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이대로 공교육을 포기해도 좋은가: 일선교사가 말하는 4·15 학교자율화 조치
김주익 / 세화여중 교사
요즈음 중고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들은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서 당당히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시청앞 광장이나 청계광장에 가보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무엇인가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5월 들어 촛불문화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살아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지난 17일과 24일 청계광장에 다녀왔다. 친구들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여든 학생들은 "미친 소, 미친 정책, 미친 정부, 국민이 심판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늦은 시각까지 축제의 장을 펼쳤다. 그들은 "광우병 소고기, 0교시, 우열반, 너나 해라!"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학생으로서의 자기 입장 또한 당당하게 밝히고 있었다.
학원으로 변한 학교, 체념한 학생들
그런데 일부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생들이 촛불문화제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며, 교육청 관리와 일부 학교의 학생부장들은 직접 현장에 나와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학생들은 무엇이 절박해서 거리로 뛰쳐나왔는가? 또 그들을 이렇게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요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강남이어서인지 몰라도 중학생들마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짜여진 일과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다른 것에는 일절 시선을 돌리지 말라는 엄명에 가슴 졸이며, 자신의 생각을 저당잡힌 채 부모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전에 근무했던 고등학교는 학원처럼 변한 지 오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밤늦게까지 이어진 학원수업 때문에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수업내용과 관계없이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대체로 학원숙제에 여념이 없다. 면담을 할 때도 "요즈음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으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그냥 지내요"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이상하다 싶어 "왜, 학교 생활이 힘드니?"라고 하면 "아뇨, 학원 때문에 죽겠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럼 학원에 안 가면 되잖아?"라고 물으니 "엄마한테 맞아죽어요"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15일 정부는 교육양극화 해소와 공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갑자기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우열반 편성, 0교시 수업, 야간 보충수업, 교내 사설학원 강사 수업 등을 허용하며 촌지, 급식, 교복 공동구매, 부교재 채택 등의 영역에서 그동안 학교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했던 조치들을 폐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공교육의 무장해제, 학교자율화 조치
이에 각 언론과 여론은 '학교자율화 조치'가 공교육을 심하게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으나 오히려 정부는 교육청 평가를 늦추면서 평가항목에 자율화 이행 실적을 넣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학교자율화 조치를 걱정하는 교육·시민 단체들은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에 대한 긴급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장치들을 무장해제한 것이기에 일선학교는 입시전쟁터로 변모하고, 학교의 학원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은 명백한 일이다. 사교육비를 줄여서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말은 이미 공염불이 되고 있으며, 학원을 안 다니는 학생은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교사들 입장에서도 학교 상황과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벽 별 보고 나와서 저녁 별 보고 들어가겠네" 하는 자조 섞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끔 부모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일관성 없는 현 교육정책에 강한 불만을 나타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실에 불안감을 느껴 "내 아이만 처지는 것 같아 사교육기관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푸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무너진 학교교육을 더이상 손 쓸 수 없도록 만들며 모든 사람들을 옥죄는 현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의 토로가 점점 거세진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제 곧 학교자율화 계획이 교육청 발표 후 학교현장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시행하지 않을 학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학교는 입시성적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무한경쟁의 전쟁터가 돼버린 지 오래다. 따라서 더 많은 학생들을 더 오래 붙잡아두어야 좋은 학교라는 소문을 들으며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훌륭한 교육철학을 가진 관리자나 창의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는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힐 것은 뻔한 일이다.
현정부 출범 이후 시·도 교육감들은 중학교 일제고사를 부활시키고, 그 결과를 지역교육청별로 공개하여 학력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을 점수 올리기 경쟁체제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한 '4·15 학교자율화 조치'는 궁극적으로 '학교자율화 조치'가 아니라 '학교학원화 조치' 또는 '공교육포기 조치'로밖에는 볼 수 없다.
학생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지 말라
우열반 편성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맞춤식 수업이라는 명목 아래 영어·수학과목에서 이동수업을 실시했지만 긍정적인 면보다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절망감만 느끼게 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만 남긴 채 슬그머니 없어진 바 있다. 그런데 또다시 우열반 편성을 한다고 하니, 이는 현 교육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탁상공론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중학교에서도 0교시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암담하기만 하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협상에서도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았고, 또 '학교자율화 추진계획'도 학생들과 일선교사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뒤늦게 여론수렴을 거쳐서 발표했다고 주장하지만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을 배제하고 과연 누구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인지 강력하게 묻고 싶다. 그리고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볼 때, 단 한차례의 토론회나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가 정부기관의 합당한 업무처리 태도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 또한 후속대책 마련을 위해 서로 눈치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시·도교육청의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고, 정부정책의 신뢰성에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을 군사작전 하듯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시대에 역행하는 '4·15 학교자율화 계획'은 전면 백지화되어야 한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교육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발표해 온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OECD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더이상 학생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2008.5.27 ⓒ 김주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