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홍수 앞에서’ 물어야 할 것:
네팔 참사 책임과 수력발전 난개발
채효정
2026년 8월 26일 네팔에서 대홍수가 일어나던 날, 나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집에서 보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네팔의 산악지형은 내가 사는 곳과 너무 닮았다. 10년 전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강물이 범람하고 산이 무너지고 다리와 도로가 유실되는 것을 보았고, 아름다운 호수로만 보였던 소양호 아래 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몰 이후에도 지역의 피해와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요즘 다른 ‘수몰예정지구’로 댐 반대투쟁을 하러 다닌다.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 예정지다. 홍천 풍천리는 양수댐이 들어서면 물에 잠기게 될 지역으로, 이곳 주민들은 양수발전소 건설에 맞서 8년째 싸우고 있다. 주민들은 평생 잣농사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댐 공사가 시작되면 숲과 마을은 물에 잠기고 11만그루가 넘는 잣나무가 베어질 예정이다. 나는 풍천리에 갈 때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말의 무서움을 실감한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싸운다. 이곳에선 양수댐이 대홍수다.
네팔과 부탄, 인도를 비롯한 히말라야 인근 지역에는 그런 댐과 발전소가 강줄기와 협곡을 따라 수없이 많이 들어서 있다. 아시아 인구 30억명이 마시는 물의 발원지로 ‘아시아 물 저장고’(Asian Water Tower, AWT)라 불리는 이 지역에는 현재 1100개가 넘는 수력발전소가 운영 중이거나 건설·계획 중이다. 네팔은 현재 166개의 발전소가 운영 중이고, 건설 중인 발전소까지 합치면 255개에 이른다고 한다. 하나의 댐을 막기 위해 8년 동안 싸운 주민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홍수 이전부터 댐과 발전소들이 이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에게 대재앙이었을지 생각한다.
인도·파키스탄·부탄·네팔 등 히말라야 인근 지역에서 수력발전소와 댐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1990년대 수력발전소 건설 대출은 잠시 주춤해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부터 다시 대출 및 투자가 급증하였다. 금융규제가 완화되고 세계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녹색산업’으로 투자가 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메가 댐과 대형 수력발전소는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경제성장 전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기 수력발전과 댐 건설의 지휘자는 세계은행이었다. 가난한 나라들에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수력발전소를 많이 지어서 전기를 팔아 돈을 벌게 하자는 세계은행의 설계는 설득력있게 들렸다. 원전 수출이나 화력발전소 해외 건설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에게도 네팔과 같은 가난한 나라에 수력발전소를 짓는 일은 그렇게 나쁘게 인식되지 않았다. ‘선한 투자자’들에게는 친환경 전력에 투자하는 ‘녹색펀드’가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버는 선행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가 『9월이여, 오라』(박혜영 옮김, 녹색평론사 2004)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메가 댐은 이 지역 민중에게 먼저 닥친 기후재난이었다. 북반구의 녹색투자는 남반구의 가난한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부유한 기업과 투자자의 부를 증진시키는 데 더 큰 도움을 주었고, 가난한 지역에 더 많은 사회적·생태적 불평등과 위험을 초래했다.
2013년부터 세계은행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하는 전세계적 규모의 금융 프로젝트를 확대하였는데, 대부분 콩고·잠비아·네팔·부탄 등 가난한 나라들에 투자되었다. 부탄과 파키스탄 등 여러 국가의 수력발전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어온 가운데, 2019년에는 세계은행이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를 통해 4억 5300만 달러의 금융패키지를 조성해 네팔 중부 트리슐리강의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한국 기업과의 협력 프로젝트로 금융을 제공받는 기업은 네팔 현지 법인 NWEDC이지만, 이 특수목적법인의 주요 주주는 지분의 50%를 소유한 남동발전을 비롯해 한국 기업인 대림산업과 계룡건설산업, 그리고 IFC 등이었다. 한국수출입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9개 금융기관이 대주단으로 참여하며 총 사업비 9천억원에 달하는 이 사업이 바로 이번 대홍수로 유실된 어퍼트리슐리-1(UT-1)이다. 한국남동발전은 투자와 운영을, 두산에너빌러티는 설계·조달·건설을 담당했고, 남동발전은 완공 후 27년간 발전소를 직접 운영할 예정이기도 했다. ‘특수목적법인’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한 기업 설립 및 자금조달 방식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이후 부동산 개발투자에서 발전해 해외 투자와 민간 개발사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과거의 식민주의적 수탈이 오늘날에는 ‘해외 직접투자’라는 제도로 재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발전소와 댐이 지어질 때마다 글로벌 자본과 투자자들은 돈을 벌었지만, 주민들은 삶터를 잃고 쫓겨나고 강과 산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으며, 부채는 불어났다. 