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파견법 27년, 더는 죽지 않게 하라
박정훈
2018년 12월 11일 청와대가 내려다보이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비정규직 대표자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자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새벽, ‘문재인 대통령님 만납시다’라고 적힌 피켓 인증샷을 찍었던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일하다 사망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동료 이태성은 울부짖었다.
“25살의 꽃다운 젊은 청춘이 석탄을 이송하는 설비에 끼어 머리가 분리되어 사망했습니다. 지난 10월 18일 국정감사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하루 전인 2025년 6월 2일 밤. 이태성은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왔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김충현씨가 홀로 일하다 선반기계에 끼어 사망해 태안의료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7년 전 김용균이 안치됐던 곳이다. 세상은 김용균이 또 죽었다고 말했다. 밤 10시 30분 장례식장에는 김용균 투쟁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여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통령이 바뀌고, 영정사진도 바뀌었지만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바뀌지 않았다. 문제가 무엇인지 대안은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용균 사망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무총리 훈령으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재발방지를 위한 22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핵심 권고인 ‘정비 노동자의 직접고용’ ‘노무비 착복 방지’ ‘인력충원’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 김충현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9년 동안 일한 숙련노동자였지만 한국서부발전 소속이 아니었다. 한국서부발전은 발전소 정비업무를 한전 자회사 KPS에 위탁하고, 한전KPS는 10~20여명의 소규모 업체에 다시 하청을 줬다. 김충현은 하청의 하청 노동자였다. 9년간 일하면서 여덟번이나 사장이 바뀌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서명한 근로계약서상 업체 이름은 ‘한국파워O&M’이었다. 김충현의 동료 정철희씨도 16년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면서 열다섯번 업체가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업체사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 근로계약서를 써야 했고 매년 신입사원이 됐다.
사장들은 노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한국파워O&M의 관리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2차 하청업체 사장들이 관심을 가진 건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불한 노무관리비였다. 2021년 기준 한국서부발전이 한전KPS에 지급한 1인당 노무비는 연 1억 1천만원이었다. 한전KPS는 약 3천만원을, 하청업체는 2천2백만원을 가져간 뒤 나머지를 노동자에게 지급했다. 2차 하청 사장들만 없애도 추가 예산 없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구조다.
중간착취가 목적인 1년짜리 소규모 계약업체가 안전시설에 투자하거나 충분한 인력을 채용하는 데 돈을 쓸 리 없다. 한국파워O&M은 한전KPS 출신을 부사장에 앉히는데 돈을 썼다. 고 김충현씨가 사용한 범용선반기계 계약서를 보면 ‘을(한전KPS)은 임차 공기구의 안전 관리에 주의하고, 갑(한국서부발전)의 지시에 따라 을의 비용으로 위험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장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였다.
하청노동자들은 노동3권도 박탈당한다. 노조를 결성해 교섭을 요구하고 노사요구가 달라 쟁의권을 얻기 위해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하면, 거의 반년이 지난다. 파업을 할 때쯤이면 회사가 바뀌어버린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한전KPS와 한국서부발전과의 교섭을 보장하는 것이 대안이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을 담은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다.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법원이다. 한전KPS의 하청노동자들은 2021년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했는데, 김충현이 사망한 이후인 6월 19일에야 최종변론이 진행됐다. 고 김충현의 핸드폰에는 한전KPS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한 증거들이 나왔다. 한전KPS는 형식상 한국파워O&M과 하도급계약을 맺었지만 하도급업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김충현에게 업무지시를 했다. 하청구조가 원청 입장에서도 비효율적인 것이다. 불법파견 소송에 이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2023년 6월 한전 위탁업체 JBC 소속으로 섬마을의 전기를 공급하고 관리했던 노동자들이 한전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JBC는 한전 퇴직자들의 조직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회사다. 그러나 한전은 곧바로 항소한 뒤 JBC와의 위탁계약을 해지했다. JBC 소속 노동자들에겐 소송을 포기하고 한전의 또다른 자회사로 옮기라고 했고 이를 거부한 노동자 184명을 전원 해고했다. 2025년 4월 해고노동자 한명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법원이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시간은 느리고 노동자들의 삶이 파괴되는 시간은 빠르다.
이 구조의 뿌리는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7월 2일은 2005년 개정된 파견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이후에도 파견법 개정은 있어왔지만, 특히 2005년 개정의 주된 내용은 파견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을 초과하거나 불법파견이 있을 시 직접고용한다는 것이었다. 파견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람 장사’다. 노동자가 필요하면 직접고용하면 되는데 다른 사장으로부터 노동자를 공급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비용을 절감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 지옥을 막기 위해 32개 업종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파견노동을 허용했지만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이 만연했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은 왜 파견법을 합법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걸까? 원청은 비용과 책임회피를 위해 하청구조를 만들었지만, 하청업체가 원청이 원하는 만큼의 상품 생산량과 품질을 맞추지 못하면 원청 역시 피해를 입기 때문에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는 플랫폼산업에서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플랫폼업체들은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노동자가 정말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은 명백하다. 가령 배달노동자가 배달을 늦게 하거나 청소노동자가 청소를 마음대로 해버리면 플랫폼업체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업체는 AI 알고리즘과 등급제 등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이를 플랫폼노동의 딜레마라 한다. 최근 배달플랫폼 업체들은 지나친 통제로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 관계로 판정받는 위험과 지휘감독을 하지 않음으로써 상품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위험을 모두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배달 일감을 처리해줄 하청사 사장들을 모집하고 있다. 이 하청사 사장들은 플랫폼으로부터 배정받은 물량을 완수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한다. 우리는 발전소에서 보다 많은 전기를 생산해 새로운 AI 혁신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일터에서와 같은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모든 산업영역에 퍼지고 있는지는 살피지 못하고 있다.
1998년 파견법 제정도, 2005년 개정파견법도 모두 민주당 정부에서 이루어졌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25년의 이재명 대통령은 문재인정부가 지키지 못한 약속을 김충현의 죽음으로 마주하게 됐다. 국가가 운영하는 기업에 의해 주권자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 2019년 이후 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여섯명은 모두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였다. 이재명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민주권정부’라는 슬로건은 거대한 거짓말이 될 뿐이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이지 스톤(Isidor Stone)의 주장이 이번에는 틀리기 바란다.
박정훈 /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2025.7.1. ⓒ창비주간논평
커버 이미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