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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새 정부는 ‘민생 목적 증세’에 나서라



오건호



이제 조기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출범할 것이다.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집권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 탄핵이 과거를 심판하는 일이라면 새 대통령 선출은 미래를 여는 일이다. 과연 새 정부에서 민생은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까?


낮아진 조세부담률, 반복되는 재정적자


저출산, 고령화, 노인빈곤, 불안정노동, 서민주거, 기초생활보장제 등 한국사회가 마주한 수많은 민생과제는 모두 세금을 기본 재원으로 하는 과업들이다. 하지만 나라재정이 부실하다. 무엇보다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이명박정부의 대대적인 부자감세 이후 박근혜, 문재인정부에서 꾸준히 증세가 진행되어 2022년에는 조세부담률이 GDP의 22.1%까지 이르렀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OECD 평균인 약 25% 수준에는 도달할 거라는 기대를 가질 만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에서 다시 감세가 강행되면서 조세부담률은 거꾸로 내려가버렸다. 2024년 조세부담률이 17.7%이고 중앙정부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104.8조원에 이른다. 윤석열정부의 감세, 기업실적 부진 등이 낳은 결과이다. 이러한 나라 곳간으로는 적극적으로 민생정책을 펴기 어렵다. 윤석열은 헌법을 위반하는 잘못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도 망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감세경쟁에 합류한 더불어민주당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가재정에도 새로운 빛이 들어올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감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거대 양당 구조의 한국정치에서 ‘감세 대 증세’ 정책 공방이 아니라 ‘초부자 감세 대 부자 감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해온 민주당이 스스로 부자감세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새 정부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국가재정 전망이 어둡고, 민생개선에 기대가 생기기 어려운 이유이다.


첫 조짐은 종합부동산세였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수록 서민 주거안정은 어려워진다. 당연히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종합부동산세법 제1조(목적)에 따라 “부동산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원칙대로 적용했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가지고도 윤석열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감세조치를 합의 처리해주었다.


2024년, 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도 참여했다. 이 세금은 한해 주식투자 이익이 5천만원이 넘어야만 적용되는 사실상 주식부자에게 매기는 세금이었는데도, 시행해보지도 못하고 폐지되어버렸다. 게다가 이미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조건으로 증권거래세도 대폭 깎아주었기에, 기존 증권거래세의 세입 손실까지 입게 되었다(증권거래세 세입 2021년 10.3조원, 2024년 4.8조원). 또한 민주당은 가상자산에 대한 세금 부과를 2년 더 유예하는 조치에도 동의했다. 가상자산 과세는 애초 2022년에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2023년, 2025년에 이어 다시 2027년으로 세번째 연기되어버렸다.


민주당은 상속세 감세에도 적극적이다. 2023년 상속세를 내는 사람이 피상속인의 6.8%에 불과하다. 이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건 전형적인 ‘부자감세’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자산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중산층 감세’라고 말한다면,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실체를 덮어버리려는 혹세무민이다.


근로소득세도 문제다. 민주당의 취지는 과표구간을 상향해 노동자의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것인데, 과표구간을 일률적으로 올릴 경우 고소득자일수록 감세혜택이 클 것이다. 한국의 소득세 세입이 선진국에 비해 빈약한 상황에서 지금 굳이 이러한 감세가 필요한가? 선거를 앞두고 먼저 나서서 선물을 주려는 ‘표’퓰리즘 감세 아닌가? 이렇게 집권하게 된다 한들, 더 줄어든 나라재정으로 도대체 민생정책을 어떻게 펴려고 하는가?


민주당 강령에는 “금융세제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원칙 하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과세기반을 구축하여, 자산불평등을 완화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며 자산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원칙과 엇나가는 감세정책이나 토론의 부재는 서민과 ‘더불어’ 사는 것도, ‘민주’적인 것도 될 수 없다. 


대통령 탄핵으로 등장하는 새 정부에 대해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을 것이다. 빈약한 국가재정으로 인하여 민생 정책에서 도약을 보여주지 못하면, 탄핵까지 거쳐 만든 새 정부인데 이럴 수 있느냐며 ‘기대의 역설’ 비판이 거세질 수도 있다. 이제라도 민주당의 심각한 각성이 요구된다. 또마 삐께띠(Thomas Piketty)가 지적하듯이, 사회 기득층과 엘리트들의 이해에 사로잡혀 서민들과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민생 목적 증세 여론을 만들자


어쩌랴, 시민들도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감세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감세국가에서 민생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증세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물론 시민들에게 증세가 불편한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당장 세금을 더 내기에는 가계가 힘들고,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의문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세금은 시민 다수를 위한 제도이다. 과거 인류사에서는 세금이 ‘착취’의 수단이었지만,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연대’의 상징으로 발전하고 있다. 더 벌고 더 가진 사람들이 누진적으로 낸다면, 시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앞으로 세금을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한 기본 재원으로 키워가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세금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는 그냥 ‘증세’가 아니라 민생과 세금을 결합한 ‘목적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 최근 여야 3040 의원들 사이에서 제안되었듯이, 연금소득세를 강화하여 국민연금에서 미래세대 부담을 경감하자. 나아가 상속증여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더 거두어 이 재원을 청년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사회상속제’를 시행하자. 저출산·초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소득세, 법인세를 인상하고 이 재원을 출산지원, 노인 요양돌봄에 사용하자. 윤석열정부는 감세정책만 아니라 세금을 멋대로 낭비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세금은 일부 기득세력이 아닌 우리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 곧 등장할 새 정부에서 사회정책의 핵심의제로 ‘민생 목적 증세’를 적극 요구하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2025.4.15. ⓒ창비주간논평

커버 이미지: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