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치매 주치의보다 포괄적인 돌봄체계 구축을
정부가 7월부터 치매관리주치의 제도를 시행한다고 한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적극적으로 치매 관리에 나서겠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인 듯하다. 환자 평가를 통해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치매를 치료하고 관리해나간다는 것이다. 치매가 고령자의 대표적인 질환이며 환자 수도 많고 또한 환자의 인지 저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도 커서 정책대상으로 선발되었을 것이다. 정책효과가 커 보이기를 기대한 듯하다.
그렇다면 나중에 암 주치의를 두고, 심장질환 주치의를 두고, 뇌질환 주치의를 둘 것인가? 사람을 케어하는 주치의인지 질병을 케어하는 주치의인지 헷갈린다. 후기 고령자라 일컫는 70대 후반이 되면 서서히 인지 저하가 오면서 알게 모르게 치매가 찾아든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면 고혈압 당뇨 관절염 골다공증 심장질환 뇌질환 등 온갖 질병과도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먹는 약도 점점 늘어난다.
문제는 질병만이 아니다. 고령화와 더불어 빈곤 문제가 고개를 든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0%가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다. 불명예 1위이다. 독거노인, 즉 고령 1인가구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진료실에서는 혼자 사는 80, 90대 어르신을 만나는 게 흔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노인요양시설로 들어갈 것이냐 아니면 고독사를 각오할 것이냐의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의 비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2배 이상으로 가장 높다. 가난하고 아프고 외로운 노인들의 절박함이 드러난다. 60대보다 70대, 70대보다 80대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이다. 나이 들수록 더 절박하다는 의미이다. 이게 시작이라고 하면 정말 슬픈 이야기일 것이다. 출생률이 높았던 베이비붐 세대가 75세 나이로 진입하는 2030년에서 2038년 사이에 이르면 지금의 문제들이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사회가 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은 단카이 세대(베이비붐 세대)가 후기 고령자(75세 이상)로 진입하는 2025년을 목표로 고령자 돌봄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20여년 전부터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역포괄 케어시스템을 구축하고 재택의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개원의의 30% 이상, 중소병원의 60% 이상이 여기에 참여한다. 다양한 유형의 고령자용 주택이 제공되고 있으며 의료와 요양을 결합한 돌봄의료 복합시설도 등장한다. 마을 전체를 돌봄의 철학으로 재구성한 곳도 있다.
우리나라 고령화 추세는 20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을 쫓아가다가 점차 그 간격을 좁히고 있다. 그러나 고령사회에 대한 준비는 지지부진하다. 노인들이 직면한 수많은 문제는 한가지 한가지가 다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통합적인 돌봄체계 구축이 절실한데 현실에서 진행되는 정책이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목표와 동떨어진 듯하여 안타깝다.
몇해 전부터 커뮤니티 케어,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시범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변죽만 울리는 느낌이다. 의료, 복지, 주거, 일상 지원, 생계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포괄적인 지원체계 구축이 절실한 반면 진행되는 내용은 기대와 달리 분절적이고 단선적이다. 시범사업들도 중구난방이다. 명확한 목표의식이 없어 무엇을 성취하려는지 맥락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럴진대 여기에 추가로 치매관리주치의 사업이 얹혀졌다. 전체 돌봄체계와 관련하여 이 사업이 갖는 맥락이나 의미 설명이 부족하다. 진행 중인 다른 사업과의 관련성도 안 보인다. 분절적인 또 하나의 사업이 추가된 셈이다. 복잡다단한 사업들을 정리하고 방향을 잡아나가는 컨트롤타워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장기 전망하에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전략들을 차근차근 세워나가야 한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범정부 차원의 대책팀을 구성하고 그동안 실행된 다양한 돌봄사업들을 정비해야 하며 사업 간 연결고리를 만들어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비어 있는 돌봄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돌봄의 필요성에 대한 절실함이 묻어나는 정책들이 나오면 좋겠다.
돌봄의 현장은 지역사회이다. 중앙정부의 역할 못지않게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에 있는 돌봄 자원들을 모으고 연결하고 새로 만들면서 지역에 가장 적합한 체계를 구성해나가길 소원한다. 노인 돌봄, 장애인 돌봄, 아이 돌봄 등 각각의 돌봄 그물망이 서로 교차할 때 비로소 지역사회의 튼튼한 돌봄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본다.
백재중 / 신천연합병원 명예원장
2024.1.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