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세월호참사 10주년 기획 ①] 세월호참사 10주년, 다들 “안녕하십니까?”
* 세월호참사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창비주간논평>에서는 참사 이후 10년, 그간의 시간을 기억하고 현재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연속기획을 마련하여 4주 동안 소개합니다.―편집자
곧 4·16 세월호참사 10주년을 맞는다. 2월 25일 제주에서 출발한 피해자와 시민들의 행진대열이 지난 토요일(3월 16일) 서울에 도착해 약 3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들로 구성된 행진단은 진도 팽목항과 목포를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들을 두루 찾아가 시민들과 만나고 재난참사의 현장을 방문했다. 이 행진을 기획하면서 4·16 세월호참사 10주년위원회는 행진의 제목을 ‘안녕하십니까?’ 전국시민행진으로 정했다. 세월호참사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삶이 과연 ‘안녕’한지를 묻고 ‘잊지 않을게’ ‘가만히 있지 않을게’라는 약속을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는 만나고 헤어질 때 가장 흔하게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상대방의 ‘안녕’을 묻는 것은 단순히 그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서로 챙기고 돌보겠다는,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그 인사말을 통해 날마다 확인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서로의 안녕을 돌보겠다는 약속은 사회공동체 형성의 기초다. 구성원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고, 나아가 국가를 이루는 ‘사회계약’의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이 약속이 흔들리면 일상이 무너지는 것과 더불어 사회와 국가를 작동하게 하는 신뢰의 기초가 흔들리게 된다.
약 10년 전에 일어난 4·16 세월호참사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그런 위기의식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연근해에서 침몰한 세월호 승객 476명 중 304명이 희생된 이 사건에서 생존자는 있었지만 구조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선장도 해경도 퇴선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규모 희생이 발생한 이유는 ‘안전한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에 따라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약속된 구조를 질서있게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사도 국가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피해자도 목격자인 시민들도 가장 기초적인 믿음이 배반당했다고 느꼈다. 참사는 4월 16일에만 그치지 않고 지속되었고 국가의 배반도 지속되었다. 구조가 절실한 순간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던 국가는 수색과 수습도 방기했다. 팽목항으로 달려온 절박한 피해가족들 앞에 국가는 진실을 숨기고 피해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냈다.
세월호참사에서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경험하고 목격한 것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주요 고비에서 드러나곤 했던, 비정하고 폭력적인 국가의 민낯이었다. 전쟁이나 재난 같은 예외적 상태를 빌미로 보호해야 할 사회구성원을 도리어 희생시키고 억압하고 통제해온, 괴물이 된 국가의 텅빈 실체, 주인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안보국가의 역설을 모두가 가장 극적인 형태로 다시 경험한 것이다. 더욱이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2014년은 세계경제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경제적 위기를 해결한다는 빌미로 소수의 특권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재난자본주의’와 국가권력 작용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전세계에서 가파르게 고조되던 시기였다. 한국도 예외지대는 아니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그즈음 유행했고, 2013년 겨울 대학가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 릴레이가 큰 반향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다음해 봄 일어날 세월호참사를 경고하는 옐로우카드였던 셈이다.
참사 직후 전국에서, 그리고 해외에서까지 거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희생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가슴에 달기 시작한 노란리본은 곧 참사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의 상징이 되었다. 피해자와 시민들은 더 안전한 사회, 책임을 다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망각, 외면, 책임전가, 은폐에 맞서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잊지 않을게’ ‘가만히 잊지 않을게’라는 다짐은 2014년 한해 동안 650만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 동참하여 2015년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출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국내 입법사상 최초로 재난참사에 관한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설립된 것이다.
이 특조위가 정권의 체계적인 진실은폐와 조사방해 끝에 강제로 조기해체된 후에도 피해자와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6~17년 촛불항쟁을 통해 세월호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 시민들의 촛불집회 속에 국회를 통과한 탄핵안에는 세월호참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않은 책임이 명시되어 있었다. 비록 헌법재판소는 탄핵결정문에서 ‘국민보호의무 위반’을 제외했지만, 대법원은 국가가 세월호참사와 그후의 국가폭력에 대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함으로써 그 책임을 최소한 민사적으로는 확정했다.
