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가족관계의 본질과 국가의 책임을 묻다: 자녀가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판결에 붙여
자녀에게 무관심하거나 정서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자녀와 민주적인 관계를 맺고 돌봄에 정성을 쏟는 ‘아버지’였던 어머니 중에서 국가는 누가 자(子)의 복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하는가? 우문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시민적 지위가 흔들리거나 양육자로서의 자격이 박탈되지 않는데, 후자는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로 살아가는 것 자체를 제한당하고 당사자들이 서로 인정하는 방식대로 관계 맺도록 허락받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기준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로 살아갈 권리, 그와 관계된 타인의 권리, 가족을 구성할 권리 사이에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지난 11월 24일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2006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을 허용 결정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판단할 때 어떠한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예시를 제시한 바 있다. 대법원 판례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만 19세 이상의 성년자로 행위능력에 제한이 없을 것, 2) 현재 혼인 중이 아니고 미성년자 자녀가 없을 것, 3) 성전환수술을 받아 생식능력을 상실하였고 신체 외관이 전환하고자 하는 성으로 바뀌었을 것, 4) 범죄, 탈법행위 이용 목적 등 성별 변경에 지장이 되는 사유가 없을 것. (자세한 내용은 트랜스로드맵 참고)
2006년 당시에는 부모의 동의서 또한 추가로 요구하였으나 2019년 8월 21일에 폐지되었고, 2020년에는 성별정정 신청을 위한 ‘첨부서류’와 ‘조사사항’이 ‘참고서면’과 ‘참고사항’으로 바뀌었다. 이는 앞서 대법원 판례를 통해 제시된 내용이 한 사람의 성별정정에 있어서 허용과 불허의 기준이 아니라 참고해야 하는 사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하급심 법원에서는 이런 참고사항을 사실상의 허가 기준으로 삼아왔기에 트랜스젠더의 기본적 권리, 성과 재생산 권리, 가족구성권 등을 침해한다.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성별정정을 불허한 2011년 이후 11년 만에 판례가 바뀐 것이다. 다만 ‘참고사항’에서 완전히 제외한 것이 아니라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성별정정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개별 신청자의 구체적인 사항을 감안하여 종합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부모동의서 폐지처럼 기준 자체가 바뀌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이번 대법원의 결정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권에 대한 고민을 진척시켜나갈 수 있는 중요한 쟁점이 도출되었다.
더욱 진전된 논의를 위해서는 다시 한번 한국사회의 신분제도와 가족제도의 근본적 관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를 위해 확립되어 건국 이후 신분제도로 기능해왔던 호주제가 2005년 헌법불일치 결정으로 폐지되었지만 대체법안으로 만들어진 신분등록제도 또한 ‘가족관계등록제도’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을 단위로 한다. 당시 개인 단위로 신분을 등록함으로써 시민적 지위를 새롭게 자리매김 해야 한다는 주장은 ‘가족해체’라는 비합리적인 공포로 인해서 기각되었다.
출생을 등록하고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족제도를 경유해야 하는 상황은 현재 한국사회의 가족제도가 지닌 젠더이분법과 차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짊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현실과는 달리, 민법 779조와 건강가정기본법 등을 통해서 인정되는 가족은 혈연과 혼인, 입양으로 맺어진 관계이고 그 안에서 이분법적 젠더 구분으로 개인의 자리가 정해진다. 출생하여 여자로 기록되는 순간 가족제도 내에서는 딸로, 법률혼을 통해 아내로, 출산 후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어머니가 되며 이 젠더·가족질서에 기반해 만들어진 신분등록제도로 인해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신분을 강요받아왔다.
또한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정정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온 것은 친권자가 미성년자에게 친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자(子)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민법 제912조를 근거로 삼은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기본권과 자(子)의 복리 혹은 아동의 권리가 대립할 때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라는 허구의 구도는 트랜스젠더를 잘못된 존재, 해로운 존재로 만든다. 국가가 이러한 잘못된 구도를 생산할 때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불필요한 고민과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이런 부당함은 인권을 증진시켜야 하는 국가의 책임이 은폐될 때,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자격이나 능력으로 오해될 때, 차별과 낙인을 개인이 감내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운명적인 것으로 인식할 때 매우 강력해진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누구나 강압 없이 자유롭게 공동체의 형성과 해소를 결정할 수 있고, 가족의 형태나 구성의 방식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미 많은 나라는 법적 혼인, 사실혼, 동거 등을 통한 시민들의 결합과 생활에 대해서 차등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성커플의 법적·사회적 인정을 확대해나가는 한편,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변경할 때 혼인지위나 미성년 자녀 여부에 따라 제한을 두지 않는 나라도 늘어가고 있다. 트랜스젠더 부모를 두었기 때문에 자녀에게 차별이 발생한다면 차별의 원인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에 기인한 것이므로 그것의 해결을 위해서는 편견과 낙인을 해소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양 당사자 간의 불필요한 대립을 설정하고 누군가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개 질서유지라는 모호한 목표로 정당화되는데, 질서유지를 위해서 시민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국가는 대개 인권증진의 책임을 방기한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자(子)의 복리와 가족을 구성할 권리,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삶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에 대해 고민거리를 남긴다. 이는 필연적으로 가족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국가와 개인/가족은 어떤 관계인지, 국가가 가족생활을 왜 지원해야 하는지, 아동권리 보장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가족구성권’이라는 언어는 여러 사람의 권리 사이를 연결하고 시민들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삶의 경로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인권보호와 증진의 책임을 발굴, 환기할 때 힘을 발휘한다. 이 힘이 ‘가족질서유지’라는 명목 아래 국가로부터 침해된 실제 가족생활과 시민들의 유대를 보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나영정 /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2022.12.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