한 우리의 의존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 이유다.

 

러시아의 침공 직전, 직접행동을 통해 기후생태위기와 싸우고 있는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의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화석자본들과 싸워줄 것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들은 푸틴 정부가 전쟁 자금을 확보하는 데 있어 화석연료 수출 수익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 발발 이후에는 57개 국가의 600여개가 넘는 단체들이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 금지와 투자 중지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실제로 러시아에서 화석연료 산업의 비중은 막대하다. OECD에 따르면 러시아 산업생산액에서 화석연료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8.9%에 달하며(2018년 기준), 수출액의 63.2%에 이른다(2017년 기준). 정부 세입에서 석유와 가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2020년 28%를 유지했다. 또한 러시아는 서유럽으로 연결된 거대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언제든 잠글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유럽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움켜쥐고 있기도 하다. 가령 재생에너지 강국 독일도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과도기 에너지원으로 천연가스에 의존하면서 러시아에게 뒷덜미를 내주었다. 과감하고 빠른 에너지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유럽 국가들의 주장 속에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을 줄이려는 안보 욕구도 포함되어 있지만, 유럽연합은 정작 그린뉴딜을 위한 녹색투자 대상에 천연가스도 포함시키면서 엇박자를 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만이 아니라 모든 화석연료 사용을 빠르게 중지해서, 지정학적 안보뿐 아니라 기후위기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세계 단체들의 공동성명서는 유럽연합, 중국, 미국 등과 함께 한국을 명시적으로 지목하며 러시아로부터 화석연료 수입을 중지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는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 러시아산 화석연료의 상당량을 한국이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러시아의 원유 수출국으로서 한국은 4위에 해당한다(2020년 금액 기준). 한국 입장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하다. 한국이 수입하는 에너지·원료 중 러시아산의 비중은 나프타 23.4%(1위), 원유 6.4%(4위), 천연가스 6.7%(6위)에 달한다. 석탄의 의존도도 증가하여 2021년 기준으로 유연탄은 수입량의 16.3%, 무연탄은 40.2%가 러시아산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누가 러시아로부터 화석연료를 수입하고 있는 것일까? 관련 기업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공개된 국내외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사는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다. 보도에 따르면 SK에너지는 2017년 러시아 최대 민영석유회사인 루크오일과 시범적인 원유 수입계약을 맺었다. 천연가스 수입은 가스공사와 민간발전사들이 하고 있다. 민간발전사들의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공기업인 가스공사는 러시아 최대 가스기업인 가스프롬과 사할린 천연가스의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있음이 알려져 있다. 가스공사는 2009년부터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해, 2020년에는 전체 수입물량 중 5%를 러시아로부터 들여왔다. 석탄 수입은 한전의 발전자회사와 포스코 등 민간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료용은 아니지만 석유화학산업의 기초원료가 되는 나프타 수입도 상당한데, 관련된 석유화학 회사로는 SK이노베이션, 롯데케미칼, 에쓰-오일, 금호석유, DL, 대한유화, SK디스커버리, SK가스, 삼표시멘트, 이수화학 등이 있다.

 

이들 한국 기업의 목록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러시아 침공으로 타격을 받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야 할 기업들의 목록일까, 아니면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화석연료 중독을 끊기로 결심하면서 그 의미가 사라지기를 기대할 명단일까? 미국은 러시아의 화석연료 수입 중단을 선언하며 제재 조치에 나섰고, 유럽연합은 2027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끊겠다는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다른 산유국은 증산을 논의하고, 석유기업들은 높아지는 유가 덕에 돈을 쓸어 담고 있으며, 미국의 가스 수송선은 러시아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대신해 대서양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다. 재앙자본주의가 어김없이 작동 중인 것이다. 이를 보면 저 명단은 비극 속에서 돈과 함께 부정의가 어디로 흘러들지를 보여주는 안내도로 여겨진다. 정부와 언론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제 및 고유가의 여파로 충격을 받을 국내 기업과 물가에 대한 걱정부터 앞세울 뿐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냈고, 언론은 난방 온도부터 낮추자고 제안한다. 침략전쟁을 끝내기 위해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끊어달라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호소나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전세계인들의 주장은 그 귓가에 가닿지 않고 있다.

 

IPCC 회의에서 기후위기와 우크라이나 침공이 모두 화석연료체제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 우크라이나 대표는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또한 우리는 세계가 기후친화적인 미래를 건설하는 데 있어 굴복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멸종반란’과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의 각국 조직들은 가스프롬을 비롯한 전세계 기업들을 향해 화석연료의 생산과 공급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직접행동을 준비 중이다. 우크라이나인들과 연대하고 지구의 미래를 지키려는 행동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미 시민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였다. 다음에는 SK에너지, 가스공사, 한전 발전자회사 앞으로 몰려가 수입을 중지하라고 요구할 수 없을까? 공기업인 가스공사와 발전자회사의 노동자들이 이 시민들 앞에서 러시아산 화석연료, 나아가 모든 화석연료의 사용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가 항복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한재각 / 기후정의활동가

2022.3.1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