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통상임금이라는 임금계산 도구
박은정
2024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만장일치 판결로 통상임금에서 고정성에 관한 법리를 폐기하고, 근무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로 선고했다. 통상임금의 요건으로서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의 의미를 구체화한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11년 만에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논쟁은 매우 고질적인데, 수년 전 한 외국 대기업은 통상임금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기업경영이 어렵다며 대통령에게 직접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통상임금이 대체 뭐길래?
근로자는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계산해서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의 핵심이다. 이 문제를 간명하게 풀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 임금을 지급하는 현장에서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는 퇴직금은 어떻게 계산해 지급해야 하며, 연장근로나 야간근로를 할 때 지급하는 가산수당은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임금에 관한 사항을 명시해두고 그에 따라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임금만을 매달 받았다면 계산법은 간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액의 총량은 실제 근로제공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근로의 양과 질에 따라 변하기도 할 뿐더러 근로자의 근속연수, 성과, 임금 계약의 내용, 특별한 사정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근로기준법령은 평균임금과 통상임금이라는 도구적 개념을 설정해두고, 퇴직금이나 휴업수당과 같은 임금을 계산할 때는 평균임금 개념을 사용하고,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을 계산할 때는 통상임금 개념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즉 통상임금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근로자의 추가근로수당의 액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으로서, 주로 연장근로수당과 같이 시간 단위로 추가 지급해야 하는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근거가 된다. 그렇기에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정기성’(임금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것)과 ‘일률성’(일정한 조건이나 기준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성질)이라는 두가지 개념적 속성을 띤다. 따라서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근로의 댓가로 지급하기로 되어 있는 임금이라면 통상임금으로서, 연장·야간근로수당 등을 계산할 때 포함시키면 충분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최근까지도 정기성과 일률성 외에 ‘고정성’이라는 요건을 추가적으로 요구해왔다. 이것은 통상임금의 의미가 규정되지 않았던 1970년대 판례를 통해 정해진 기준인데, 1982년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통상임금을 현행과 같이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라고 정의한 이후에도 법원은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소정근로의 댓가로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판단하면서 고정성을 통상임금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해왔다.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라는 맥락에서 고정성이라는 요건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고정성을 점점 더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했고, 급기야 고정성이란 ‘어떠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미리 확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다음날 퇴직하더라도 그 하루의 근로에 대한 댓가로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최소한의 임금이 통상임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기도 했다. 이처럼 고정성을 엄격하게 해석함에 따라, 많은 명목의 임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이 결과는 기업이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 법원이 제시한 고정성 요건을 고려해 “고정적이지 않게” 임금을 지급하면(예컨대,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이나 여하한 명목의 수당에 재직이나 근무일수 조건을 부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법정수당액을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범주의 임금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실질 임금액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고정성에 대한 해석이나, 고정성을 없애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려고 하는 임금지급 기준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대법원은 2024년 12월 전원합의체판결을 통해 지금까지 법원이 해온 고정성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통상임금에 관한 고정성 해석을 폐기했다. 판결의 첫번째 이유는, 통상임금에 관한 정의 규정을 비롯한 근로관계법령 어디에도 이전에 법원이 해석해온 것과 같은 의미의 고정성을 요구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통상임금은 가상의 도구개념이고 그 개념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이기 때문에 고정성이라는 요건을 통해 사후적으로 실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는 통상임금에서 고려할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외 몇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근로자의 임금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임금계산 방법을 근로기준법령에서 직접 요구하지 않은 기준으로 제한함으로써 근로자가 받아야 할 임금액을 부당하게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이로써 통상임금의 고정성을 둘러싼 분쟁이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통상임금과 관련된 모든 쟁점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통상임금이라는 임금계산 도구가 존재하는 한, 분쟁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체계와 임금 명세는 과도하게 복잡할뿐더러 이 복잡성과 다양성에는 결국 임금을 받는 자와 주는 자 사이의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근로자에게는 이미 당연하게 여겨지는 연장·야간·휴일근로이다. 근로자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가 당연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가수당이 지급되기만 한다면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면 야간 및 휴일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에는 일부 업종에 대하여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시간 상한제(총 근로 52시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50%라는 법정수당을 추가하여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근로자의 쉴 권리, 근로시간을 벗어나 일상생활을 향유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근로기준법이 1주 52시간이 아닌 40시간을 법정기준근로시간으로 명시한 것은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해 추가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1주 40시간의 근로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최저 근로조건임을 말한 것이다. 만약 이 최저 근로조건이 철저하게 지켜졌다면, 통상임금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필요했을까? 결국 통상임금에 관한 지난한 분쟁은 장시간 근로관행의 댓가이다. 통상임금을 계산해야 하는 사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통상임금에 관한 논쟁은 이제 겨우 1막을 내렸을 뿐이다.
박은정 /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2025.2.11. ⓒ창비주간논평
커버 이미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