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태안, 아직도 막막한 슬픔
김제곤 / 어린이문학 평론가, 인천 삼산초교 교사
태안 소식이 뜸하다. 가공할 만한 기름폭탄의 세례가 퍼부어진 지 120여일이 지난 지금 태안은 이제 일반인의 관심에서 차츰 사라져가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열정적인 자원봉사의 발길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사건 초기에 비해 그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건의 본질을 묻어둔 채 사건의 현상만 호들갑스럽게 전하던 언론들에게도 태안은 더이상 매력있는 기사 제공처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간간이 유명인의 봉사참여 소식이 전해질 뿐, 태안은 이제 '과거의 사건사고'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듯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지는 것만큼 태안의 아픔과 슬픔 또한 많이 가신 것일까.
겉으로는 태안 앞바다에 퍼부어진 기름이 많이 제거된 듯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기름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책임 공방과 회피로 일관하는 사이, 그 기름을 닦아낸 것은 피해당사자인 주민들과 100만이 넘는 봉사자의 행렬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숱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유출된 기름은 사실 그렇게 많이 제거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발길이 쉬 닿을 수 있는 부분은 몰라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거나 모래와 자갈 밑으로 스며들었거나 사람이 발길이 닿기 어려운 바위 면에 들러붙은 기름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부는 서둘러 방제작업을 끝내려 하고 있다.
기름폭탄은 그대로인데 방제작업은 종료?
만리포에서 남쪽 뱃길로 40분쯤 떨어진 내 고향 가의도만 해도, 방제작업이 시작된 이래 넉달이 넘는 동안 기름 제거작업이 꾸준히 계속되어온 곳은 마을 가까이에 있는 두개의 작은 장벌뿐이다. 이는 섬 전체로 따진다면 너무나도 적은 면적이 아닐 수 없다. 평균 연령이 칠순에 가까운 마을 주민들과 하루 두번밖에 다니지 않는 객선을 이용해 손수 자신의 돈을 써가며 봉사하러 오는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아니었다면, 그마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못하는 곳은 방제조합에서 물대포 등의 기구를 이용해 작업을 해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곳이 사건 초기의 기름범벅 그대로다. 날이 풀리면서 이 기름이 다시 녹아내리고 있다 한다. 녹아내린 기름은 차츰 바다 위를 떠다니거나 바다 속으로 스며들 것이 분명하다. 아직도 우리는 기름폭탄의 위력을 온전히 실감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기름사건 이후 고향 섬의 마을 주민들은 갯일을 하는 대신 바닷가의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몇달 동안 생업을 포기하고 기름 제거작업을 한 주민에게 주어진 것은 몇푼의 생활보조금과 방제작업 일당이 전부다. 그나마 방제작업 일당은 제때에 지급되지도 않고 있다. 주민들이 하던 방제작업마저도 이달 말을 끝으로 마감된다고 한다. 그러면 주민들의 유일한 수입원조차 끊기는 셈이 된다.
이미 예상된 바지만 주민들의 건강 또한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건강영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염도가 높은 지역의 주민들 70%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이 불안과 우울증, 두통,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심각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갈 것이다.
무책임한 가해자 삼성, 팔짱 낀 정부
이런 피해자들에게 한겹의 고통을 더해준 것은 이른바 가해자인 삼성의 태도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일류기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인 삼성이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 졸렬했다. 피해자가 아무런 죄도 없이 고통과 눈물로 기름을 닦아내는 동안 이들은 변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멍만을 찾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해당사자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기름폭탄의 세례를 맞은 것도 억울한데 정신적인 고통까지 덤으로 얹어준 것이다. 가해자 쪽은 오히려 당당하고 피해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야 하는 상황에서, 주민들 편에 서야 할 정부는 팔짱을 끼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안타깝게도 세 사람의 주민이 생목숨을 끊었다. 그럼에도 이른바 일류기업 삼성의 그 졸렬한 작태는 여전히 계속될 전망이다.
얼마 전 정부는 기름유출사고와 관련해 배상한도와 관계없이 모든 피해에 대해 전액을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들으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피해에 대해 전액을 보상하겠다"는 공언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질지는 의문이다. 주민이 생각하는 피해액과 정부가 생각하는 피해액이 일치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 섬 주민들은 지난번 생활보조금 지급 때 이미 관공서의 미온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인 행태를 톡톡히 경험한 바 있다.
생활보조금은 피해 규모에 따라 모두 세 등급으로 나누어 지급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그것은 정확한 피해조사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었다. 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고향 섬은 단지 행정구역이 근흥면에 소속되었다는 이유에서 B등급으로 분류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군청을 찾아 피해 규모를 설명하고 지급 과정에서의 불합리함을 호소했지만, 그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쪽의 말을 들어주면 다른 한쪽이 또 불만을 갖게 된다는 논리였다. 정확한 현장조사에 근거한 합리적인 지급이라면 주민들 사이에 왜 불만이 나오겠는가. 무엇보다 피해자인 주민 처지에서 기름폭탄 세례는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은 크나큰 재앙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몇푼의 보상금으로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이며 상처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태로 보아 정부의 보상이 그 고통과 상처를 온전히 헤아리고 보듬을 여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태안의 재앙은 이제부터다
고향 섬의 주민만 하더라도 칠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개 '맨손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온 이들이다. 사리 때면 갯가에 나가 홍합이나 미역 등을 따고 조금 때면 작은 배에 의지해 우럭이나 놀래미를 낚아온 이들이다. 비록 몸을 고달팠지만 이들에게 바다는 고단한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언덕'이었다. 그들은 그 언덕에 의지해 자신의 가족들과 자신의 생을 건사해왔다. 일순간 그 언덕이 무너져내리면서 이들의 남은 생은 비탄과 절망밖에 남은 것이 없다. 이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그 언덕이 얼마나 든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객관적이고도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가능한 일이겠는가.
어디 주민들뿐이겠는가. 바다는 우리 인간들이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생명들의 보금자리였다. 이른바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시대라지만, 한낱 그 잘난 돈으로 바닷가 자갈 위를 날래게 기어다니던 갯강구 한마리를 온전히 복원해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태안을 이제 잊고 싶어하는 것 같다. 태안이 고향이고 그곳에 육친이 살고 있는 나조차도 그런 마음이니 왜 아니들 그렇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 달리 태안의 기름은 여전히 닦이지 않고 있다. 그 기름은 흡착포와 걸레로 닦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의 '눈물과 혓바닥'으로 평생을 닦아도 쉬 지워지지 않을 재앙이기 때문이다. 끔찍하지만 그 재앙은 이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2008.4.30 ⓒ 김제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