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꺾이지 않을 결심
보름여 영하 10도가 넘어가던 즈음, 털이 젖어 몸에 딱 달라붙은 깡마른 고양이가 빙판길을 올라갔다. 어디를 다쳤는지 걷는 것도 비칠비칠 부자연스러웠다. 눈더미 위에서 저를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양이가 뒤돌아봤다. 눈동자에도 생기가 없었다. 나무와 풀도 눈 뒤집어쓰고 찬바람 맞고 있는 지금은 혹한의 한복판, 러시아의 침공이 우끄라이나를 넘어 이 산골까지 들어와 있다. 나는 안다. 기름이 비싸서 스티로폼 매트를 여기저기 깔아놓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는 이웃들을. 혈색 좋다고 하기엔 볼이 터질 것처럼 붉은 얼굴들을. 나는 본다.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쿠키를 포장하고, 박스를 접는 등 알바를 서너개씩 하며 이 겨울을 보내는 사람들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느냐’며 죽음을 생각했다는 사람들과, 죽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절규를 듣는다. 대한민국이 ‘무섭고 가망 없다’는 사람들의 탄식을.
8개월이 8년 같았다. 숨김없이 드러나야 할 공公이 가려지고 함께하는 공共이 실종되자, 공정公正은 공정恐政이 되고 상식常識은 상식傷識으로 변질되었다. 중재도 조정도 대화도 없는 독불장군의 선택적이고 편파적인 법치였다. 나는 들었다. 최소한의 안전을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을 “나라 경제를 좀먹는 조폭”이자 “배부른 귀족”으로 단정하고 “북한의 핵 위협”처럼 취급하는 것을. 실상을 알고자 하지 않는 자는 지성도 빼앗긴다. 어느 귀족들이 트럭 안에서 두세시간 눈 붙여가며 과적과 과속과 과로를 강요당하며 ‘할부인생’을 살고 있는지. 진실이 실종하면 거짓이 자연스러워진다. ‘파업하지 마, 안전운임제 연장은 해줄게’ 구슬리더니, 파업을 끝내자마자 3년 연장안조차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울며 백기를 든 노동자들에게 패악을 부리고 전쟁 시에 적에게도 하지 않을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몰상식과 속임수와 파렴치는, 국민이자 시민이자 노동자를 힘으로 때려눕혀야 할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행태였다.
2022년 12월 30일 저녁, 녹사평역 앞 분향소에서 나는 들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야유하고 겁박하는 공포스러운 말들을. 비수가 박혀 마비된 심장에 다시 비수를 꽂는 증오와 분리와 혐오와 은폐와 조작의 정치가 시민들을 어떻게 찢어놓는가를 보았다. ‘남의 죽음 위에 숟가락 올리지 말고 꺼지라’는 식의 메시지가 적힌 숱한 플래카드가 버젓이 나부끼고 있는 것을. 진실은 아직 눈물조차 스며들지 않은 아스팔트 밑에 묻혀 있는데, 이미 대못이 박혀 결박당한 사지에 또 대못을 탕탕 박는 것을. 대통령의 관저가 저만치 보일 것 같은 용산전쟁기념관 앞에서 나는 들었다. 흐르는 눈물조차 얼어붙은 찬바닥에서 엎드려 통곡하는 사람들과 동생을 잃은 언니가 이름도 밝히지 못한 채 발언하는 것을. 그가 엄마의 휴대폰에서 ‘굶어죽으면 자살이 아니냐’ 묻는 검색기록을 보았다는 뼈아픈 고백과 함께, “진상을 규명한다면서, 왜 진실을 막”으며 “왜 2차가해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방치하느냐” 묻는 것을.
작년 5월 이후, 울화와 욕을 달고 살았다. 그간 대통령이 선포하고 국민은 복종해야 하는 주문이자 명령이자 통보이자 거짓의 언어 때문에 만성적 소화불량을 앓았다. 소통과 토론을 먹어치우고 충성을 서약하는 자들만을 허락하는 기득권자들의 말과 행위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그러나 역전은 언제나 가능하고 살아 있는 한 꿈은 꾸어야 마땅하다.
증오정치와 무능과 무책임을 종합적으로 보여준 ‘남미의 트럼프’ 보우소나루를 아슬아슬하게 누르고 대통령이 된 브라질의 룰라는 당선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선거에서 누구에게 표를 주었는가와 별개로 다시 모두가 꿈꿀 수 있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그는 ‘평화와 통합’을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지출 강화와 녹색경제를 제시했다. 우익과 검찰이 주도한 부패사건으로 수감생활을 거쳐 무혐의 처분을 받은 룰라는 이전 재임 중 2500만명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
보우소나루가 집권하는 동안 아마존의 나무 20억그루가 사라지고 원주민이 쫒겨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룰라로 인해 올해부터 1년에 5억그루, 그러니까 하루에 130만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겠다.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집권한 룰라는 불법 벌목과 무분별한 개발을 근절할 방침을 세우며 생태복합위기에 대처하는 공동의 목표 아래 즉각 주변국들과 협력에 들어갔다. 작년 이맘때 우리가 꿈꾸고 갈구했던 일들이다. 우리는 이제 시민 스스로가 희망과 미래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법과 권력은 응징과 보복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인간의 존엄함에 대한 신뢰가 보편적 윤리가 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퇴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2016년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을 때 우리는 단지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모이지 않았다. 지금은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실감하지 못했던 그때를 후회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 진심으로 여겨지는 나라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다시 떠올리며, 나부터라도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오기로 결심한다. 나는 믿는다. 권력 행사는 나보다 더 억울하고 아픈 사람들 곁에 서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루빨리 증오와 혐오로 물든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선 갈망하고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나는 또한 믿는다. 모든 투쟁이 다 사랑은 아니지만 진정한 투쟁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떠올린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이들 곁에서 작은 촛불이라도 켜는 숱한 사람들의 맞잡은 손을. 나는 꿈꾼다. 창밖의 어떤 불빛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는 얼음장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 곁에 수만, 수십만의 촛불이 켜지는 것을. 계묘년은 부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해자 / 시인
2023.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