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세월호참사 10주년 기획 ④] 세월호를 기억하는 우리가 힘을 내야 할 때
* 세월호참사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창비주간논평>에서는 참사 이후 10년, 그간의 시간을 기억하고 현재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연속기획을 마련하여 4주 동안 소개합니다.―편집자
10년 전 세월호참사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울어가는 세월호를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모든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단 한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간절한 구조요청에 응답해야 할 정부는 무능했다. 그 대신 유가족을 사찰하고 진상규명을 가로막으며 언론을 통제하고 시민들을 통제하는 데에만 능숙했다.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에 유가족과 시민들은 그 아픔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마음을 다해 노란리본을 만들어 나누고, 거리로 나와 외치고, 유가족과 함께 걷고, 함께 단식하고, 농성장을 지켰다. 그러나 10년이 된 지금도 유가족과 시민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나?
10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참사가 계속되었다. 2017년 29명이 사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 비정규직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참사가 있었다. 2020년에는 이천 물류창고에서 38명의 희생자를 낸 화재참사가 발생했다. 2022년에는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던 이들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023년에는 폭우로 오송 지하차도에서도 14명이 사망했다. 참사가 계속되고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결국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하게 된다.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 공동체가 무너지고, 위험이 약자에게 전가된다.
베를린에 방문했을 때 마을 곳곳에 명패가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이웃인 유태인 아무개가 살았던 곳을 알리는 명패이다. 저 멀리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의 이웃이 어떻게 끌려가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그 명패들이 생생하게 증언한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삶에서 계속 환기함으로써 살아남은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재차 질문한다. 홀로코스트를 박제된 무언가로 남겨버리는 순간 약자에 대한 학살은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생명과 안전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삼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세월호참사는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10년의 세월 동안 빛바랜 노란리본처럼 아픔은 희미해지고 유가족과의 만남은 멀어졌고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마무리한 지금, ‘더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호는 10년 전에 벌어졌고 마무리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세월호는 정권의 성격,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교육과 행정 시스템 등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 문제를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세월호는 아직도 우리에게 상흔으로 남아 있다. 위험사회,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시민들의 힘으로 안전사회를 만들려는 의지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무엇을 환기하여 다시 기억할 것인가
세월호참사는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우리에게 환기한다. 정부는 위험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축제에 가든, 수학여행을 가든, 일터에서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은 안전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그 권리를 지킬 책임이 있다. 정부는 개인이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을 예측하여 예방하고, 일이 발생했을 때 잘 대응하고 수습해야 한다. 피해자는 정부가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안전권을 침해당한 사람이기에 훼손된 권리를 복원하기 위해 피해자의 권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안전권과 피해자 권리를 요구해야 이태원참사 때처럼 ‘신종재난’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한 정부를 저지할 수 있다.
세월호참사는 참사가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세월호참사 이후 유가족과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정부는 이를 방해했을 뿐 아니라 사참위의 의미있는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사참위의 경험 덕분에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나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참사 등에서 수사와 별도로 원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태원참사의 원인 조사를 위한 특별법은 대통령거부권으로 무너졌고, 오송참사 때는 시민대책위원회가 자체 조사에 나서야 했다. 세월호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재난과 참사에 대한 독립적 상설 조사기구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월호참사는 애도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공포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운이 나빴다거나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참사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며, 모두가 이를 직시하고 변화를 위해 애써야 한다. ‘애도’는 이 참사를 공동체의 상처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세월호참사를 통해 우리는 애도의 의미와 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태원참사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위패와 영정 없는 분향소를 차렸고,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는 아직도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 우리는 세월호를 더 기억해야 한다.
결국 세월호참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기억하는 이들의 끈질긴 목소리를 통해서만 세상이 더 안전해진다는 것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자신의 과제를 넘어 다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연대했다. 그 힘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유가족과 ‘함께’하는 것에서 확장하여 우리 스스로가 생명과 안전의 주체가 되어, 위험을 제도화하거나 외주화하는 기업과 정부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 스스로 안전을 위한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고 세월호를 다시 새겨야 한다.
또다른 재난참사의 분향소를 찾아가는 마음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우리의 다짐이 흐릿해진 것처럼 보여도 다른 형태로 자라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을 성사시키려고 주변에 전화를 돌리던 그 마음으로, 생활 주변의 위험요소를 다시 돌아보는 마음으로, 재난약자를 지원하는 마음으로, 또다른 재난참사의 분향소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참사의 유가족들도 힘을 내서 진상규명을 외칠 수 있었고, 조금씩이라도 안전과 관련한 제도를 바꿔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도생으로 팍팍해지는 사회에서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힘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월호 10주년에는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더 마음을 내면 좋겠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숙제를 정부나 국회가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독립적인 진상규명기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22대 국회에서 생명안전기본법이 통과되도록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4·16 생명안전공원이 반드시 올해 안에는 조성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이태원참사와 오송참사 등 참사 피해자들이 외롭거나 지쳐서 스러지지 않도록 더 많이 모이고 더 많이 연대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조금 더 힘을 내면 좋겠다.
김혜진 /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
2024.4.1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