돈을 갚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은 댐과 발전소를 지으려면 다시 돈을 빌려야 한다. 단계마다 탄소배출도 따라서 증가한다. 이 무한 악순환 모델은 세계은행이 2000년대부터 ‘굿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온 ‘민관협력 파트너십’(PPP)이라는 민자개발의 전형으로서, 대출·투자의 조건으로 빈국에 규제완화와 산업 구조조정을 요구하며 약탈을 자행해온 현실을 드러낸다. 히말라야의 수력발전 난개발은 신자유주의적 지역개발 전략과 에너지 민영화가 초래하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수력발전의 명분은 개발도상국에 안정적이고 저렴하며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천혜의 자연지형을 경제적(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모두의 것인 물을 전력 상품화하고 시장화·자산화함으로써 에너지 사유화를 촉진하였다. 그뿐 아니라 투자자 중심의 단기 수익성을 좇는 건설 방식은 공기단축 및 비용감축을 우선시하여 재난 위험도를 높였다. 2018년 라오스에서 발생했던 메콩강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대참사는 금융투자와 결합된 민간 자본의 인프라 투자가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 배터리’라는 이름으로 수력발전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추진하고 해외 자본으로부터 적극적인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부실시공으로 문제가 되었던 건설사는 한국 기업인 SK에코플랜트였음을 기억하자.
그런데도 최근 수력발전은 친환경·녹색 에너지, 자연 배터리 등으로 미화되며 기후대응을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그러나 댐 건설은 발파와 터널 공사, 산림 벌목, 수몰, 자재 채굴, 토사 투기, 도로(진입로) 건설을 필요로 하며 이로 인해 지역주민 강제이주는 물론 하류지대의 건조화와 재난 취약성 증대 등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 때문에 197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환경재난을 계기로 ‘생태적 각성의 시기’를 거치면서 대규모 댐 건설이 야기하는 생태적 파괴와 지역 수탈에 대항하는 운동과 인식이 확산되었고, 노후화된 기존 댐을 해체하거나 신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 각성과 노력의 한 결과로 UN기후변화협약이 만들어졌지만,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목표로 채택되었던 ‘청정개발체제’는 같은 시기 등장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및 WTO체제에 융합되며 ‘청정에너지 수출’의 길을 열었다. 그리하여 히말라야로 해외 자본과 발전사, 건설사들이 몰려들어 ‘청정에너지 개발’이란 이름으로, 거대한 추출의 빨대를 꽂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가지 더 살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이런 개발과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에 누적된 상처가 과거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전부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반과 지질과 지형, 강수량과 유량, 평균 기온과 태풍 경로, 건기와 우기 같은 계절 변화에 대한 분석이나 예측은 점점 들어맞지 않고 있다. 히말라야에서도 지질학적 취약성과 기후변화를 무시하고 대규모 터널과 도로 공사 및 수력발전 시설을 집중 건설하는 것은 기후재난의 위험도를 가중시킨다는 점이 꾸준히 경고되어왔다. 이미 빈번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한 보험료 인상으로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파괴된 댐과 발전소나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아 철수한 건설현장은 결국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50~100년 수명으로 설계되어 운영 종료된 이후의 발전소 철거와 자연복원 문제는 또 어떠한가.
그럼에도 히말라야 지역은 여전히 높은 개발 압력을 받으며 수력발전소와 함께 도로, 철도, 터널, 댐 건설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댐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사업은 윤석열정부에서 기후대응댐으로 부활하더니 신규댐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메가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신규댐 건설을 추진한다. 이 홍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빙하와 암반의 취약성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취약성을 함께 보아야 하고, 지질학적 변화만이 아니라 그 변화를 야기하는 자본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아야 한다. 제대로 책임을 물으려면 제대로 질문해야 한다. 이토록 많은 발전소가 대체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댐과 발전소를 계속해서 더 많이 짓도록 하는 압력과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발전소의 이윤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발전소 하나가 들어설 때마다 그곳에 사는 이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민중은 어떤 피해를 입었고 무엇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 글의 제목은 앞서 언급한 책 『9월이여, 오라』의 첫번째 글 「홍수 앞에서」에서 빌려왔다. 이 글은 아룬다티 로이가 1999년 11월 영국에서 열린 ‘네루 기념강연’에서 행한 연설문이다.
채효정 / 정치학자, 『오늘의교육』 편집위원장
2026.9.9.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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