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두개의 전쟁’을 넘어 대전환의 시대로
2024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세상은 어둡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끄라이나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마스의 테러작전으로 격발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는 그칠 줄 모르고 있다. 미중경쟁은 다방면에서 파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환경위기는 멈출 수 없이 나아가 이제 벼랑 끝에 섰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잔뜩 몰려 있다.
2024년에는 이 복합위기가 더 위중해질 것인가? 이 위기의 소용돌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를 빨아들이고 말 것인가? 인류는 이 위기를 타개할 지혜가 있는 것인가? 지혜가 있다면 이를 실행할 단초는 어디서부터 만들 것인가?
우끄라이나전쟁은 냉전의 연장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 사이의 냉전은 후자의 패배로 일단락됐다. 동구권이 몰락하고 소련 자체가 분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가 서서히 힘을 키우며 재등장했다. 미국과 서유럽은 나토(NATO)라는 군사동맹을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미사일 방어체계와 미사일을 그 첨단에 배치해 러시아를 선제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했다. 동시에 여러가지 이유로 경제제재를 다시 동원하여 러시아에 압박을 늘렸다.
미국과 서유럽이 우끄라이나까지 군사협력을 확장하며 선제타격의 가능성을 여는 것 같은 순간 정작 선공에 나선 것은 러시아였다. 초기 여러 작전 실패를 겪었고 예상보다 강력한 우끄라이나의 방어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러시아는 초기의 실패에 신속하게 전술을 바꾸는 대응력을 보여주었다. 미·유럽과 그 동맹국의 단합된 우끄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제재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대규모 지원을 업은 우끄라이나의 ‘여름 반격’이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한 반면, 러시아는 오히려 역공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해서 냉전의 연장전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며 쉽게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역사의 종언’은 섣부른 예언이 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미국보다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이 기회에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결제체제를 모색하고 있고 여러가지 다자지역기구를 구상하며 새로운 다국적 국제질서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냉전 1.0은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렸지만 냉전 연장전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파상적 공세를 주도면밀하게 막아내고 있는 것도 냉전 연장전의 새로운 양상이다. 냉전시기 중국은 ‘제3세계’를 주창했지만 미국과 소련에 필적하는 초강대국은 되지 못했다. 미국 현실주의 외교의 대가 키신저가 구상한 미·소 세력간 균형추 역할을 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던 중국이 이제는 냉전시기의 소련을 연상시킬 정도로 국력을 키웠다. 미국도 냉전시기에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도전국이라며 경계를 바짝 조이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과거의 소련도 아니고, 지금 세상은 ‘철의 장막’으로 동서진영이 갈라져 있던 냉전시기와도 다르다. 미국은 냉전시기 경제적 위협으로 부상했던 독일과 일본을 다뤘던 방식을 동원해보지만 중국은 1980년대의 독일이나 일본과도 다르다. 무엇보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종속국가’가 아니다. 중국은 세계의 ‘생산기지’이자 원자재 보유국이고 과학기술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화해를 주재한 것에서 극적으로 보여준 것과 같이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능력도 발휘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식민주의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다. 물론 1차적 원인은 하마스가 제공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라고 평가할 만한 내각이 이스라엘의 정책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이유다. 그래도 역시 그 뿌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식민지배 정책이다. 그리고 식민지주의가 아직까지도 힘을 발휘하던 20세기 초 영국을 비롯한 식민지 종주국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또 하나의 식민지를 건설한 것이 그 역사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이 ‘이스라엘 로비’ 때문만이겠는가. 서유럽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오래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눈감고 현재 진행 중인 민간인 학살에 침묵하는 것이 유대인 차별이라는 ‘원죄’ 때문만이겠는가. 이스라엘은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식민지다. 중동의 민족주의에 박는 쐐기다. 식민지배 종주국들은 스스로 물러난 적도 없을뿐더러 식민지주의에 제대로 사죄한 적도 없고 배상을 한 적은 더더욱 없다. 해서 팔레스타인 침공은 ‘식민주의의 마지막 전쟁’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 중인 우끄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피바람’은 인류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냉전을 확실하게 종식시킬 것인가? 식민주의를 완전히 청산할 것인가? 적어도 지난 80여년 미뤄둔 숙제를 더이상 미룰 수는 없다. ‘두개의 전쟁’ 속에 쓰러지고 신음하는 시민들이 우리 모두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전의 연장전’과 ‘식민주의의 마지막 전쟁’은 근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식민주의와 함께 성장했고, 그 성장의 마지막 자리에서 냉전을 파생시켰다. 중국도 러시아도 산업화를 통한 성장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뿌리를 같이하고 있기도 하다. 환경위기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개의 전쟁’이 끝나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떻게 끝나는지가 더 중요한 이유이다.
2024년은 2025년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이다. 단순하게 한 해가 다른 해로 넘어간다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다. 새로운 전환을 열어내는 역사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진행되고 있는 전쟁은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 전쟁의 위기가 점증하는 한반도에서는 그 위기를 막아내야 하겠다. 한반도는 냉전이 종식된 적이 없고 식민주의도 청산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를 막아내는 것은 오래된 냉전을 완전히 끝내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식민주의의 청산으로 가는 길이다. ‘두개의 전쟁’을 끝내는 과제는 바로 한반도의 과제인 것이다.
그 과제는 거대하지만 해야 할 일은 발밑에서 구체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발끝만 쳐다보다가는 엉뚱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발등의 불만 끄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울 수도 있다. 대전환을 전망하되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24년은 대전환으로 가는 건실한 받침돌들이 풍성하게 만들어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2024.1.2.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