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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장악이 아닌 약탈이다: 이명박정부에서 윤석열정부로 계승된 미디어 공공자산 무력화 흐름

정준희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빼앗는다는 의미의 약탈(掠奪)은 과연 사라졌을까?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현대 법치국가의 핵심 의무이니, 약탈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일탈적 범죄 수준에서 제어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은 순진하다. 약탈은 사라지지도 사그라지지도 않았다. 조금 더 교묘해졌을 뿐이다.

 

현대 한국의 특징적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 중산층’을 만든 서울 강남개발은 약탈이 아니었을까?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 1970」(2015)을 보라. 강남개발 이권다툼에 깡패가 참여한 노골적 약탈은 물론 권력자가 치부책으로 사용한 은폐적 약탈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 유구한 서사는 가히 ‘수서 1991’로 이름 붙일 법한 6공화국 최대 부동산 스캔들로 면면히 이어졌다. 또 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은 약탈의 결과물이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최근 한강 동쪽을 발칵 뒤집어놓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이 모티브가 되어 ‘양평 2023’이란 제목의 영화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모든 약탈 가운데에서도 가장 치사한 것이 바로 국가권력에 의한 약탈이다. 원론적으로 현대 국가는 사적 영역에서 자행되는 약탈을 예방 및 처벌해야 하는 주체이다. 그런데 그런 국가권력이 오히려 약탈의 주체가 된다면? 도둑에게 곳간 열쇠를 맡긴 것 이상의 배신감과 상실감이 찾아들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짤막하게 나열한 약탈 사례는 모두 국가권력이 방임했거나 조장함으로써, 심지어 직접 선수로 뜀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사례는 그저 기존 후진국형 부정부패의 잔상일 뿐일까? 오히려 우리는 권력, 자본, 정보를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을 주기적으로 약탈하는 게 일상적인 자본주의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게 맞지 않을까?

 

미디어 분야에도 이런 일은 수시로 발생한다. 미디어 공공자산의 핵심인 공영방송에 대한 약탈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넷플릭스 시대’에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가 무어냐고 손가락질한다. 수신료를 뜯어가고 정권에 따라 보도성향이 갈리는 이런 체제를 지속할 이유가 있느냐며 냉소한다. 이해한다. 하지만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 미디어 환경의 중심부에 있던 공영방송이 이렇게 조롱감이 된 것은 단순히 대세가 바뀌어서만은 아니다. 그들이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을까? 그 과실을 누가 따 먹었을까? 공영방송 사장을 갈아치우고 보도를 통제하는 ‘기법’은 이명박정부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법까지 바꿔 사실상 공영방송으로부터 빼앗은 특권과 기회를 지극히 정치 편향적인 신문자본에 나누어주었다. 디지털 격변기였던 그 시점에 그런 일들로 잠재력을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공영방송이 지금과 같은 무력한 모습이었을까?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공공자산에 대한 국가권력의 약탈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사유화(私有化)이다. 충성스러 부하들을 요직에 내리꽂아 공공기구를 털어먹을 기회와 권리를 주는 한편,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의 밥그릇도 채워주는 방식이다. 사유화된 공공미디어는 입속의 혀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다른 하나는 흔히 민영화로 지칭되는 사영화(私營化)이다. 그 핵심은 일반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양질의 공공자산을 헐값에 사들일 기회를 특정 자본에 선사하는 것이다. 주요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도약은 그렇게 이뤄졌다. 게다가 특혜를 거머쥔 미디어 자본은 굳이 지시하고 개입하지 않더라도 든든한 정치적 동지가 되어줄 터이다. 정권을 넘겨주더라도 안심이고, 정권을 되찾은 뒤 또 ‘장악’ 과정을 반복해야 할 수고로움도 덜어준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그 수많은 미디어 사건들.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 MBC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YTN 민영화 결정, MBC·KBS·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 그에 바탕을 두어 벌어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의 ‘점수조작 사건화’,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기소와 면직, 민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 임명 거부,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의사결정 구조가 2:3에서 2:1로 재편된 방통위가 전광석화처럼 통과시킨 TV 수신료 분리징수시행령 개정안. 이것이 그저 국가권력의 정상적 작동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적 사건들일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항간에선 이를 두고 ‘방송장악 음모’라고 부른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방송장악은 이미 15년 전 이명박정부의 레퍼토리였다. 지금의 윤석열정부는 단지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KBS, MBC, EBS로 대표되는 공영방송 및 YTN, 연합뉴스 등을 포함하는 공공부문 방송 전체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사영화된 보도전문채널 YTN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갈까? 연합뉴스는 가만둘까? 수신료 재원이 약화된 KBS는 그나마 상업재원을 벌어주던 KBS2마저 시장으로 넘기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권의 골칫덩이 MBC를 처리하기 위해 과거의 사장 교체 시나리오를 단순 반복하기보다 지역MBC부터 하나하나 떼어 고사시킨 다음 시장에 넘기는 수순을 밟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약탈적 무력화’이다.

 

사유화는 쉽고 빠르고 효과도 즉각적이지만, 사영화는 어렵고 더디고 그 효과가 복합적이다. 그래서 아무리 결함이 있고 논란이 있어도 결국 다시 이동관 특보가 필요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명박정부의 홍보수석으로서 민주화 이후 최초로 가장 조직적인 형태의 미디어 공공자산 사유화를 성공시킨 그는, 4대 종편 채널이라는 방송 사영화의 첫 단추도 풀었다. 현역 여당 의원이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상식적인 사람이 가면 오히려 어렵다”고 본 신임 방통위원장으로 유력한 그가, 비합리적이고 비일반적이며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이뤄낼 약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필경 진부하면서도 새로울 그 서사는 공영방송에 대해 비릿한 냉소를 머금은 이에게도 꽤 약탈적이고 파괴적일 것이다.

 

정준희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

2023.7.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