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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끄라이나전쟁과 한반도

제성훈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은 점령지역을 병합하고 부분 동원을 통해 병력과 무기를 보충한 러시아,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원을 받으면서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우끄라이나 간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침공 개시 약 7개월 만인 2022년 9월 말 4개 점령지역을 자국 영토에 병합한 후, 2023년 5월 동부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인 바흐무뜨를 점령했다. 이후 2023년 6월 초부터 우끄라이나의 반격과 러시아의 방어로 공수가 전환된 이후 약 1,000km에 달하는 전선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의 의미를 분석하고,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몇가지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의 의미는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패권전쟁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은 세계적 차원에서 단극체제 유지를 위해 탈소비에트 지역에서 패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세계적 차원에서 다극체제 형성을 위해 탈소비에트 지역에서 패권 국가가 되려는 러시아 간 패권전쟁이다. 미국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 전략과 러시아의 탈소비에트 지역통합 전략은 지정학적 단층선인 우끄라이나에서 충돌했다.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BRICS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끌어갈 국가 그룹이 형성되고 있고, 탈달러화를 통해 독자적 경제권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시스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다극체제 형성이 가속화되고 있다.


둘째,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 심화로 인한 인접국 간 전쟁이다. 안보딜레마는 한 국가가 동맹 강화, 군사력 강화 등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취한 행위가 다른 국가의 유사한 대응, 더 나아가 세력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제공격을 유발하여,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의 안보가 증가하기보다 오히려 감소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끄라이나는 NATO 가입과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통해 안보를 강화하고자 했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우끄라이나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미국과 NATO의 ‘교두보’가 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침공을 결정했다. 


셋째, 정체성 갈등으로 인한 내전의 국제화이다. 우끄라이나는 분열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우끄라이나 동남부와 끄림반도는 18세기 후반까지 러시아제국에 편입되어 러시아인은 물론, 언어, 종교적 차원에서 ‘러시아화’된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우선시했다. 우끄라이나 중서부는 오랜 기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지배를 받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완전히 소련에 편입되어 언어, 종교적 차원에서 ‘우끄라이나 정체성’을 가진 우끄라이나인이 압도적으로 많아 민족주의가 강세를 보이며 NATO 및 EU 가입을 우선시했다. 2014년 2월 친러 성향의 야누꼬비찌 대통령이 반정부시위로 축출되고 친서방 과도정부가 수립되자 이미 1990년대 초 독립을 선언했지만, 합의를 통해 우끄라이나에 남았던 끄림자치공화국은 2014년 3월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와 병합조약을 체결했고, 동남부의 루간스끄주와 도네쯔끄주는 2014년 4월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내전이 시작되자 우끄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하는 대신 루간스끄주와 도네쯔끄주의 특별지위를 보장하는 민스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해당 협정은 8년간 14,000명 이상이 사망하는 가운데 단 하나도 이행되지 않았다.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동북아 대결 구도 회피를 위한 강대국 외교를 수행해야 한다. 지난 30여년간 한국은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북방 삼각(북·중·러)과 남방 삼각(한·미·일) 간 대립구도 약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두개의 삼각 대립구도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은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유럽·대서양 동맹과 인도·태평양 동맹의 연계, 이른바 ‘반러·반중 연대’에 너무 깊이 연루되고 있다. 한미일 전략적 공조에 참여하더라도 이념화와 블록화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동북아 정세와 경제협력에 관하여 러시아와 전략적 소통을 병행하면서 장기적 차원에서 한러 관계 발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조선은 16~17세기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주의 깊게 읽지 못해 두번의 큰 전란을 겪어야만 했는데, 그중 한번은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로 끝났고, 다른 한번은 항복으로 끝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남북간 안보딜레마 해소를 위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동맹 강화와 군사력 강화로 억제력을 확보하면 ‘힘에 의한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는 오히려 세력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마찬가지로 군사력을 강화하거나 동맹을 강화할 것이고, 더이상 안보 강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선제공격을 선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안보딜레마가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힘에 의한 평화’는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할 수 있다. 게다가 동맹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기반을 두고 ‘남의 힘에 의한 평화를 실현하려고 할 경우, 동맹국의 정책에 대한 종속으로 인해 외교적 자율성을 상실할 수 있고, 동맹국이 적으로 규정한 국가를 자국의 적으로 규정하게 되어 안보 위협이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힘에 의한 평화’가 효과를 거두려면 안보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 다시 말해 상대와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남북간 및 국가 차원에서 통합적 정체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은 남북간에는 민족에 기반을 둔 통합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질적 정체성의 심화를 극복해야 하고, 국가 차원에서는 민족에 기반을 두지 않는 통합적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다민족 국가로의 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은 어떤 국가이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인지, 한국의 ‘구성원’이 공유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남북간 및 국가 차원에서 통합적 정체성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진지한 모색과 적극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된다.


제성훈 /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2023.10.2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