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우영우도 채 몰랐을 돌고래 이야기: 남방큰돌고래 그린워싱
지난 4일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야생방사를 위해 제주 대정읍 바닷가의 가두리로 들어갔다. 몸을 찰싹 때리는 차가운 파도, 짠내 나는 서늘한 바람을 비봉이는 17년 만에 느껴봤다. 아니, 처음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비봉이는 2005년 제주 비양도에서 불법 포획됐을 때 불과 네댓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고향 바다로 돌아가는 비봉이의 첫발을 축하했다. 때마침 인기를 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덕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비봉이 이야기의 전부일까? 국민적인 환호 속에서 진행된 비봉이의 야생방사에는 비화가 숨겨져 있다. 조금 어렵고 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국 돌고래 세계의 태초에 ‘퍼시픽랜드’(1986년 개장 당시 로얄마린파크)라는 수족관이 있었다. 서울대공원 해양관에 이어 국내에서 두번째로 문을 연 돌고래수족관이었는데, 퍼시픽랜드는 얼마 안 돼 돈 벌 묘안을 짜낸다. 일본에서 수천만원을 들여 돌고래를 사오는 대신 제주 바다에 사는 남방큰돌고래를 직접 잡아서 쇼를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90년 제주 남원 앞바다에서 돌고래(이 돌고래는 나중에 서울대공원으로 팔려 가 ‘차돌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다)를 포획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41번 돌고래(D-41)까지 26마리를 잡아 돌고래쇼에 동원했다.
보통 수족관에 잡혀 온 돌고래에게는 냉동생선을 먹인다. 돌고래는 활어를 먹고 살았기 때문에 냉동생선을 먹을 줄 모른다. 마치 우리가 밥을 먹다가 생쌀을 먹으라고 하면 먹지 못하듯이 말이다. 수족관은 돌고래가 냉동생선을 먹을 때까지 굶긴다. 보통 일이주가 지나면 돌고래는 살기 위해 냉동생선을 받아들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돌고래쇼를 배우지 않으면 냉동생선도 없다. 우리는 돌고래쇼를 보면서 박수 치며 즐거워하지만, 사실 그 시간은 돌고래들에게는 점심시간이다. 이렇게 ‘야생의 몸’은 ‘수족관의 몸’으로 개조되어 간다(이를 포함한 돌고래쇼의 역사에 대해선 필자의 졸고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한겨레출판 2018)에 나와 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해양경찰청은 2011년 퍼시픽랜드의 불법 포획 사실을 적발했고,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대공원에 팔려 와 쇼를 하던 ‘제돌이’의 야생방사를 발표한다. 다음에는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 태산이가 바다로 돌아가 야생 무리에 합류했다. 정부와 민간 협력으로 이렇게 많은 수족관 돌고래를 내보낸 사례가 어디에도 없다. 법제도도 바뀌어 이제는 전시공연용 돌고래를 반입하지 못한다. 한국은 명실공히 돌고래 복지 선진국이 되었다.
한국의 돌고래수족관 산업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때 건설자본인 호반그룹이 퍼시픽랜드에 눈독을 들인다. 호반그룹은 퍼시픽랜드를 부수고 그 자리에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지을 생각이었다. 이런 계획을 세우자, 호반으로선 하루빨리 돌고래를 내보내야 이득인 상황이 되었다. 지난 5월 호반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된 퍼시픽랜드(이후 퍼시픽리솜으로 사명 변경)는 환경부에 신고도 없이 일본산 큰돌고래 두마리를 거제씨월드로 보내버린다. 이를 알게 된 환경부는 퍼시픽리솜을 고발했다. 들킬 걸 뻔히 알면서도 퍼시픽리솜이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부가 반출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돌고래는 옴짝달싹 못하고, 리조트 건립은 차일피일 미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퍼시픽리솜에 남방큰돌고래는 비봉이 단 한마리만 남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야생방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퍼시픽리솜은 태도를 돌변해 비용까지 부담하겠다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지난 6월 해양수산부와 ㈜호반호텔앤리조트, 제주대학교,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비봉이 해양방류를 위한 협약서’를 맺으면서 비봉이가 바다로 나가게 된 것이다. 협약은 환경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운동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사정도 있었다.
그런데 협약서를 살펴보니 허점이 있었다. 호반그룹은 비봉이가 가두리를 떠나는 순간까지만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야생방사 후 비봉이 모니터링 비용은 해양수산부가 부담하기로 했으며, 야생방사 실패 시 비봉이를 회수해 다른 수족관으로 이송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하지만 야생방사의 모든 비용은 호반이 내는 게 맞는다. 돌고래 29마리를 불법 포획해 돈을 벌던 수족관을 이어받아 운영했고, 이제는 그 부지에 대규모 리조트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호반이 ‘손 안 대고 코 풀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심지어 호반은 남방큰돌고래 야생방사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얻었다. 이런 것을 ‘그린워싱’(green washing, 어떠한 행동을 그 본질적 목적과 다르게 친환경적으로 포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호반이 진정성을 가지고 야생방사에 임한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돌고래를 빼돌린 것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제돌이, 삼팔이, 춘삼이, 태산이, 복순이. 우리가 바다로 내보낸 돌고래들이다. 삼팔이와 춘삼이, 복순이는 건강하게 새끼도 낳았다. 하지만 잊힌 돌고래들도 있으니, 바로 금등이와 대포다. 이들 또한 2017년 대대적인 조명을 받으며 바다로 나갔지만 방사 직후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강한 연안 정주성을 보이는 남방큰돌고래가 5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띄지 않는다면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시 야생방사에 참여한 해양수산부, 서울시, 환경·동물단체 모두 ‘불편한 진실’을 말하길 꺼렸고, 이 실패 사례에 대해선 진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 금등이, 대포는 어렸을 적 잡혀 와 수족관에서 20년을 살았다. 야생방사의 실패와 회수까지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비봉이가 금등이나 대포와 마찬가지로 너무 오랜 기간 수족관에서 살아 자립에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비봉이의 야생방사를 반대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사건은 입체적이며, 이를 인식해야만 외골수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제돌이의 방사 성공에 가려진 금등이, 대포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우영우와 더불어 비봉이의 야생방사에 환호할 때 한편에서는 불법 포획한 돌고래로 돈을 번 업체가 이번에는 돌고래를 풀어주어 이득을 취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비봉이의 고향으로의 여행이 부디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빈다. 그래야만 ‘남방큰돌고래 그린워싱’ 따위는 아랑곳없이 모두가 기쁨과 위안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남종영 / 기자, 한겨레 기후변화팀
2022.8.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