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분단체제론의 삼중체제 인식: 백낙청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지난해 가을 유튜브 ‘백낙청TV’에 초대받아 백낙청의 저서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창작과비평사 1994, 개정판 창비 2021, 이하 『공부길』)을 새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분단체제론의 기원과 계보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와 한반도에 나타나고 있는 위기적 징후를 체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시각을 가다듬게 해주었다.
『공부길』은 분단체제론 형성의 과정과 담론의 기본 골격을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권두에 배치된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이하 「인식」)가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일 것이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1992년 겨울호 지면에 처음 발표되었고 1994년 단행본을 출간할 때 보론을 덧붙인 것이다. 이 글에서 제시된 “분단체제의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들이 뒤이어 나오는 「분단시대의 지역감정」(1987), 「분단시대의 민족감정」(1988), 「분단시대의 계급의식」(1991)이다.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감정이나 의식에 대한 탐구를 거쳐 특수한 사회체제의 전체 모습을 서술하고자 하는 통찰의 과정을 보여준다.
김종엽은 분단체제론을 사회과학적 맥락에서 풍부하게 해석한 연구자로 『분단체제와 87년체제』(창비 2017)를 출간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창비 1987』에 실린 「현단계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족운동의 과제」라는 좌담이 분단체제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이 좌담은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의 분단체제론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간의 논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백낙청이 한반도의 ‘독특한’ 사회구성체를 인식하기 위해 분석단위 문제를 제기한 것을 중요한 지점으로 평가했다. 1987년의 좌담에서 분석단위 문제를 현재의 한반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종엽은 이 좌담 이후 백낙청이 1988~91년의 여러 글을 거쳐 1992년의 「인식」에서 분단체제론의 이론적 틀을 가다듬는다고 보았다. 분단된 한반도를 분단체제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남북한 각각의 체제로 이루어진 한반도(분단체제)는 일정한 자기재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내재적으로 불안정한 하나의 체제이다. 그리고 “이 체제(분단체제)는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 존재하며 (…) 분단체제의 유지는 냉전체제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그것의 형성 또한 냉전에 의한 것만도 아니”(김종엽, 45~46면)라는 점을 부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세계체제와 분단체제의 관계이다.
이에 대하여 평자는 『공부길』의 10번째 글인 1991년의 「분단시대의 계급의식」(이하 「계급의식」)이라는 글이 매우 중요한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인식」이 ‘체제론’을 본격적으로 거론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계급의식」에서는 이미 ‘체제’의 본질적 요소와 의미를 훨씬 더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경제의 기본단위를 국민경제로 보지 않는다, 세계경제를 기본단위로 봐야 한다는 논의를 전개한다(149~51면). 세계경제 차원에서는 민족문제나 계급문제가 둘 다 내부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계급의식」의 분석단위 인식을 기본으로 밀고 나가면,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의 하위체제이며 분단체제의 형성과 유지는 세계체제와 긴밀히 연동한다고 볼 수 있다.
평자는 분단체제론을 이론적으로 심화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서 분단체제가 하나의 체제인가 세개의 체제인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종엽은 분단체제론을 삼중구도, 삼중체제, 삼중조망 등의 개념으로 구조화하였다.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한 각각의 체제라는 삼중구도” “삼중의 체제와 대응하는 삼중의 운동” “세계체제, 분단체제, 남북한 각각의 체제라는 삼중 조망” 등을 논의했다. 이때 삼중의 체제는 세개의 체제인가 하나의 체제인가? 김종엽은 “세계체제·분단체제·87년체제의 삼중 조망”을 논의하면서 세계체제론, 분단체제론, 87년체제론은 세계, 한반도, 한국이라는 분석단위에 상응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김종엽, 404면).
세계체제론은 세계경제의 규정성을 강조하면서 국민국가적 전략에 회의적이고, 그래서 대안전략의 구상과 실천 측면에서는 구체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분단체제론이 제기된 것은 세계체제에 대한 분단체제의 특수성과 상대적 자율성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실천적 대안의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체제나 남북한 체제의 자율성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세계경제의 이행기 국면에서는 상대적 자율성의 공간은 좁아진다. 그러니 삼중조망을 세개 체제, 세개 분석단위로 인식하는 것으로까지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평자는 「계급의식」의 인식에 입각하여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한 각각의 체제”를 하나의 분석단위로 해석하는 데에 다시 주목해본다. 흔히 하는 것처럼 건축물 비유를 떠올려보면 한반도 분단체제는 삼층으로 구성된 하나의 건축물체제이다. 평자는 하나의 체제에 세개의 층위와 경제적, 정치·군사적 영역(측면)이 있다고 보고, 경제적 측면에서 ‘한반도경제’를 논의한 바 있다. “한반도경제는 세계체제의 일환으로서의 한국경제이고, 세계경제-분단경제-국민경제의 세개 층위를 가지면서 정치적·군사적 영역과 상호작용한다.”(졸고 「세계체제 카오스와 한반도경제」, 『창작과비평』 2024년 봄호, 46면)
삼중의 체제가 세개의 체제의 결합이라면, 국민국가 중심 실천의 비중이 커진다. 그러나 이는 분단체제론의 기본 인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두가지 의미를 함께 지닌다. 하나는 세계체제의 규정성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하위체제의 자율성 공간을 확장해서 세계체제를 변혁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삼중체제가 하나의 체제라면, 세계경제의 규정성을 인식하면서 그를 변혁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중도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세교연구소의 서평웹진 <잔다리서가>에 소개된 서평입니다.
이일영 /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2024.4.23. ⓒ창비주간논평·잔다리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