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10‧29 이태원참사와 재난자본주의
“내 동생이 왜 그곳에 갔는지 물을 것이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_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인터뷰
10·29 이태원참사가 일어난 지 53일을 맞는다.(12월 20일 기준)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정부가 방치한 결과로 158명이나 되는 목숨이 희생되고, 생존한 수많은 이들에게도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생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참사 이후 지난 50여일간 일어난 일들은 또다른 참사였다.
원천봉쇄된 유가족모임, 가해자로 내몰린 피해자들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한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직후 “주최측이 없는 행사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규정하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파견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라며 이태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용산구청장은 행사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우겼다. 참사 후 경찰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참사 현장의 CCTV를 수거해 생존자들을 상대로 공공연하게 용의자 색출에 나선 것이었다. 참사 직후 수사당국으로부터 가족의 마약투약 여부에 대해 부검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증언하는 유가족이 여럿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와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마녀사냥과 혐오가 끓어올랐고, 위로와 치유가 시급한 이들에게 2차, 3차 피해를 입혔다. 급기야 지난 12월 13일에는 악성댓글을 견디다 못한 생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좀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면 좋지 않았을까”라며 극단적 선택의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겨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참사 직후 대통령은 서둘러 국가추모기간을 선포하고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황급히 설치되었다가 철거된 합동분향소에는 위패도 영정도 없었고 조문을 받을 유가족도 없었다. 수사는 윗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국회의 국정조사 약속은 정부여당의 비협조로 그 온전한 실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가장 놀랄 만한 일은 지금까지 정부가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을 상대로 단 한차례도 공식적인 보고회를 가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가족들이 모여 함께 추모하고 위로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으로 집요하게 거부하고 있다. 왜, 어떻게 내 가족이 죽어갔는지 알기를 원하는 유가족들에 주어진 공간은 한파가 몰아치는 거리 외에는 없다.
거리로 나선 유가족과 쏟아지는 혐오발언
결국 유가족들이 서로를 수소문하여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발족(12월 11일)했다. 12월 16일까지 100명 넘는 피해자들의 유가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사 47일째인 지난 수요일에야 비로소 158명에 이르는 희생자들 중 일부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분향소가 이태원에 차려졌다.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180여 시민사회단체들이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를 발족(12월 7일)하고 유가족들과 힘을 모은 결과였다.
12월 16일 금요일에는 두 주체가 공동으로 ‘10·29 이태원참사 49일 시민추모제’를 올렸다. 서울 이태원역 인근뿐만 아니라 전국 13개 지역에서 동시에 열렸다. 유가족이 주최한 첫 추모행사였다. 혹한 속에 열린 시민추모제 내내 비탄에 빠진 유가족들의 울분과 절규가 이어졌다. 추모제의 마지막 순서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할 때는 모두가 펑펑 울었다.
유가족들은 최소한의 조치로서 6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할 것 ▲피해자의 참여 속에 성역 없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 ▲이태원참사 기억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공간을 마련할 것 ▲피해자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 ▲2차가해에 대한 적극적인 방지대책을 마련할 것 ▲재발 방지 및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이다. 하지만 이 최소한의 요구조차 정부와 집권여당으로부터 싸늘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돌아오는 것은 ‘자식 팔아 장사하냐’는 집권여당발 혐오발언뿐이다.
반복되는 참사의 패턴
10·29 이태원참사는 세월호참사 및 그후의 전개과정과 너무도 흡사한, 우리사회 재난참사 전개의 절망적인 특징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첫째, 예방, 대비, 대응, 구조, 수습에서 국가기능의 총체적인 부재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무를 인식하고 이행함에 있어 국가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무능한지 연이은 참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참사를 교통사고로 정의하려 했고 윤석열정부는 이태원참사를 주최자 없는 행사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규정하려 했지만 국가부재를 증명할 뿐이었다.
둘째, 정권의 책임 회피를 위한 국가공권력의 체계적 발동과 공작적 개입이다. 재난참사의 대비, 대응, 구조, 수습에서는 결코 발휘되지 않았던 트롤타워가 국가의 책무 불이행에 대한 정권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국가공권력이 정권안위를 위해 체계적으로 작동한다. 공적 책임은 주로 국가기구의 말단 현장 세력에게 전가된다. 실질적 책임이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불처벌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된다.
