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복합위기의 시대, 한국경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경기회복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2021년 초반부터 시중에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물가상승의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하반기 이후로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5% 이상으로 치솟기 시작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2022년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했다. 다른 선진국 역시 동시적으로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였고 전세계적인 경기둔화를 피할 수 없었다. 고물가와 경기침체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작년 초 발발한 우끄라이나전쟁과 미국의 대중국 무역압박 그리고 중국경제의 저성장이었다. 우끄라이나전쟁으로 연료와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올랐고, 비용상승과 공급망 제약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까지 가중되었다. 긴축적 통화정책에 힘입어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2022년 2분기 8%대에서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적정 수준을 상회하고 있고,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 작년 말까지 물가상승률이 지속적으로 올라 고금리-고물가의 여건은 올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코로나 재확산과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중국경제는 작년 2.7%(세계은행 2023년 1월 추계)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중국 압박 전략과 미중 간 정치경제적 갈등 고조 역시 향후 세계경제의 회복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22년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첨단산업에 있어 중국의 기술발전을 억제하고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며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건을 목표로 하는 산업‧무역 정책의 강화 의지를 표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동조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자유무역의 후퇴와 미국 및 우방국 중심의 새로운 무역질서의 재편이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023년 세계경제는 팬데믹 위기, 고물가-고금리와 금융 불안정, 전쟁과 초강대국의 패권 전략이 만드는 정치경제적 긴장과 불확실성 등이 가중된 복합위기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해 1월 발표를 통해 2023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1.7%로, 특히 선진국 진영의 경제성장률을 0.5%로 매우 낮게 전망하였다. 이는 1990년대 이후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과 세계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세계 무역성장률은 1.6%로 경제성장률보다 그 하락폭이 더 크고, 특히 중국을 비롯한 개발 중 국가의 경기회복은 더뎌서 팬데믹 이전의 추세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복합위기에 대비한 주요 선진국들의 위기대응 정책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위기에 취약한 부문 및 계층에 대해서는 적극적 지원과 보조 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위기 속에서 이득을 보는 부문에 대해서는 지원을 줄이거나 과세를 강화하여 정부 재원을 확충하는 것이다. 아울러 에너지‧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술과 인프라에 투자를 강화하는 중장기적 정책도 위기대응 및 회복 전략의 일환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과 복합위기 속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인식하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이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날로 빈번해지는 기후재난의 위험과 에너지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 역시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에너지전환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고통을 공평하게 분담하여 사회계층, 산업부문 및 지역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정부와 공공부문의 선제적 정책과 중재자로서의 역할 역시 긴요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선진국의 위기대응 노력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법은 에너지전환과 기술안보를 위한 산업정책과 이를 지원하는 중장기적 계획, 사회복지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 방안, 그리고 이런 지출 재원의 확충을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겨냥한 증세 방안 등으로 구성되었다. 금리인상과 긴축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면서도, 위기극복을 위한 적극적 재정 지출과 부자증세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EU와 일본 역시 이와 큰 틀에서 일치하는 포용적 경제정책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다.
작년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는 바이든 정부와 정반대의 위기대응 방안을 제시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대규모 부자감세안이 발표되자 정부의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금융시장에 확산되었고 국채가격 급락, 금리 급등, 파운드화 가치 폭락 등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결국 취임 45일 만에 트러스 총리는 사임하고, 새로 수립된 리시 수낙 내각의 전면적인 정책 전환을 통해 영국경제는 신뢰를 회복하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수낙 총리의 정책은 소득세, 법인세 등 주요 세제에서 부자증세를 통해 정부 수입을 확대하고, 가계 및 공공서비스 지원 등 사회복지를 강화하며, 영국의 미래 번영을 위한 선도적 투자계획을 제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복합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작년 5월 임기가 시작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영국경제를 위기에 이르게 했던 트러스 총리의 정책과 매우 유사하다. 감세와 기업규제 완화 그리고 시장의 자율 및 작은 정부의 추구가 핵심을 이룬다.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민간부문의 역할을 확대하며, 정부의 직접적인 재분배보다는 경제성장과 낙수효과에 의존하여 소득분배의 개선을 추구하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골자로 한다. 건전재정 기조와 재정준칙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이에 반하여 법인세 인하, 다주택자 중과세 철폐, 종부세 인하 등 부자감세를 추구하고 있다. 전력, 가스, 정보통신, 언론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있는 공공부문의 자산을 매각하고 공공사업을 축소하는 한편 민간사업자의 진출과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그 분야는 보건의료, 교육, 언론, 공공서비스 등 서비스 산업 전반에까지 미친다.
새 정부의 정책은 앞서 살펴보았던 다른 선진국들의 포용적 경제정책과 상반되고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다. 최근 전력과 가스 가격의 급격한 인상에 의해 야기된 서민생활의 불안정은 정부 정책 기조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에너지 요금인상과 그에 따른 가계부담의 문제가 예견되었지만 정부는 작년 내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복합위기는 다양한 경제주체들에게 상이한 충격을 준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경기침체 속에서 협상력이 약한 영세 중소기업과 그 종업원,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플랫폼노동자 등 취약부문의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에게는 심각한 고충이 전가되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반면 은행, 민간가스 및 발전사업자 등 최근 고물가와 고금리의 여건 속에서 오히려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들도 존재한다. 이처럼 불평등한 경기침체의 충격을 고르게 재분배할 정책들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나라의 위기는 국가 간 경쟁과 추격의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의 복합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면 위기대응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은 과감하게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 강자의 불공정한 지대추구와 착취를 엄중히 견제하고 약자를 포용하는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공공부문이 미분양주택을 고가로 매입하거나 규제완화로 건설회사와 자산가들의 배만 불리는데 몰두할 때가 아니다. 공공요금 인상의 충격을 대기업과 강자들에게 전가하여 서민생활의 안정을 지키면서도 에너지소비 저감을 유도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에너지·디지털 전환에 대비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는 중장기적 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과제도 없을 것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대비하는 것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정부의 노동개혁은 개악으로 가고 있다. 고질적인 노동 양극화의 원인이 기업과 자본 중심의 정책 그리고 ‘자율’이 만드는 약육강식의 질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이 정글이 되지 않도록 인간 중심의 규제와 헌법적 가치가 보장되는 규율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2023.2.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