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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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2023년, 파편화를 넘어 새로운 교육의 원년으로

이종호

2023년, 학교는 ‘조용한’ 공간?


코로나19 팬데믹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학교는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갈 줄 알았다. 짝과 나란히 앉아 떠들고, 모둠별로 침 튀겨가며 토론도 하고, 방과 후에는 머리를 맞대며 팀 프로젝트 활동도 하고, 운동장에 모여 축구도 하고. 하지만 2023년 학교는 이전의 왁자지껄한 ‘함께’의 공간보다는 조용한 ‘개인’의 공간이 되었다. 짝과 떠들고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모둠활동을 하기보다는 혼자 활동하는 것이 몸도 맘도 편하다. 마지못해 하는 팀 프로젝트는 1/n을 철저히 나눠 내 몫만 하면 끝이지 함께하는 건 시간과 열정 낭비다.


생각해보면 학교가 온전히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리라 생각한 건 허튼 상상이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춘 듯했으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개인의 시대를 열었다. 유튜브, 챗GPT, OTT 서비스, 그리고 이 모든 걸 손 안에서 해결해주는 모바일 하나만 있으면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시나브로 학교도 새로운 개인이 된 학생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 교사들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뤄낸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신선함을 넘어 개별화 수업의 단맛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교사를 만나지 않아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내가 원하면 듣고, 원하지 않으면 들은 척만 해도 된다니. 디지털 기기를 손쉽게 다루는 학생들에게 비대면 수업은 교실 없는 수업을 넘어 교사 없는 수업을 꿈꾸게 했다. 교사가 아닌 디지털 기기의 네모난 프레임을 바라보고, 눈앞의 친구보다는 만져지지 않는 세상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생한 목소리로 감정을 나누기보다 작은 창에 건조한 문자로 하고 싶은 말만 남기는 것이 편해졌다. 공동체를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 예절, 관습보다 일단 내가 편한 것이 우선이 되고 개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믿는 학부모들도 계속 늘어났다. 내 자식이 불편하다는데, 내 자식이 힘들다는데……


2023년, 교사는 슬프다


교사들에게 2023년은 가장 슬픈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동료 교사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이어지고, 기저에 깔린 원인이 드러나며 교사들이 지금껏 삭혀온 아픔과 분노가 폭발했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사가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받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음을 세상은 누군가의 목숨값을 통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금껏 힘들게 교육활동을 이어온 교사들의 아픔을 조금 이해하는 정도. 수없이 많은 댓글이 누군가를 찾아내 비난하고 벌을 주듯 신상까지 털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미봉책에 머물렀고, 정작 교사들이 요구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은 몇발짝 가지도 못했다.


지난 2월 교육부장관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위해 교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교사의 역량이 더 업그레이드되고 역할이 바뀌어야지만 교사가 더 필요한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교사가 더 필요하다는 명분을 찾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장관의 말은 교사의 역량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온 국민이 전문가라는 말이 있다. 올해 역시 대입제도 개편부터 학령인구 감소, 기초학력, 안전, 학교폭력 문제 등 교육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무수한 댓글이 달리고 실패한 교육에 대한 논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교사를 교육 문제의 가장 큰 적으로 세워두고 화살을 겨눈다. 교사들이 잘 가르치지 못해서, 열심히 가르치지 않아서……


하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여전히 열심히, 잘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힘든 팬데믹 시기에도 최전선에 서서 어떻게든 학생들을 만난 건 교사들이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흔들어버리는 교육정책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도 결국 교사들이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경쟁의 구도에 넣고 쳇바퀴 돌리듯 교육하는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슬퍼하는 것도 교사들이었고, 그것을 깨보려 혁신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교사들이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현실은 교사를 자녀돌보미 서비스업자로, 자리만 차지하고 변하지 않는 철밥통 공무원으로, 시대변화에 뒤처지는 교육개혁의 걸림돌로 바라본다.


교육의 길을 다시 묻고 성찰해야


민원 방식을 바꾸고 담임 수당을 100%로 올려주면 교사들의 아우성이 가라앉을까? 악성 민원의 대상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을 까발리고 온라인에서 조리돌림을 한다고 이 아픔이 가라앉을까? 아니다. 지금 교사들의 아픔은 어르고 달래서 사라질 것이 아니다. 교사들에게만 던져놓은 ‘교육의 실패’의 이유를 모두에게 묻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개인의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라고까지 평하는 지금,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하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했고 준비해야 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며 무책임하게 떠넘긴 반교육의 영역들을 거두고, 개별화를 넘어 파편화되어 가는 교육현장을 찾아 성찰부터 해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와 교육계는 2023년을 계기로 우리 교육의 흐름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청소년 수가 매년 증가하고 이제는 교사들까지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있는데 미래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경쟁을 부추기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책만을 던져놓아서는 안 된다. 교사를 진정한 교육전문가로 여기고 교사들에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우리 교육의 방향을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교육을 고민할 때다. 인공지능이 교사를 대체하고 언제 어디서든 접속하여 개별화된 학습이 가능해질 미래에도 교육의 본질을 놓지 않을 지속가능한 교육이 가능할까? 그 가능성을 찾을 해답은 무수히 많겠지만 지금처럼 ‘나만을 위한 교육’은 확실한 오답이다. 대학 나와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역량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기 위한 디딤돌은 결국 점과 점의 연결이어야 한다. 지난여름 수많은 교사가 점이 되었다. 점점이 모여 서로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변화의 주춧돌을 놓았다. 학생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노력했듯이 2023년을 새로운 교육을 준비하는 원년으로 삼아 다시 세 점이 더 단단히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지속가능한 교육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이종호 / 독산고 교사

2023.11.2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