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지난 10년간 무엇이 바뀌었냐는 물음: ‘다시’ ‘행동’을 외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 행동’
김소라
10년 전인 2016년 5월 17일 새벽, 한 남성이 강남역 인근 건물 공중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 여성들이 평소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많은 여성들이 범죄에 분노했고, 사건 현장과 멀지 않은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포스트잇을 붙여 피해자를 추모하며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여성살해를 비롯한 젠더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분노로 전환하고,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화를 젠더폭력의 원인으로 지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메갈리아’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펼쳐지던 페미니즘 정치는 거리로 그 공간을 확장했고, ‘묻지마’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 범죄임을 강조하며 인식의 틀 자체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후 미투운동, 혜화역 시위, 딥페이크 성착취 규탄 등 심각한 젠더폭력의 현실과 이에 공모하는 사회구조를 지적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이어졌고, 강남역은 페미니즘 대중화와 젠더폭력 공론화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대체 무엇이 바뀌었냐는 질문, 여전히 바뀐 것은 없다는 이야기가 ‘다시’ 울려퍼졌다. 202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 행동 ‘강남역! 다시! 추모를 딛고 행동하라!’를 가득 채운 목소리다.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인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주최한 이 추모 행동에서 참가자들은 젠더폭력이 지난 10년간 반복됐음을 지적하고,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통해 피해자를 추모하는 한편 젠더폭력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주장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2018),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2021) 등이 제정되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 제도가 정비되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젠더폭력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으로 한정해도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 2023년 신림 등산로 살인사건과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 2025년 미아역 마트 흉기 살인사건, 그리고 2026년 남양주 스토킹 살인사건과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까지 수많은 젠더폭력이 이어졌다. 만남을 거절한 여성을 스토킹하고 살해하려고 찾아다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10대 여성을 뒤따라가 살해한 광주의 사건은, 10년 전 강남역에 붙었던 ‘여자라서 죽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라는 포스트잇을 떠올리게 한다. 가해자가 여성에서 다른 여성으로 분노를 확장하고,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행의 대상을 정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적대감과 폭력이 향한 곳은 여성이었고, 교제폭력과 스토킹 사건 피해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바뀌지 않은 것은 젠더폭력 양상뿐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안전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젠더폭력을 개인의 비극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젠더 기반 폭력으로 명명하고자 한 시도는 번번이 예민하고 과도한 요청으로 이해되었다. 젠더폭력에 대한 대응 역시 가해자 엄벌이나 CCTV 설치와 물리적 치안 강화, 일상의 통제를 통한 피해자 보호라는 협소한 이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명명하며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3년부터는 이를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젠더폭력은 동기가 불분명하지도, 행위가 비전형적이지도 않음에도 피해자 무관련성, 동기 이상성, 행위 비전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되고, 성차별적 사회구조라는 문제의 원인은 비가시화된다. 이 가운데 범죄자를 격리하고,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과연 여성이 안전해질까.
여전히 교제폭력을 비롯한 젠더폭력의 정의는 불분명하고, 이를 파악하기 위한 통계는 부족하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교제폭력과 관련한 법안들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전면 개정할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교제폭력의 정의를 추가할지, 「교제폭력 처벌법」을 신설할지에 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2월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5년 여성폭력통계’에서 범죄자와 피해자 간 관계를 세분화한 경찰청 범죄통계를 활용해 처음으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인·치사와 같은 폭력을 집계했으나(「‘친밀한 관계’ 첫 공식통계 나왔다…지난해 친밀관계 살인·치사로 219명 검거」, 여성신문 2025.12.30.), 이 통계만으로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실태를 포괄적으로 파악하기에 부족하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언론보도를 바탕으로 분석한 「2025년 분노의 게이지」(2026)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당한 여성은 최소 389명이고, 자녀, 부모, 친구 등 주변인 피해자를 포함하면 피해자는 최소 673명에 이른다.
또한 여전히 강간이 ‘동의’가 아닌 폭행과 협박을 기준으로 판단되고, 젠더폭력을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은 협소하다. 폭행과 협박을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수준’으로 엄격하게 보는 가운데, 피해자는 폭행과 협박이 ‘그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왜 적극적으로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거나 폭력에 저항하지 않았느냐, 여지를 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렇게 젠더폭력과 피해에 관한 해석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좌절된다. 정치가 반(反)페미니즘을 지지층 확보를 위한 동력으로 삼으며 백래시가 거세진 가운데, 이 같은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비판적 지식을 환류해야 할 대학에서조차 페미니즘은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고, 여성들의 정치적 행동을 방해하는 시도는 빈번해졌다. 이번 10주기 추모 행동은 이전에 추모행사가 열렸던 곳에서 개최되지 못했다. 매년 추모행사를 이어온 장소를 반페미니즘 단체가 집회 신고에서 선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같은 날 ‘남자가 훨씬 많이 죽는다’ ‘남성은 더이상 참지 않는다’ 등의 피켓과 플래카드를 걸고 집회를 펼쳤다.
지금껏 그래왔듯 안전을 ‘범죄로부터의 안전’으로 협소하게 이해할 때, 보호라는 명목하에 여성의 일상은 쉽게 통제의 대상이 되고 활동 공간은 제약되며 젠더폭력을 지속시키는 체계와 관계를 변화시키기란 어렵다. ‘다시’ ‘행동’을 외친 10주기 추모 행동은 성차별과 불평등, 여성혐오가 젠더폭력의 구조적 원인임을 인정하고, 젠더폭력의 정의와 통계 마련,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통한 젠더폭력의 재해석과 공론장의 논의를 통해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키자고 거듭 주장한다. 이제는 10년간 계속된 이 목소리에 변화로 답할 때다.
김소라 /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2026.5.19.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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