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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빠리올림픽, 생드니의 어두움은 사라질까

박해남

1980년대 이후 서유럽의 도시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떠난 공장들을 대신하여 금융, 문화, 관광산업을 키우고 홍보하고자 했다. 복지국가의 이름으로 빈민을 임대아파트 등에 집중시키면서 발생한 실업과 범죄 등도 해결해야 했다. 올림픽은 서구의 도시들에게 과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시각적 차원에서는 그랬다. 1992년 올림픽을 앞두고 해안의 빈민가와 공장지대를 관광단지와 중산층 주택으로 바꾸었던 바르셀로나, 2012년 올림픽을 앞두고 폐공장과 산업폐기물이 가득했던 스트랫퍼드를 중산층 주거지로 바꾸어낸 런던이 대표적이다.


2024년 빠리올림픽 역시 궤를 같이한다. 근대 세계의 문화, 예술, 관광의 중심인 빠리이지만, 이곳에도 과제로 존재하는 장소가 있다. 오늘날 프랑스의, 아니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과제였던 이 장소의 이름은 생드니다. 생드니는 좁게 보면 왕가의 묘가 있는 생드니대성당 주변을, 넓게 보면 빠리 동북부 교외(banlieu)인 쎈생드니(Seine-Saint-Denis)를 가리킨다. 더 확장하면, 빠리 중심부와 생드니대성당 중간에 있는 생드니문(Porte Saint-Denis) 바깥의 18, 19, 20구 역시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 빠리보다는 생드니에 가깝다.


1848년 6월, 빠리의 노동자들은 봉기했다. 2월 당시 왕정 타도에 힘을 모았던 사회주의와 공화주의자 사이의 간극은 커져만 갔다. 6월에 이르러 보수적 공화주의자들은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이 주도한 국민작업장(Ateliers nationaux), 레미제라블이라 불린 이들의 생계를 마련해주던 공간을 없앤다. 이에 봉기한 것이다. 이들이 바리케이드를 친 곳은 생드니문이었다. 엥겔스는 『신라인신문』에 이 문을 기점으로 빠리는 동서로 쪼개졌다고 썼다. 생드니문 남쪽과 서쪽이 박물관, 극장, 아케이드 등 발터 벤야민이 그려냈던 부르주아 모더니티의 공간이었다면, 동쪽과 북쪽은 공장과 빈민가였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쎄는 생드니문 동쪽을 바라보며 “인도”(India)라고 지칭했다. 생드니문은 모더니티와 그 타자를 나누는 이정표였다.


진정한 모더니티의 타자는 그보다 더 바깥에 있다. 빠리 동북쪽 외곽의 쎈생드니야말로 탈식민주의 이론가 월터 미뇰로가 말한 ‘어두운 모더니티’, 즉 서구 식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철로와 운하가 교차하는 이 지역의 공장들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이주민을 불러들였다. 이주의 물결은 1930년대 내전을 피해 온 스페인 공화주의자들로 시작되었지만, 1945년 이후엔 북부와 중부 아프리카 구식민지 출신 이주민들이 다수를 점했다. 노동자들을 위해 대량으로 지어진 임대주택(HLM) 역시 이들이 채워나갔다.


1960년대부터 정부는 이곳의 공장들을 중소도시들로 이전하였다. 균형발전이 명분이었지만, 이 지역의 강력한 노동운동을 견제할 요량이기도 했다. 여기에 탈산업화와 제조업의 몰락이 더해지자 이곳의 실업률은 치솟아 올랐다. 공장이 사라지자 교육에서 소외된 이주민 자녀들은 일할 곳이 없었다.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이들을 가리킨 단어였던 ‘사회적 배제’는 이 지역 젊은이들의 상황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경제적 빈곤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정치적 무력감 박탈까지 경험하는 상황 말이다. 쎈생드니를 지리적으로 표현했던 개념인 방리유(교외)는 차별과 배제 속에 고통받는 이들의 장소를 일컫는 사회학적 개념이 되었다.


2005년. 방리유의 배제된 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소년들의 죽음 이후 쎈생드니를 포함 프랑스 전역의 방리유에서 폭력, 절도, 방화가 뒤따랐다. 사회학자 자끄 동즐로 등 지식인들은 차별의 민낯을 드러낸 도시정책과 사회정책을 바꿔야 한다 말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2015년, 생드니 중심에 위치한 스따드 드 프랑스 주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 직후 빠리 중심부로 향했던 범인은 쎈생드니에 몸을 숨겼다. 당시 쎈생드니의 청년 실업률은 약 50%였고, 지역 평균소득은 전국 평균의 약 56%였다. 지금도 한국정부와 언론은 쎈생드니와 18, 19, 20구의 방문 자제를 권하고 있다.


이 어두운 모더니티의 수도를 바꾸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존재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주경기장 스따드 드 프랑스는 생드니대성당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스타디움은 고속도로와 지하철 노선을 불러들였다. 빠리가 제출한 2008년과 2012년 올림픽 신청서에서도 생드니 재개발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스따드 드 프랑스 주변 7개의 경기장과 미디어센터가 계획되었고, 낡은 공장지대였던 뽀르뜨 드 라 샤뻴도 재개발이 계획되었다. 그러나 2008년과 2012년 하계올림픽의 개최지는 빠리가 아니었다. 2013년, 미디어센터 부지에는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 본사와 프랑스 제2의 통신사인 SFR 본사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주배경을 지닌 생드니의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일할 수 없었다. 민영회사인 SFR은 5년 만에 생드니를 등졌다. 부르주아 모더니티는 여전히 생드니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2007년, 사르꼬지 대통령은 ‘그랑 빠리’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이후 런던 같은 글로벌 시티들에 비해 약해진 빠리의 경쟁력 강화가 목표였다. 2005년 쎈생드니 젊은이들이 보여준 불만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수도권 전체의 대대적 개조를 통해 19세기 오스망의 빠리 개조에 비견될 만한 변화를 예고한 이 프로젝트 역시 생드니를 빠뜨리지 않았다. 수도권 광역전철(Grand Paris Express) 4개 노선은 스따드 드 프랑스 앞 생드니쁠레옐 역에서 교차한다. 지역의 새로운 상징이 될 역사의 설계는 2021 토오꾜오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맡았다. 여기에 2024 빠리올림픽은 수영경기장과 선수촌, 그리고 미디어센터같은 최신의 건축물들을 더해주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생드니가 어두운 모더니티와 단절했음을 선언하고자 한다. 쎈 강, 트로까데로 광장, 에펠탑, 꽁꼬르드 광장, 베르사유와 더불어 부르주아 모더니티의 수도 빠리의 일부가 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다. 식민지로부터 생드니로 건너온 이들과 그 후손들은 여전한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학자 니꼴라 주냉의 『부자 동네 보고서』(다산출판사 2015)는 생드니대학 사회학과 학생들이 빠리의 부촌에서 마주한 차별의 시선들을 보여준다. 소르본대학 석사학위를 갖고도 면접조차 볼 수 없던 소설가 아미드 탈렙은 자비에르 르끌레르라는 ‘프랑스스러운’ 이름으로의 개명 후 수십통의 면접 대상자 통보 전화를 받았다. 이같은 식민주의가, 차별이, 빈곤이, 배제가 지속된다면 생드니는 계속해서 어두운 모더니티의 수도로 남을 것이다. 생드니의 새롭고 세련된 건축물들은 식민주의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가리는 위장막이 되거나, 모더니티의 수도 빠리의 영토를 생드니까지 확장하고 이주민들을 축출하는 장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생드니는 빠리와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박해남 /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2024.7.1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