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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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촛불이 갈 길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6월 10일에 이어 7월 5일에도 다시 한번 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촛불로 넘실거렸다. 하지만 두 집회 사이에는 의미있는 차이가 존재한다. 6월 10일에 사람들은 청와대를 향해 서 있었다. 하지만 7월 5일 사람들은 냉담하게 청와대를 등지고 앉아 집회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더이상 불법주차된 전경차를 견인하려 하지조차 않았다. 그리고 촛불이 이미 승리했음을 선포했다.

 

그렇다.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 촛불이 켜지던 첫날에 교복 입은 여중생들이 "미친 소, 너나 먹어"라고 단호하게 외치던 그때 이미 승리했고, 72시간 릴레이 투쟁을 벌여나갔을 때 이미 승리했으며, 6월 10일 거대한 촛불의 강을 이루고 스티로폼 계단을 쌓아 밤샘토론 끝에 명박산성에 올라 깃발을 흔들었을 때 이미 승리했고, 국민토성을 쌓아 명박산성을 비웃고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며 아침을 맞는 기차놀이를 할 때 승리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평화롭게 행진하고 토론하고 노래 부르고 놀았을 때 우리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촛불항쟁을 관통하는 쇠고기, 대운하, 건강보험, 교육, 수돗물, 공영방송 같은 이슈들은 하나같이 생명을 중심축으로 선회한다. 촛불은 이 생명의 정치를 공생의 정치로 고양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동고동락하는 기쁨을 얻었다. 그러니 이미 승리한 것이다.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

 

아직 구체적 성과도 얻지 못했는데 벌써 승리를 말하는 것이 공허하다고, 그것은 한낱 상징적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촛불은 이명박정부의 행보를 다 막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대운하나 민영화 같은 잘못된 중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이미 구체적 성과를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징적 승리 자체가 현실적 승리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촛불이 보여준 상상력과 자기표현의 엄청난 분출, 끈기있고 진지한 토론과 성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실시간으로 통합하고 활용하는 능력, 실천적 자기통제력, 유희와 항쟁을 결합하는 여유는 5공시절 허문도식 언론통제 그리고 강경대와 김귀정을 때려죽인 공안정국에 대한 낡은 추억 주변을 맴돌고 있는 정부를 한참 능가했다. 이런 지적·도덕적 승리가 명백했기에, 당혹한 대통령은 립써비스일망정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는 "뼈저린 반성" 며칠 뒤 시민의 뼈를 분지르고, 7월 5일의 촛농이 굳지도 않은 6일부터 시청광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상징적 패배를 가속화하는 일이었고, 그럼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마음의 상징적 좌표 안에서는 하야했다.

 

하지만 이런 상징적 하야 뒤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상징적 토대를 잃었기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드러날망정 여전히 막강한 제도적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끊임없이 휘두를 것이다. 촛불은 이런 상징과 실재의 괴리를 견뎌야 한다.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역설의 시간에 드리운 어둠을 쫓아내기 위해 계속 타올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의 물리적·제도적 폭력에 더해 촛불이 얻어낸 도덕적이고 상징적인 승리마저 침식할 여지를 줄 수 있다. 그것을 막고 한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서 지난 두달 동안 이루어졌던 촛불의 발전경향을 의식화하고 더 진화시켜야 할 때이다.

 

