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가족과 사회보장의 본질을 질문하다: 동성 동반자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의 의미



김지혜

2021년 2월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시작된 한 동성부부의 소송이 2024년 7월 18일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로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원고인 소성욱씨의 승리.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용민씨와 소성욱씨의 관계가 사실혼 관계의 사람과 다를 바 없는데 두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원고의 피부양자 자격을 거부한다면, 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명시했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이렇게 말한다.


동성 동반자를 직장가입자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로, (…)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의 피부양자제도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 ▶전문 보기


대법관들은 건강보험공단의 처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 동의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판결문 속에서는 별개의견, 보충의견, 별개의견에 대한 두개의 보충의견을 통해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제도의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동성 동반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인지, “동반자 관계의 본질은 무엇인지”, “사법의 본질”에 비추어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등 본질을 탐구하는 논제를 밝히고 의견을 피력한다. 65쪽에 이르는 판결문에서 ‘본질’이라는 단어는 총 46회 사용되었다.


본질을 묻는 거대한 질문들 앞에서, 이번 판결은 한가닥의 구체적인 질문을 풀어낸 것이었다. 대법원은 사회보장제도 가운데 하나인 건강보험제도의 피부양자제도를 두고 질문을 시작한다. 피부양자란 당연히 법이 부양하도록 지정한 가족이고 국가는 그런 가족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관념을 넘어, 애초에 국가는 왜 피부양자를 보호하는 것이며 또 보호해야 하는 가족은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다수의견은 건강보험제도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그가 직장가입자의 인생의 동반자로서 생계를 함께하면서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동반자”, 이번 사건의 성격을 드러내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현실적이며 실존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한 건강가정지원법의 정의나,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며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규정한 민법 제779조와는 사뭇 다른 표현이다. 가족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법이 관계의 범위와 형성 방식을 정하는 권위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정말로 가족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단어다.


대법원은 원고를 ‘동성 동반자’라고 부른다. ‘커플’ ‘동거인’ ‘배우자’가 아닌 ‘동반자’라는 표현은 애정관계, 거주상태 혹은 법적 신분을 떠나 오랜 시간 굴곡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이 단어는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이 보충의견에서 똘스또이의 단편소설을 언급하며 던지는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화두로 연결된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어떤 인생을 사는지에 관한 인간 실존에 관한 질문 앞에 두 대법관은 이렇게 말한다. “그 누구의 가정공동체도 타인이나 국가에 의해 폄훼되어도 괜찮은 것은 없다. 동성 동반자 관계에서 꾸리는 가정공동체도 여느 사람과 똑같이 소중한 가정공동체이다.”


이번 판결이 동성간 사실혼을 인정했다거나 원고의 신분을 ‘배우자’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동반자’라는 표현은 아직 동성간 결혼에 관한 판단까지 나아가기 어렵다는 대법원의 고민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여러 나라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기 전 단계에서 생활동반자법과 같이 동반자 관계를 인정하는 제도를 먼저 만들고 그 이후에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이번 판결은 궁극적으로 동성관계에서 결혼한 배우자로서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과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겠다는 결론에 이른 이 과정은 결과론적으로 축소될 수 없는 수많은 논의를 담고 있다. 별개의견을 낸 대법관들이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논하는 “혼인의 본질”에 관한 질문은, 사실 동성 동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다. 혼인의 본질은 이성의 결합인가, 자녀를 출산하는 것인가, 부양의무를 부담하는 것인가, 일가를 이루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가는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그럼 법이 혼인을 인정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묻게 한다. 법이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대신 특정한 삶의 형태를 강요할 때, 우리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관한 본원의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성 동반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한 이번 판결은 사회보장제도에서 동성부부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역사적이지만, 가족과 사회보장의 본질에 관한 한층 더 깊은 사회적 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대법원이 뜨거운 논쟁 속에서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나 배제, 혐오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관여 법관 전원의 일치된 생각일 것이다”(권영준 대법관의 별개의견에 대한 보충의견)는 원칙을 대화의 기초로 삼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는다.


2001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한 지 23년이 지났고 이제 전세계 37개 국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시점에서 진행되는 늦은 대화다.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이미 풍부한 사례와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는 점도 기억하자.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권리에 관해 이어질 앞으로의 대화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한 삶과 제도의 본질을 찾는 여정이 되도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자.


김지혜 / 국립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선량한 차별주의자』 『가족각본』 저자

2024.8.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