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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며: 10‧29 이태원참사 추모문학제에 다녀와서

송지현

그날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속보가 흘러갔지만 개의치 않고 OTT 서비스를 켰다. OTT 서비스는 실시간 방송이 아니기에 당연히 뉴스속보가 뜨지 않는다. 새벽까지 드라마 시리즈를 봤고,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보던 영상을 멈추고 뉴스를 틀었다. 충격을 뒤로하고 침착하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해가 뜰 때까지 좀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태원참사 이후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가 함께 추모낭독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국작가회의 젊은작가포럼 측으로 제안이 왔고 덕분에 지난 7월 15일 열린 이태원참사 추모낭독회엔 젊은 작가들이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울시청에서 진행될 낭독회 전에 먼저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만나 참사현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몇년 만에 가본 이태원은 주말이어선지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해서 다들 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다.

 

나는 조금 일찍 도착했고 마찬가지로 일찍 도착한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만났다. 친구들과 커피를 시키고 앉아 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아무런 조짐 없는, 이렇게 평소와 같은 하루였겠지.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의 약속이 즐겁기를 기대하는 그런 하루였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였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되어 참사현장으로 이동했다. 이동식 펜스들이 길 곳곳에 있었다. 기억했던 것보다 길이 더 좁았다. 길 입구엔 추모의 내용이 적힌 포스트잇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는데, 근래 비가 많이 온 탓에 글씨들이 번져 있었다. 천천히 언덕을 올랐더니 몇해 전 새해를 맞이했던 술집이 나왔다. 어느 해 12월 31일 밤, 나도 즐거운 저녁을 기대하며 이태원에 있었다. 골목에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했고 그날은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안전한 귀가가, 무슨 요행처럼 느껴졌다. 안전은 당연한 것이고 요행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날, 다들 당연히 안전할 거라 믿고 이 길을 걸었겠지.

 

우리가 침통한 마음에 잠식될까 걱정이 되어서였을까. 이태원역 앞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던 이들이 우리를 발견하곤 소리를 질렀다. 주된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너희가 조작한 사건이잖아!’(너희가 누굴까?) ‘북으로 돌아가라!’(대체 북한과는 어떤 연관이?) 마지막이 가관인데 ‘우리 윤이 훨씬 낫다!’(대통령을 지지하시는 마음 잘 알겠으나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

 

그들의 발성과 발음이 너무 좋은 탓에 우리는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낭독을 맡기고 싶을 정도의 전달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등에 메고 있던 현수막을 보고 그 부탁은 마음 깊이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현수막엔 코로나19 백신이 사람을 조종한다는 내용과 함께 666이 사방에 인쇄되어 있던 것이다.

 

다 같이 시청역으로 이동하는 동안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주말의 시청역 풍경이 그렇듯 공간마다 각각의 의견을 담은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추모낭독회는 서울도서관 옆에 위치한 이태원참사 추모분향소에서 진행되었다. 도서관 옆이라는 것이, 가까이에 책이 있다는 것이, 어쩐지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주었다.

 

사회를 맡은 김현 시인은 “304 낭독회(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4시 16분에 열리는 낭독회)에 오랜 기간 참여해오면서 추모의 공간에서 박수를 쳐도 되는 건지 고민이 많았는데, 우리의 박수가 희생자들의 못다 친 박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껏 웃고 울고 박수 쳤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낭독회의 시작을 알렸고, 작가들은 각자 준비해온 원고를 낭독했다. 낭독하는 작가들 뒤에 희생자들의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들을 차마 오래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낭독회가 진행되는 내내 비가 그쳤다 내리길 반복했다. 사람들도 우산을 접었다 펴길 반복했다. 모두가 우산을 펼치는 모습은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지난 7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은 기각되었다. 그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는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이라는 발언 또한 문제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참사는 세월호참사 이후 한국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인명사고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이기에 충격이었던 이태원참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참사 이후 300일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추모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참사현장엔 좁은 길목에 배치된 내려앉은 책상과 거기 붙은 비에 젖은 포스트잇이 전부였다. 7월 31일 어제, 이태원참사 2기 운영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곧 다시 10월 29일이 돌아온다. 누군가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추모낭독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 행인이 ‘놀다가 죽은 걸, 뭐’라는 발언을 하며 지나갔고, 낭독회를 지켜보던 시민이 그에게 화를 내는 바람에 잠시 소동도 있었다. 유가족이 있는데 그런 말을 굳이 하는 걸 보고 그 악의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놀러 가서도 안전한 국가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죽음의 방식에 따라 슬픔도 달리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쩔 땐 비를 그냥 맞기도 하고 우산을 펼쳐 내리는 비를 피하기도 하듯, 이번엔 마음 안에 우산을 펴서 애써 아프게 내리꽂히는 말을 피하기로 했다. 모든 순간에 아파하면 금세 지쳐버리니까. 그러니 우리 모두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며 각자를 힘들게 하는 비를 잘 피하길, 그렇게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길, 그리고 나서 무사히 귀가할 수 있길.

 

송지현 / 소설가

2023.8.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