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관계인구’의 시작과 끝은 ‘지역재생 주체형성’: 다나카 데루미 『관계인구의 사회학』
『관계인구의 사회학: 인구감소 시대의 지역재생』(関係人口の社会学: 人口減少時代の地域再生, 김기홍 옮김, 한스하우스 2024)은 베테랑 지역 언론인이자 연구자인 타나까 테루미(田中輝美)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고쳐 2021년 오오사까대학에서 출판한 책이다. 농민신문사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며 사회학 박사로서 활발한 연구 및 학회 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기홍 문화부장의 꼼꼼하고 친절한 번역으로 올 1월 한국에 소개되었다. 무척이나 닮은 저자와 역자의 경력과, 이 책이 본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독자라면 먼저 알고 있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저자는 박사학위 논문에 요구되는 학술적 엄밀함과 글쓰기의 제약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 애썼다. 이 책의 사실상 본문에 해당하는 제Ⅱ부 「관계인구의 다양한 모습」은 잘 훈련된 기자의 르뽀르따주 모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마네현 아마정의 도젠고교를 되살린 ‘고교매력화프로젝트’, 시마네현 고오쯔시의 셔터거리 상점가 부활, 카가와현 만노오정의 소멸하는 마을에서 안심하며 살아가기에 관한 사례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이 책을 읽을 만하게 만든다. (저자가 따로 강조한 바와 같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들과 다양한 사건들로 구성된 사례들을 저자는 ‘관계인구’와 ‘지역재생’이라는 두 키워드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 소개한다(이처럼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희망을 이끌어낸 이들의 기록은 이미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지역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다루는 독립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 홈페이지를 한번 둘러볼 만하다).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사례에 대한 소개만 아니라 그것을 역사적·개념적·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노력에 결코 소홀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제Ⅰ부 「관계인구란 무엇인가」였다. 일본의 지역언론인들에 의해 2016년에 새롭게 생겨난 ‘관계인구’라는 개념―교류인구와 정주인구 사이에서 잠자는 존재(타까하시, 사시데)―은 채 3년도 되지 않아 일종의 ‘붐’을 이루었다. 총무성은 2018년부터 아예 ‘관계인구의 창출사업’을 시범 실시했고, ‘지방창생’의 방침을 정하는 제2기 ‘마을·사람·일자리 창생종합전략’에서 관계인구의 창출·확대가 제기되었다. 저자는 이런 흐름에 그저 올라타는 것을 거부했다. ‘관계인구’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주창하면서도 그것과의 긴장감과 거리감을 유지하려 했다. 제Ⅰ부에서는 ‘관계인구’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 일본사회의 ‘인구감소’의 양상과 원인 분석, 그것에 대한 (정책적) 대응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수많은 정책보고서나 관련 서적에서, 그리고 학위논문에서 발견되곤 하는 ‘선행연구 검토’나 ‘정책 히스토리’ 서술의 무미건조함이나 무성의함과 확연히 구분된다.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있다.
타나까 테루미는 ‘관계인구’를 “인구의 양(量)이 아닌 질(質)적 관점으로 전환”하는 차원에서 접근한다. 그래서 ‘주체형성(론)’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며, 그것을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관계자본론에 기초해 설명한다. 제Ⅲ부 「관계인구와 지역재생」은 자신이 앞서 소개한 사례들을 대상으로 이론적 설명을 시도한 저자의 고군분투로 가득하다. 박사학위 논문이었기에 반드시 요구받았을 작업인 셈인데 다소 도식적이고 반복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상쇄할 만큼의 묵직한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언론인이자 연구자인 동시에 지역과 현장을 스스로 바꾸(려)는 활동가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장 활동가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문제이자 고민은 ‘주체(형성)’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시작이자 끝이고, 목표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지역재생에 있어 ‘관계인구’의 역할은 “지역재생의 주체 형성, 창발적 문제해결의 촉진”이라고 명확히 정리된다. 지역재생의 의미도 “주체의 형성과 지역 과제의 해결이라고 하는 과정의 연속”이라 정의된다. 그렇기에 다소 도발적인 주장 즉, “지역의 존속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지역재생의 모습은 아니”며 “오히려 관계인구의 수는 적어도 좋다”고까지 말한다. 지역주민의 역할은 “관계인구가 관여하는 계기가 되는 ‘관계여백’을 설정하고, 관계인구와 협동”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계인구와 사회관계자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역주민이 주체성을 획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계인구’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관점과 주장은 “관계인구의 양적 증대”에 관심을 갖는 다른 접근들과 명확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역자 역시 토론회나 인터뷰 기사 등을 통해 ‘고향사랑기부제’에 주목하며 이는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방문하는 ‘관계인구’의 증가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한다. 2023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협동연구보고서 『도농상생의 농산어촌 유토피아 실천모델 구현을 위한 관계인구 활용 방안』(정책연구포털 NKIS에서 다운받을 수 있음)에도 ‘관계인구’의 확대와 활용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지역의 소멸을 걱정하고 지역의 재생을 목표로 삼는 이들에게 당연한 접근방식이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훨씬 근본적이다. 예컨대 이 책의 6장 카가와현 만노정 사례에 등장하는 다구치씨는 목표를 지역의 존속에 두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며 “(마을의 존엄사를 지지하는) 소수파”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저자 역시 “지역의 존폐와 관계없이 (…) 지역주민이나 그런 삶에 질적인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서늘하기까지 하다. 지역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감히 내놓기 어려운 결론이다.
『관계인구의 사회학』은 훌륭한 저자와 뛰어난 역자 덕분에 비교적 쉽게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인구감소 시대의 지역재생’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선 ‘지방소멸’과 ‘인구절감’ ‘대한민국 소멸’ ‘인구비상사태’라는 등의 극단적 진단이 넘쳐나고 있다. 비록 일본이 먼저였지만 심각성이나 속도·강도 모두 한국이 압도적이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주도로 각종 저출생 대책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고,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필두로 ‘이민’이 인구대책 일환으로 급속도로 다뤄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역시 균형발전과 지역재생을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인구’는 ‘생활인구’에 더해 한국사회에 도움이 될 개념이자 정책일 수 있다. 일본이나 한국의 유사한 대책과 사례들에 ‘관계인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련 사업을 새롭게 기획해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긴 안목으로 본다면 관계인구를 대신해 지역재생에 관한 새로운 지역외부 주체에 대한 용어나 개념도 생겨나올지 모른다”며 책을 마무리한다. 결국 ‘관계인구’란 ‘지역재생 주체형성’의 관점에서 다뤄질 때에야 특별히 유용하다는 것을, 저자는 마지막까지 강조한 셈이다.
* 이 글은 세교연구소의 서평웹진 <잔다리서가>에 소개된 서평입니다.
홍일표 /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2024.7.30. ⓒ창비주간논평·잔다리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