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위험을 개인화하는 지진 대응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재구축으로
일상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복성과 익숙함에 근거한 공고한 일상의 틀에 균열을 내려면 엄청난 힘과 충격이 필요하다. 충격이 일어나는 예외적 상황은 일반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힘에 의해 발생한다. 이를 보통 ‘재난’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재난은 파국과 종말의 이미지로 상상되었다. 재난적 상황은 기존 일상과 질서에 되돌릴 수 없는 붕괴를 가져오며 오랜 시간에 걸쳐 느리게 재편된다. 결국 재난은 순간적인 동시에 장기적이고 느린 연속과정이다. 예를 들어 2005년 갑작스레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1,5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대규모 자연재난이었다. 동시에 이 재난은 미국사회가 감추고 있던 인종 문제와 관료주의 같은 사회적 문제가 켜켜이 쌓인 조건하에 허리케인이라는 물리적 충격으로 전례 없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재난의 또다른 이름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은 일본에서 일어난 충격적 지진 소식으로 시작했다. 동해 건너편에 위치한 이시까와현 노또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지진으로 지금까지 241명 희생되었고 주택 6만채가 붕괴되었다. 일본 서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이 지진은 쓰나미를 일으켜 동해 건너의 한반도 해안에 1~2미터 정도의 지진해일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이 일상화되었지만 노또반도 지진은 매우 특이하다. 일본의 서해안은 다발성 지진인 군발지진(群発地震)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지층에 축적된 스트레스 에너지인 응력을 군발지진을 통해 주기적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규모 7 이상의 지진 발생이 어렵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군발지진으로 인해 지층 틈으로 많은 양의 유체가 유입되었고 지하의 열기로 온도가 300도에 이르면서 고온·고압의 유체가 단층 틈새로 퍼지면서 단층을 파괴하는 결과를 일으켰다는 이론이 제기되었다. 이를 ‘슬로우 슬립’ 현상이라 부른다. 슬로우 슬립 현상은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원래 하나의 땅이었던 한반도와 일본이 신생대 마이오세(약 2000만년~600만년 전)에 지질학적으로 분리되면서 동해가 생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동해안과 일본의 서해안에 유사한 단층이 형성되었고 이 지층에서 다양한 소규모 지진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한반도 지각이 약 3센티미터 정도 동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는 지각이 버티는 힘이 그만큼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층에 쌓여 있는 응력이 치즈처럼 늘어난 지각을 뚫고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경주지진(리히터 규모 5.8)과 2017년 포항지진(리히터 규모 5.4)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지층에 축적된 응력이 한반도의 약해진 지각조건에서 일어난 재난이라 할 수 있다. 기상청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한반도에서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횟수는 2022년까지 무려 130회에 이른다(총 지진 발생 빈도는 1,187회에 이른다). 즉 한반도는 더이상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니며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언제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과 그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돌봄과 복구 프로그램이 연구되었고 실행되었다. 일본의 경우 1995년에 코오베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한신·아와지 대지진(당시 사망자는 무려 6,434명이었다)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정부와 시민사회는 재난대응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왔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후 1년 동안 93만명이 넘는 인원이 피해지역의 긴급 복구를 위한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했다. 비록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혼선을 일으킨 중앙정부의 리더십 문제가 노출되었지만 시민사회의 자발적 봉사와 이타적 공동체 정신은 이른바 유대와 단결을 뜻하는 밧줄인 ‘키즈나(絆)’라는 모토로 집약되었다. 새로운 공동체 건설은 단순히 복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시민사회는 재난을 일본사회에 내재해 있던 모순과 부조리, 착취가 가시화되는 구조적 위기로 이해하고 이른바 재후사회(災後社會)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을 통한 낙관적 진보를 기반으로 한 ‘근대성’의 패배를 선언하고 일본사회 고유의 정신적 가치의 회복이나 자연과 상생할 수 있는 소박한 삶의 추구 그리고 탈핵운동이나 환경운동을 이어가면서 재난으로 붕괴된 사회를 재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재난을 지역적·일회적 사건으로 취급하고 빠르게 망각하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은 결코 일회적이고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축적된 사회적 모순과 결합하면서 연속적이고 장기적인 속성을 띈다. 완전한 원상복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전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2014년 세월호참사, 1994년부터 시작되어 1,7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사건, 그리고 재작년 10월 29일에 일어난 이태원참사와 같은 사건을 통해 재난이 단순히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진처럼 예고 없이 발생하는 재난은 그 지역에 엄청난 물적·경제적 피해를 일으킬 뿐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도 남기게 된다.
지열발전소 가동을 위해 엄청난 압력의 물을 주입하는 수압파쇄 공법으로 지층에 쌓여 있던 응력을 자극하면서 일어난 포항지진과 그 이후 수백차례에 걸쳐 이어진 여진의 경험은 수많은 포항시민에게 물리적·감각적 상처를 남겼다. 일부 이재민들은 2021년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텐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이 재난은 국가적 수준에서 기억되기보다는 지역적 재난사건으로 빠르게 전락했다. 중앙정부와 서울의 관심에서 배제되는 주변화현상으로 그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어난, 안타깝지만 운이 없어 발생한 사건으로 취급되었으며 지역주민의 상처와 분노는 지층에 남아 있는 응력처럼 완전히 아물지 않은 채 남겨졌다. 포항시민과 시민단체는 결국 2017년 포항지진으로 시민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를 포항시와 포스코가 배상하도록 하는 법적소송에 돌입하여 2023년 12월 1심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러한 법적소송 방식은 재난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적 대응이라기보다는 각자도생의 생존방식일 뿐이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피해자 및 피해지역과의 연대와 공생의 방식을 고민한 흔적은 희미했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제안했던 ‘재해 유토피아’로서 이타적 공동체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재난 이후 상처와 피해를 보듬기 위한 연대와 이타적 공동체의 연결을 막는 것은 사회 기저에 깔려 있는 촘촘한 망각과 고립의 방식이며 이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에 또다른 상처를 입힌다. ‘재난의 일상화’는 21세기 한국사회의 키워드가 되었다. 구제역과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과 같은 감염병 재난과 경주지진과 포항지진, 태풍 힌남노 등 자연재난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증가하는 재난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각자도생의 개인적 대응이 아닌 최소한의 공동체적 대응원칙과 재난 후에 어떤 공동체를 재구축해야 하는가에 관한 구체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연대와 이타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김기흥 /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2024.2.20.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