셋째, 피해자 권리에 대한 전반적 침해와 2차, 3차 가해다. 재난참사의 예방과 대응에 실패해 다양한 수준과 범위의 피해를 발생시킨 정부는 그중 일부 개인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선별한다. 생존자나 지역주민 등 다른 피해자는 방치되거나 심지어 일부는 가해자로 지목된다. 그후 ‘재난을 정치화’하는 세력이 ‘순수한’ 피해자들을 이용할 수 있다고 겁박하는 동시에 피해 당사자들을 분수에 넘는 보상을 요구하는 사익추구자로 매도함으로써 재난참사 피해자가 행사할 수 있는 진실, 정의, 치유, 회복 등에 관한 개별적·집단적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재난자본주의적 악순환의 고착 가능성
이 패턴이 반복되면 사회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로 인식하기 쉽다. 구성원 상당수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 나를 지켜줄 국가는 없(었)다’라고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면, 사회구성원 간의 연대 그리고 국가의 책무이행을 통한 문제해결과 권리 실현 가능성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심화되고 각자도생의 추구로 인한 사회적 위기와 위험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자양분으로 삼아 사익을 극대화하는 소수의 특권적 질서가 고착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른바 ‘재난자본주의’의 악순환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세월호참사 이후에 다행스럽게도 ‘가만히 있지 말자’는 사회적 각성과 연대가 일어났고, 피해자들이 단결하고 시민들이 힘을 모아 정권의 탄압, 회유, 분열공작, 혐오공격 등을 이겨내고 촛불혁명이라는 건설적인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소중한 사회적·정치적 계기였다. 하지만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정부에서의 국가개혁, 사회개혁이 개혁주체의 한계와 기득권 저항으로 용두사미가 되고, 차별, 배제, 혐오를 동원한 선거전략으로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전형적인 재난자본주의적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윤석열 집권 이후 더욱 노골화된 특권세력 위주의 정책, 반복되는 재해와 참사, 정부의 무능과 책임 회피, 공권력 특히 검찰권의 편파적 남용 등이 이 악순환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위기로 시민의 삶이 더욱 위태로워지고 재난이나 위기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층도 증가하고 있어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참사의 폐허 위에 다시 복구해야 할 연대와 희망
단언컨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시민과의 연대를 차단하여 정권과 국가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정략적 임기응변은 다른 정권에서의 시도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특정 정권의 실패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구조적으로 심화될 수 있는 불안, 각자도생, 특권강화의 악순환이다. 때문에 윤석열정부가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거짓 추모와 위로, 피해자 배제와 권리 침해, 책임 회피와 본질 호도는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진실, 정의, 치유, 회복, 배·보상 등 모든 면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지켜내고 안전하게 살아갈 시민의 권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 10·29 이태원참사의 폐허 위에 고립된 피해자와 시민들의 연대, 모두의 안녕을 위한 연대를 더욱 강력하게 복구해내야 한다.
세월호참사 이후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절대로 잊지 말자’ ‘가만히 있지 말자’고 다짐하고 행동해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10·29 이태원참사를 대하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수구언론이 보이는 태도에 비추어볼 때,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특권세력과 국가권력이 다짐하고 깨달은 바는 안전에 관한 사회구성원의 권리나 국가와 기업의 책무에 대한 것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저들이 배운 것은 세월호참사의 경우처럼 피해자 가족들이 단결하고 시민과 연대하도록 허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연대를 가로막기 위한 집요한 방해에서 알 수 있다. 나아가 저들은 ‘제2의 세월호가 되어선 안 된다’며 8년여간 이어져온 진실, 정의, 보다 안전한 사회를 향한 피해자와 시민들의 지난했던 투쟁을 싸잡아 ‘참사 영업’으로 매도하고 세월호참사 이후의 모든 기억을 왜곡하려 하고 있다. 저들은 8년 이상을 이어온 기억투쟁에는 좌절을, 새롭게 그 기억투쟁을 시작하는 이태원참사 피해자들에게는 공포를 심어주려 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및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은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팽목항에서 시작한 행진의 연장이자, 세상 모든 것을 망치더라도 특권을 유지하려는 비인간적 체제와의 대결이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이태호 /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2022.12.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