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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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모두’를 위한 정치는 없다



이하나


7장의 투표용지. 지방선거는 일상을 사는 유권자에게는 쉽지 않은 선거다. 가령 1개 지역구에서 2인의 시의원을 뽑는 곳인데 하나의 정당에서만도 2명의 후보자가 출마해 후보 숫자 뒤에 ‘가’번과 ‘나’번이 붙자, 어떤 유권자들은 둘 다 찍으면 되냐고 물었다. 후보자들은 투표용지와 비슷한 그림을 피켓으로 만들어 들고 다니며 투표용지별로 도장은 한번만 찍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육감 선거의 경우 번호가 없다는 걸 설명하는 것도 무척 어려웠다. 교육감 선거는 포기해야겠다는 유권자도 적지 않게 만났다. 


기초의원 선거에서 거대 양당은 2인 선거구라도 본인들이 유리하다 싶으면 2명 이상의 후보를 냈다. 출마자가 늘어난 것 같았지만 8회 지방선거에 비해 9회 지방선거의 후보자 수는 2.3% 정도만 증가했고 무투표 당선자는 500여명이 넘었다. 나번까지 당선시켜 지역구를 석권하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야심은 유권자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에서는 실패했다. 경기도 내 161개 기초의원 선거구 중 2인 선거구에서 민주당의 나번 후보까지 당선된 곳은 총 3곳뿐으로 알려졌다. 거대 양당제에서 유권자들이 양쪽에 고르게 표를 주던 패턴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민주당은 공식 선거운동 전부터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업고 출발했다. 대통령과 일할 사람, 일해본 사람, 대통령이 보낸 사람, 부른 사람이라는 슬로건이 전면에 등장했다.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여기저기 내걸렸다. 심지어 후보자가 대통령 사진을 바라보는 모습까지 등장했다. 민주당 소속이면 누구나 ‘대통령과 일할 사람’이 되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힘을 받아 각 단체장 후보들은 자신이 대규모 개발사업과 교통망 확충에 유리한 인물이라고 선전했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내 집 앞 10분 전철역’을 얘기한 것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일수록 지하에 몇개의 터널을 팔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서울로 갈 수 있는지 말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수도권 30분 출근 대전환’을,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는 ‘수도권 1시간 교통망’을 말했다. 서울과 멀면 서울과 가까워지도록 공항을 짓고, 철도를 깔고, 동북아의 중심이 되겠다는 공약이 튀어나왔다. 모두가 강한 지방정부가 되겠다고 외쳤다. 전국에서 자기 지역이 AI 특구가 될 것이며 돈을 많이 버는 곳이 될 거라 선언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필자는 1990년대 이전에 조성되어 지금은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열풍이 부는 신도시 두곳에서 지방선거 캠페인에 개입하게 되었다. 경선이 곧 본선이라던 민주당 내 후보자 정리가 끝나자, 각 후보자 사무실에는 정책 협약으로 포장된 각종 민원이 답지했다. 재개발 용적률 상향조정, 아파트와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지하통로 설치, 재건축에 대한 행정 지원 등 개발 사안은 물론 각종 직능단체들이 각자의 ‘먹고사는’ 문제를 안고 찾아왔다. 이들은 공원과 학교의 지하를 파서 주차장을 만들라거나 교정시설을 멀리 보내겠다고 약속하라거나 혹은 쓰레기소각장이며 하수처리장은 절대 설치하지 않겠으며 임대주택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식의 공약들을 요구했다. 일터까지는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으면서 전깃줄도 전봇대도 송전탑도 안 보이게끔, 쓰레기도 하수처리장도 내 집에서 멀어지게 하라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도, 장애인도 노숙인도 없는 깔끔하고 정돈된 마을에서, 뚜렷한 직장이 있고 어디에도 중독되지 않은 상냥한 사람들과 살게 만들라고 소리쳤다. 힘있는 사람들은 ‘이웃을 선택하는 삶’을 위해 아파트라는 성채를 쌓았다. 


