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집회라기보다는 축제 같았던, 924기후정의행진
지난 9월 24일, 서울 시청과 남대문 일대에서 3만명이 모여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이미 기후위기는 기후재난으로 세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밀려와 반지하 집 현관문 밖에까지 도달해 있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에 대해서 깊은 우려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이제는 재난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무력감에 빠져들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의 부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분노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사회적 감정들이 수많은 이들을 거리에서 함께 행진하도록 만들었다. 참여자들은 함께 행진하는 동료 시민들을 만나 위로를 얻고, 함께 듣고 외치는 연설과 구호로 무력감을 떨쳐냈으며, 함께 부른 노래와 춤으로 희망의 가능성과 낙관을 얻을 수 있었다. 한 언론이 “집회라기보다는 축제 같았다”고 묘사한 것처럼, 기후위기의 어두운 절박함 속에서도 즐거운 웃음이 가득한 행진이었다.
이번 행진은 2019년의 ‘기후위기비상행동’ 이후 3년 만에 이루어진 대규모 행동이었다. 2019년에는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대응할 것을 요구하였다면, 이번에는 기후위기의 불평등을 부각시키며 ‘기후정의’를 요구했다. 2019년 행동으로 정부와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내세우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고 선언했지만 말뿐이었다. 기후부정의의 해결은 고사하고, 온실가스 감축의 시도조차 부실했다. 오히려 ‘탄소중립 휘발유’와 같은 기업들의 그린워싱만 횡행할 뿐, 석탄발전소의 건설은 계속되고 새로운 공항 건설도 추진되었다. 폐쇄되는 석탄발전소의 노동자들은 충분한 정보 제공이나 의사결정 참여 기회도 없이 일자리 상실의 위협에 내몰렸고, 민영화된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농민들은 땅을 빼앗겼다. 코로나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불평등을 겪은 후 다시 모이는 자리가 3년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3만여명이라는 참여자 규모는 3년 전 서울 대학로에서 모인 5천여명에 비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후정의운동의 외연도 훨씬 넓어졌다. 3년 전 행동이 환경단체들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환경뿐만 아니라 노동 농민 반빈곤 평화 장애인 성소수자 복지 보건의료 종교 문화예술 진보정당 등 한국사회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영역의 단체들이 조직위에 참여했다. 5천여명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행진 참여만이 이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다. 집회 무대, 행진 차량, 오픈마이크에 앞에 선 여러 발언자들은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의 다양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기후정의운동의 구성을 드러내주었다. ‘이것(기후위기)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했던 네이오미 클라인(Naomi Klein)의 분석을 기후정의운동의 다양한 구성과 폭넓은 연대로 구현해낸 것이다. 언론이 기후행동을 환경단체의 연대로만 설명하는 관습은 점차 실체에서 벗어난 ‘오보’가 되고 있다.
요구하는 바도 달라졌다. 3년 전에는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배출제로 계획을 수립하며, 독립적 법국가기구를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형식적으로나마 이를 수용했지만 ‘현상유지’로 버무려진 ‘녹색성장’의 길을 놓았을 뿐이다. 기후운동의 말은 보다 비판적이고 근본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은 기후위기가 온실가스를 뿜어대는 화석연료 때문만이 아니라고 평가하고, 근본적 원인은 자연과 인간을 희생시켜 더 많은 상품을 만들고 팔아치워 이윤을 쌓는 ‘체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체제는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과 생명파괴라는 겉모습을 띤 ‘자본주의 성장체제’라고 규정했고, 그 안에서 발생한 불평등이 기후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명시했다. 따라서 우리의 요구는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의 종식’과 ‘모든 불평등의 철폐’가 되었다. 거기에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마침내 “우리가 길이고, 우리가 대안”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조직위의 이러한 요구와 선언은 행진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재확인되었다. 집회와 행진 곳곳에서 ‘자본주의를 철폐하자’ ‘체제전환이 필요하다’는 연설과 구호가 쏟아져 나왔다. 신공항 계획에 맞서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 수라갯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한 연사는 연단에 올라 기후붕괴를 막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를 철폐하여 모든 억압과 착취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서로를 해방하는 새로운 세상, 용기 내어 함께 만듭시다!” 예외적이고 돌출적 발언이 아니었다. 많은 참여자들도 크게 호응하고 박수를 보냈다. 무력감을 이겨내고 (순간이지만) 해방의 거리에서 터져 나온 뚜렷한 흐름이었다. 지금까지의 운동으로는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반성과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갈망이 만나 이루어진 것이다.
기후정의행진은 큰 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기후정의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더욱 과감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현 체제에 저항하는 일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는 더 나아가 체제전환의 대안을 찾아나서는 실험과 토론에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력을 부여할 것이다. 두어 계단 위로 성큼 올라서니 새롭게 부각되는 과제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너무 급진적이어서 대중과 괴리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부터, 급진적 구호가 난무했지만 적대할 구체적인 대상과 요구가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까지. 이제 기후정의운동은 새로운 활력으로 이를 마주하고 해결해가야 한다. 많은 이들이 행진에 앞서 한번의 대규모 행동으로 위기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 냉정하게 전망했다. 타당한 이야기이지만 이번 행진이 만들어낸 변화 앞에서 깍쟁이처럼 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변화가 무엇인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로부터 사회적 힘을 끌어올려 과감히 다음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우선, 이 감동을 즐기고 나누기부터 한 후에.
한재각 / 9월 기후정의행동 공동집행위원장
2022.10.0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