촛불은 더욱 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촛불은 이제 지구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적 의제를 중심에 둔 현상황에 전쟁의 메타포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하지만 그런 메타포를 떠올리게 한 것은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내전" 운운하는 질 나쁜 한 소설가에 의해 그리고 산성을 쌓고 농성체제를 구축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에 의해 유도된 것이다. 지난 두달 동안 집회 참가자가 많으면 웅크리고 적으면 진격하고 맞불집회와 HID를 동원하여 소요를 일으키려 하고, 촛불이 잦아드는 기미만 보여도 몽둥이를 꺼내든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이미 촛불에 대항하는 지구전을 계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촛불은 이제 "그렇게까지 외쳐도 이렇게까지 벽창호일 수 있는가" 하는 울화에서 벗어나 지구전에 임하는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전방위적 탄압과 고립화 시도로 인해 촛불이 일보 혹은 이보 뒤로 밀리는 때가 올지라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평상심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촛불의 사회운동화와 제도화를 이룩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방향은 지난 두달 동안의 촛불항쟁 속에서 이미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왔던 것이다. 촛불은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사회운동을 조직했으며, 그들의 거친 반응에서 보듯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활동을 더 조직적으로 "질기게" 이어나가야 하며, 이제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을 비롯하여 급식감시운동으로 확산해가야 한다. 더불어 촛불이 의제화한 교육, 의료, 공공써비스, 언론문제 등에서 사회적 퇴행을 저지하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예컨대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우리는 0교시 수업을 없애는 성과를 얻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처음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여학생들에게 보답할 수 있다.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이 불러모은 의제들 하나하나에 충실해진다면, 더디더라도 마침내 쇠고기 재협상에 이르게 될 것이며, 시민들에게 폭력을 지시한 자, 행사한 자 그리고 그것을 도운 자들을 깨끗이 심판하는 날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사회운동화와 더불어 그것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도 제도화가 필요하다. 촛불은 집회를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로마저 씻어낼 수는 없다. 또한 근본적으로 탈중심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촛불은 사람들로부터 창의력과 참여를 끊임없이 불러냈지만, 다른 한편 타자의 참여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은근한 불안을 자아낸다. 지금까지의 촛불항쟁 동안 전환점에서마다 촛불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불안과 피로를 없는 척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갈 길이 짧지 않으니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면 되고,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가면 된다. 이를 위해서 집회를 주말로 정례화하고 한달에 한번 집중집회를 하는 식으로 그리고 주중에는 토론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집회방식의 변화와 관리를 위해서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보다 좀더 높은 수위의 연대 기구, 이를테면 "촛불회의" 같은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제도화 속에서 나는 토론의 조직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촛불은 토론 속에서 발전해왔지만 그것이 더 심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쇠고기 사태에서 출발하여 곧장 다른 의제들을 흡수해 5대 의제로 발전했다. 공생을 향한 이런 촛불의 학습과 진화는 그 귀결점으로 이명박정부와 조중동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한국사회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밝힘으로써 대안을 조직화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5대 의제라는 자기한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지난 두달 동안 촛불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감당하지 않았고, 항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6·15를 스쳐 지나갔으며, 쇠고기 문제의 뿌리인 한미FTA 문제 또한 다루려 하지 않았다. 그런 우회에 쟁점을 집약하고 우리를 최대화하려는 신중함이 서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신중한 한정을 떨쳐야 한다. 집회에서 우리는 폭력을 완벽하게 자제해야 하지만 사유와 성찰은 거칠 것 없이 개방해야 하며, 그것을 토론에 회부해야 한다. 토론이 깊이를 더할수록 대안은 모습을 갖추어나갈 것이다.

 

우리 안의 속물됨을 정화하는 촛불

 

이런 촛불의 진화는 또한 촛불 든 이들의 진화이기도 할 것이다. 토론 속에서 우리는 전문가인 시민, 정치가인 시민이 될 것이며 내적 변화마저 이룩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지난 대선과 총선은 우리 내면의 저열한 열정과 속물성이 뛰쳐나왔던 과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과와 거짓말로 얼룩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뉴타운에 현혹되어 더 나은 후보들을 줄줄이 낙선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우리 안의 속물됨을 촛불로 정화해야 한다. 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회 중에 자신이 든 촛불을 응시할 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느꼈을 것이다. 이 평정한 마음으로 정진하면, 세상을 밝히며 안으로도 스며드는 조용하고 따뜻한 이 촛불 같은 사회, '촛불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08.7.9 ⓒ 김종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