세월호참사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일깨웠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이며 우연한 생존자일 수 있다는 자각과 공감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세월호참사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침해된 권리가 재조명되고, 매일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시민재난과 산업재해에 관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고 산업재해와 시민재난에 관한 제도들이 개선되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은 안전하게 살아갈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무를 조문으로 명시하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참사 10주년을 앞둔 지금까지 진실이 온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고 책임자도 제대로 처벌되지는 않았다. 촛불혁명 이후 특별법을 다시 제정하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를 구성하고 재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구조방기 실태, 조사방해 행위의 윤곽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침몰 원인은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참사 당시 대통령실의 행적은 여전히 모두 밀실에 봉인되어 있고 정보기관의 사찰 내용도 일부만 공개된 상태다. 이미 짜맞추어진 진술과 은폐된 증거들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검찰의 재수사도 병행되었지만 책임있는 이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은 것은 아니다. 구조를 방기했던 해경지휘부는 지난해 말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청와대 인사 대부분도 처벌을 면했다. 피해자를 사찰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면책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나마 기무사령부의 일부 간부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책임을 인정했는데, 윤석열정부에 의해 특별사면되었다. 책임자에 대한 불처벌 문제는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넘어서야 할 큰 장애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사상 최초로 재난참사에 관해 독립적인 조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계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사소한 기록문서 한장 확보하는 일조차 법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다. 진실을 향한 작은 한걸음마저도 피해자들이 국회와 대통령을 상대로 국민서명과 청원, 집회와 시위, 농성과 점거 등 갖은 노력을 기울여 요구하고 압박한 끝에서야 조금씩 진척되었다. 이 과정에서 진상규명운동은 온전히 진상조사 방법의 정합성이나 결론의 완결성을 추구할 수만은 없었고, 진상규명의 추동력인 피해자단체와 시민사회 내외의 이견을 조율하고 통합을 유지하는 데에도 시종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수많은 가설과 의혹을 다루느라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책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에는 상대적으로 집중하지 못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원활하지 않았고, 조사영역 간 소통단절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사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한 것은 정당했으나 정작 어렵게 확보한 특별검사 요청 권한,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권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한계와 시행착오가 사참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진상규명 작업의 의미와 가치를 터럭만큼도 훼손할 수 없다. 사참위가 발표한 조사보고서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참여 속에 이루어진 사상 최초의 종합적이고 독립적인 진상규명 작업의 결과물로서, 진실에 관한 권리를 되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해 분투해온 ‘상처입은 치유자들’의 족적이며 그들의 승리를 알리는 역사적 기념비다.
사참위는 3년 6개월여의 조사활동을 마치면서 세월호참사와 그후의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수반의 인정과 사과, 국가폭력에 대한 추가조사를 권고했다. 유사 재난참사의 예방과 피해자 권리 침해 방지를 위한 방안도 함께 권고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인정도, 사과도, 추가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의 제도개선책에 대해서도 반응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세월호참사의 기억을 지우고, 피해자와 시민들의 연대를 흔들려는 역주행에 몰두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의 촛불개혁이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기에 이 퇴행과 역풍이 더 뼈아프다.
정부여당과 수구언론들은 지난 2년여간 집요하게 세월호참사 피해자단체와 시민단체들에 ‘종북’ 이미지를 덧씌우고 ‘이권카르텔’로 매도해왔다. 진실과 책임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시도된 입법적·행정적·사법적 노력을 싸잡아 ‘세금낭비’ ‘재난의 정치화’로 오도하고 규정하려 한다. 최근 이어진 10·29 이태원참사, 오송 지하차도참사 같은 대형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정략적 의도 때문에 세월호 지우기는 더 거세지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와 모독도 세월호참사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태원참사 피해자들에게도 마치 형벌처럼 되풀이된다.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은 변화를 집요하게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저항도 우리가 지난 10년간 만들어온 변화를 뒤로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자신이 변했다. 권리에 대한 자각도 국가의 책무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예를 들어 국가는 이태원참사를 주최 측이 없는 축제에서 일어난 참사라고 정의하고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하려 했지만 피해자들과 시민의 격렬한 항의에 직면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후퇴시키려던 정권의 시도도 시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집권여당은 세월호참사 지우기, 이태원참사 지우기에 열중하면서도 이번 총선에서 안전과 돌봄을 주요 정책공약으로 내걸어야 했다. 다른 주요 정당들도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 시민들의 변화된 눈높이가 압박요인으로 작용한 결과다. 더욱 안전하고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변화는 더디지만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참사 지우기, 이태원참사 지우기가 노골화되는 지금이, 4월 16일의 다짐과 약속의 실천이 절실한 시간이다. 특히 외환외기 전후에 태어나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를 함께 겪어야 했던 4·16세대가 퇴행과 역주행에 분노하고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과연 안녕한지 되묻고 우리 모두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이태호 /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2024.3.1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