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지역 돌봄, 의료‧복지‧요양‧주거의 ‘비빔밥’이 필요하다
1996년 가을 네덜란드의 보건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소장인 듯 보이는 나이 지긋한 의사가 나를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산뜻하고 멋진 보건소를 돌면서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는 주민들이 돌봄 신청을 하면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같이 나가 ‘원스톱(one stop) 판정’을 한다고 했다. 한 사람에게 건강의 욕구(needs)와 사회적 욕구가 동시에 있을 수 있으니, 함께 나가 판정하고 서비스 계획도 같이 세운다는 것이다. 서비스 계획을 세우는 기준은 당연히 신청자의 욕구 분석이다. 그에게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 ‘비빔밥’을 만들어 집으로 찾아가 제공해준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서 정신보건과 장애인 보건의료체계를 연구하면서 지역사회 돌봄을 꿈꾸고 있던 내게는 너무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이었다. 네덜란드의 가을은 음산하고 검소한 점심은 너무 맛이 없었지만, 그들이 하는 일만은 내게 큰 희망이 되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나간 지금, 한국은 어떠한가? 어느 집 80대 노인에게 뇌졸중이 생겼다고 상상해보자. 일단 신경외과가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 회복된 다음에도 당분간은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워 대개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감당해주지만 본인부담금과 비급여항목 등이 만만치 않다. 다행히 요양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가더라도 의학적 욕구는 남아 있다. 종종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회적 욕구도 새로 생긴다. 수발을 받아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신청해서 요양보호를 받는다.
치료와 수발이 계속되면 가족이나 보호자에게는 돌봄노동 부담과 소득 문제가 생기고, 환자 본인은 사회관계가 단절되어 고독과 우울 속으로 빠져든다. 반신마비가 있는 중풍 환자 같은 경우는 병원에 가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렵다. 욕창이나 폐렴이 생기기도 쉽다. 그러면 돌봄 부담도 같이 커진다. 결국 다시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 들어가 장기 입원하거나, 거기서 돌아가시는 일도 많다.
환자와 보호자의 처지에서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은 무엇일지 상상해보자. 의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진료해주고, 간호사는 의사보다 더 자주 가정간호를 해준다. 환자가 회복기에 들어서면 재활의학과 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이 재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운동관리사가 운동도 시켜준다. 사회복지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소득 문제는 없는지, 가족간 갈등이 생기지 않는지 살피고 필요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 요양보호사는 지금보다 더 이르게, 길게, 다양하게 요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보조기기를 지급해준다. 증상이 안정되면 휠체어가 필요하고, 조금씩 걷게 되면 보행기가 있어야 한다. 보조기기는 환자 몸의 일부가 되어 잃어버린 기능을 대신해준다. 이에 맞추어 집도 고쳐야 한다. 보행기가 다닐 수 있게 문턱을 없애고 좁은 문을 넓혀준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미끄럼 방지 패드를 깔아준다. 그러면 본인에게 편하고 안전한 집이 될 뿐 아니라 가족의 돌봄 부담도 줄어든다.
‘실버타운’이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1~2인가구 노인 입주자를 위한 임대주택이면서 밥도 청소도 빨래도 해주는 주택을 ‘지원주택’(supportive housing)이라고 한다. 돌봄 기능을 내장한 주택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에 들어가면 자기 인생을 유지하면서 돌봄도 받을 수 있으니,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시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최상류 1%쯤이 아니라면 입주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그런데 만일 이런 지원주택을 대량 공급하여 중산층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서구에서는 이미 노인인구의 2~10%에 이러한 지원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한국의 노인인구가 이제 1천만명이라고 하니, 이를 환산하면 20~100만호에 이른다. 만일 노인지원주택이 지어지면 노인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LH가 이런 변신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돌봄은 문재인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사업 명칭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이는 중앙정부의 정책 의제로 확고히 채택되었고, 지방자치단체들과 시민사회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내용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중요한 진전을 이룬 셈이다. 윤석열정부도 관심을 놓지 않았다. ‘통합돌봄’ 대신 ‘의료-돌봄 통합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정책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전 정부에서 다소 경시되었던 의료와 복지의 연계를 강조한 것은 좋은 착안이다. 물론 아직 그 ‘연결’의 방식이 잘 개발되어 있지는 않다.
지난 2월 말, 총선을 앞두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중요한 법안 하나가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이다. 공식 약칭은 ‘돌봄통합지원법’이라는데 이것도 어려우니 그냥 ‘돌봄법’이라 부르기로 하자.
돌봄법은 2년 후인 2026년 3월에 발효한다. 그렇게 되면 지역사회 돌봄은 전국적으로 법제화·의무화된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본적 패키지와 함께 각 지역에서는 자기 특성을 반영하는 독자적 사업들도 다수 시행될 것이다. 마침 다음 지방선거가 돌봄법이 발효되는 그해 3월 직후인 6월 3일로 예정되어 있다. 각종 돌봄 관련 공약이 폭증할 것은 자명하다. 그렇게 지역별 돌봄의 경연시대가 열릴 듯하다. 결국 2026년은 지역 돌봄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고, 2024년부터 26년 사이에 앞으로 수십년 우리 사회에서 시행될 돌봄의 기본 형태가 만들어질 것이다.
네덜란드 보건소 방문을 마치고 “소장님께서 잘 안내해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건네자, 그분이 펄쩍 뛰었다. 나는 소장이 아니라 그저 의사라며 손을 저었다. 그럼 누가 소장이냐고 하니 소장이 없단다. 다들 대등하게 협조하면서 일한다고 했다. 나는 들리지 않는, 그러나 내가 질러본 것 중 가장 큰 비명을 질렀다. 지역사회 돌봄의 성패는 관계 전문가들의 수준 높은 참여와 협조에 달려 있다.
김용익 / (재)돌봄과미래 이사장,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2024.5.1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