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자동차에 납치된 위기의 도시에서 철학하기
‘철도 덕후’이자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가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말한다. 전현우의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이동의 위기 탐구』(민음사 2022) 이야기다. 그는 전작 『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워크룸프레스 2020)에서 도시계획과 공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철도망과 기후위기를 기술적으로 연결해서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식과 상상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이동’이라는 문제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철학하기’에 함께 나서보자고 제안한다.
이동성이 주제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이 기후위기 속에서도 자기 손안에 있다고 믿는 기계인 자동차, 비행기, 철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사지라는 이동성의 수단들이 일상과 경험에 직접 연결되는 대표적인 매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매개가 위험 혹은 한계에 처하거나 그 자체가 문제의 원인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다른 한편, 한국에서는 ‘자동차 지배’라는 현상 자체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동차가 우리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자동차 지배라고 이름 짓고, 자동차 지배가 관철되고 있는 도시에서 우리는 ‘납치’된 처지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런 납치는 철학의 납치이자 민주주의와 정치의 납치 상태다.
그는 한국이 자동차에 납치된 정도는 공공교통 접근이 사실상 차단된 수도권 외곽 난개발 시가지의 거주자 증가 비율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브뤼노 라뚜르의 개념을 이용하여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본격화된 승용차와 도로 중심의 ‘혼종’(hybrid)이 기존의 철도망 혼종을 밀어내며,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자동차 지배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자동차 전용도로 끝마다 조성된 넓고 혼잡한 주차장에서 주거 공간으로 사람들을 바로 잇는 신도시들, SUV의 소유와 이용이 보편적 삶의 형태가 된 문화. 요컨대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늘어나는 드라이브스루 매장, 고속도로를 통해서만 접근해야 하는 쇼핑몰은 걷기에 바탕을 둔 만남의 장소가 납치를 당한 일례다. 사람들은 도시 속에서 만남을 누리기 위해 더욱 승용차에 의존하게 된다.
많은 지자체가 너도나도 빠리의 사례를 좇아 ‘15분 도시’, 즉 편의시설과 필수시설에 도보 등으로 15분 만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동차 지배를 하나도 바꾸지 않거나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이용률이 충분히 높은 무궁화호 편성마저 지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감편이 이루어진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위해 비자림을 파괴하며 자동차 도로를 넓히고, 서울에서 유일한 보행자 전용지구였던 연세로는 상권 침체를 이유로 다시 자동차를 끌어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동차와 철도 건설 계획은 비용 대비 수익(B/C)이라는 단기적 효과로만 평가되며 기후위기와 같은 분명한 외부 비용마저 간과된다. 저자는 이런 자동차 지배 속에서 대도시는 기후 파국이 없더라도 천천히 침체하면서 죽어갈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도시는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다. 미국의 도시운동가 제인 제이콥스는 서로 다른 크기 및 다양한 용도를 갖는 건물과 셀 수 없는 골목길이 있는 도시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그로부터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너무 과소하지도 과밀하지도 않은 수준의 밀도 속에서 걷기 공간의 확장을 통해 활성화되는 ‘제이콥스 효과’가 도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꾼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번 철도망의 잠재력을 강조한다. 역과 버스 정류장은 사람들이 이동수단의 전환을 겪으면서, 자기 발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도시를 창발시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앞서, 철도는 수십개의 도시를 15분 만에 이어줌으로써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때문에 철도는 제한된 공간과 에너지 자원을 공공의 결정을 통해 배분하고 미래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수반해야 하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자동차 지배를 넘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지배라는 납치 상황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저자는 뜻밖에도 ‘마음’의 정치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는 새로운 삶과 경험을 찾아 이동하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며, 또한 에너지와 기후의 위기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오늘의 교통 상황 속에서 동력기관과 우리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이동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진단을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 압력도 역시 각각의 사람으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분명 각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하며, 교통처럼 개인에게 선택권이 존재하는 영역만큼 이런 변화를 시작하기 좋은 지점은 없다.
그래서 그의 현실적 대안은 ‘온건한’ 편이다. 강력한 하방식 규제보다는 외곽 지역의 중산층이 다시 지역 중심지에 접근하게 만들고 지역 내 공공교통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 계기, 즉 철도와 같은 체계적 공공교통망으로 긍정적 효과를 경험하게 하는 일종의 ‘넛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에서도 기후위기 시대 교통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청했었다. 그런 기대가 일면 순진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근대 유럽의 사회계약 역시 대중 동원과 봉기의 한 결과였음을 환기해본다.
“기후위기란 익숙한 것들이 소멸하고 최악과 차악 사이를 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압력이다. 이 압력을 똑바로, 함께 보는 것이 이동의 위기 앞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꼭 밟아야 할 단계다”(21면). 이 책을 통해 자동차 납치에서 벗어나는 길을 상상하고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철학하기를 시도하며, 나아가 우리의 삶과 선택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현우 /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
2023.1.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