내 집값을 떨어뜨리는 모든 공약 반대, 내 집값을 올릴 모든 공약 찬성.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렸다. ‘정치’는 이러한 ‘강한 개인’들이 모여 내는 목소리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기초의원들은 자기가 발 빠른 민원 해결사라고 주장했고, 효과 빠른 두통약처럼 발로 뛰어 민원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지방의회가 민원 옴부즈맨인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 당선이 되기 위해서, 표가 되는 것을 향해 후보자들은 영민하게 움직였지만 이미 더 큰 세력이 된 중산층 유권자들의 욕구를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제시되는 정책은 대체로 중산층, 주택 소유주에게 맞춰졌다. 장시간의 고된 노동은 정치의 시간마저 빼앗아 가니, 소외된 곳의 목소리는 울릴 새도 없었다. 


지난겨울 윤석열을 비롯한 반헌법적 세력을 몰아내겠다고 취약한 몸들이 광장에 모였다. 엄동설한 동지섣달에 먹거리를 나누며 알루미늄 시트를 뒤집어쓰고 민주공화정을 되찾은 건 전생의 일 같다. 연대했던 신체들이 광장에서 사라지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개인’이 되고자 한다. 그 많은 신체들은 AI와 반도체와 부(富) 축적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시민들은 미약한 ‘나’를 드러내며, 이다지도 부족한 내가 대단한 당신과 동지가 된 게 기뻐 춤을 췄다. 이렇게 미약한 ‘나’, 소수자인 ‘나’는 다들 어디로 증발했는가. 


2026년 제9회 6·3전국동시지방선거는 선관위의 참담한 실책으로 투표는 끝났지만 선거는 끝나지 않은 모양새다. 참정권을 침해당했다는 개인들이 모여 일주일 넘게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더러 극우세력과 보수기독교가 뒤섞이고 있지만 완전히 그들로부터 점령당한 것 같지도 않다. 이들은 자신들을 ‘시위대’라는 정체성으로 낙인찍지 말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세력이길 거부한다. ‘평범한 애 둘 엄마’ ‘자영업자일 뿐’ 같은 말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전쟁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잠실의 집회는 ‘순수시민’만이 참여할 수 있다던 교사들의 시위, 거대 노동조합의 손을 뿌리쳤던 대형 커피프랜차이즈의 익명 트럭시위와 겹친다. 이들은 국민 개인으로 남길 바라며,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그 어떤 정치세력으로도 해석되길 거부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들에게 정치는 그저 정쟁의 도구일 뿐이며 내 삶에 쓸모가 없다. 적어도 이들에게 정치는 거대 정당의 것이기에 구시대의 산물이고, 꼰대들의 투쟁일 뿐이다. 다만 지방정부와 행정은 나의 살림을 부강하게 해줄 창구라 활용가치가 있다. 끊임없이 사업을 제안하고 요구한다. 


2024년 한국의 정당가입자 수는 선거인수 대비 25.4%로, 1001만명이 넘는다. 허위가입이나 이중당적자가 있을 테니 당비를 납부하는 사람만 실제 당원으로 추려보면 240만명으로 훅 줄어든다. 왜 명부상 당원과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차이가 이렇게 클까. 이 수치는 부끄러움이다. 상대방을 응징하고자 치고 박던 거대 양당의 싸움에 지친 시민들은 스스로 파편화되어 삶에서 정당과 정치인을 떼어내고자 한다. 거대 정당은 양측 모두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을 찾아 그들을 방패처럼, 창처럼 활용하며 이권을 취하는 집단은 점점 늘어나는데 정치는 오갈 데를 잃었다. 유권자들은 쓸모에 따라 정치와 정당을 베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의를 추구하며 공공의 선을 위해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구성원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한정된 자원을 나누는 정치는 어디서 맥이 끊어졌는가. 2017년 광장의 횃불이 골목의 촛불로 다다르지 못한 그때부터인가. 함께해서 행복하다고 울먹이던 광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순간부터 정당정치는 길을 잃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당선사례 현수막을 바라본다. 정의를 향해 불길로 뛰어들던 뜨겁던 청춘과, 영광스러운 과거를 고이 싸서 서랍에 넣어둘 수 있는가. 무엇이 나를 거리로 나가게 했는지 다시 돌아볼 용기가 남았는지, 나와 당신에게 묻고 싶다. 



이하나 / 문화공동체 히응 대표, 집필노동자 


2026.6.17.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