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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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변화와 쇄신을 통해 통합민주당이 나아갈 길

정해구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나라당의 압승과 보수세력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지난 17대 대선 결과는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민주세력에는 거의 '쓰나미'와 같은 것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이 63.8%에 달함으로써 전체 득표율의 거의 3분의 2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등 민주 정당들이 얻은 지지율은 35.6%에 그침으로써 전체 득표율의 3분의 1에 머물렀다.


사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선 참패의 결과 민주세력의 각 정당들은 그 후유증으로 다시 한번 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그 책임론을 둘러싸고 일부 친노 인사들이 물러나기에 이르렀고, 민주노동당은 '종북(從北)주의'를 둘러싸고 당이 양분되었다. 창조한국당 역시 대선 이후 당의 정비과정에서 1인정당 논란으로 다수의 지도부 인사들이 이탈중이다.


민주 정당들이 직면한 이같은 상황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대선에 참패한 후 홧김에 노무현정부와 민주세력의 그간의 잘못을 새삼 탓하기도 했지만, 이러다가 민주세력 전체가 소수세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향후 우리 민주주의가 급속히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보수 일색의 정당체제는 민주정치의 위기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민주세력에 닥친 지금의 난관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향후 민주세력의 위축과 약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부 민주 정당의 소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민주 정당들이 소수세력으로 전락하고 대신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 정당들이 이번 총선을 통해 약진할 경우, 우리의 정당체제는 보수정당 일방의 그것으로 재편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의 민주정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민주 정당을 유지·강화하는 일이다. 물론 지금 민주 정당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그럼에도 민주 정당들은 변화와 쇄신을 통해 다시 강화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이 난관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특히 민주 정당들의 맏형격인 통합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통합민주당이 지니는 한계는 매우 크다. 분명치 않은 노선과 정체성, 이합집산으로 인한 동요와 혼선, 구태의연한 의식과 관행 등 이미 척결되었어야 할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닌 것이 통합민주당이다. 그럼에도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 변화와 쇄신을 통한 통합민주당의 새로운 발전은 여전히 필요하다. 더구나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고 창조한국당 역시 위기에 처한 현재의 상황에서 통합민주당마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한다면 한국 민주정치의 전망은 매우 어두워지지 않을 수 없다.


통합민주당, '공천혁명'을 통해 일신해야


통합민주당을 변화시키고 재생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4월 총선을 앞둔 지금으로서는 '공천혁명'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구태의연하고 부패하며 무능한 과거 정치인들을 퇴진시키고 통합민주당을 이끌 새로운 정치인들의 등장을 가능케 할 그야말로 공천혁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에게 통합민주당의 새로운 모습을 약속할 수 있을 때 통합민주당의 새로운 탄생은 가능한 것이다.


다행히도 공천혁명이 가능할 수 있는 여건은 조금씩 마련돼가고 있다. 위기에 몰린 통합민주당이 나눠먹기식 공천의 유혹을 물리치고 공천혁명을 이루어낼, 쉽지 않은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즉 통합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법조계에서 신망이 높은 박재승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에 내정하는 한편, 그에게 상당한 공천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공천혁명의 길을 터놓았다.


한편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예비정부'의 최근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통합민주당의 소생에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우선 인수위 활동에서 드러나듯, 이명박 예비정부의 모습은 예상보다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작은 정부'의 기치 아래 진행되고 있는 정부조직 개편은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금하기 어렵다. 영어교육과 관련된 인수위의 인식과 태도도 과도하다는 인상을 준다. 뿐만 아니라 남대문 화재 직후 국민모금 운운한 이명박 당선자의 언급은 매우 성급한 처신으로서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


민주 야당의 회복과 부활을 바란다


그러나 공천혁명만으로 그리고 이명박 예비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만으로 통합민주당의 장기적인 발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통합민주당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생활에서 국민과 지지자들이 원하는 바를 찾아내 이를 대표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그 도가 더해지고 있는 사회양극화의 현실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의 마련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통합민주당은 향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발전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을 육성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과거 민주화운동세력에 기반한 그간의 리더십은 이제 동력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떤 점에서 그들은 기득권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리더십이 아닌, 변화된 시대환경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것이 통합민주당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다.


아무튼 향후 5년 동안 이명박정부는 우리 사회를 이끌 것이다. 그런만큼 이명박정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 특히 정치의 발전은 정부와 여당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민주 야당의 회복과 부활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 4월 총선은 이를 가름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2008.2.19 ⓒ 정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