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MB노믹스의 빈곤
유종일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한국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 거시경제의 3대목표인 경제성장, 물가안정, 국제수지균형이 모두 무너지고 있다. 2분기 실질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8%로, 1분기의 5.8%보다 1%나 하락했다. 물가오름세가 지속되어 소비자물가지수는 6월에 5.5% 상승했고, 생산자물가지수 상승은 10.5%에 이르렀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던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서 올 들어 5월말까지 누적적자가 70억달러를 넘었다. 최근에는 단기외채가 급속히 증가하여 '9월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다.
특히 서민들의 고통이 심하다. 내수가 크게 위축된 탓이다.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1% 감소했다. 내수침체는 고용악화를 낳는다. 6월 취업자수 증가는 전년 동월 대비 14만 7천명에 불과했는데, 이는 참여정부 5년 동안의 평균 고용창출에 비해서 반토막이 난 것이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 1분기에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은 하위 20% 가구의 8.41배였는데, 이는 관련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고치였다. 사정이 이러니 'IMF 씨즌 2'라는 인터넷 '괴담'은 그렇게 치부한다 하더라도 서민들의 생활고만큼은 IMF 위기 당시에 비해서 결코 덜하지 않다.
경제위기를 놓고 대외여건 탓만 하는 정부
경제가 이렇게 어려워진 원인을 놓고 정부는 고유가 등 대외환경을 탓한다. 지금 세계경제는 이른바 3F(Fuel, Food, Finance)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유가와 곡물가격 등 원자재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함으로써 비용상승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과 이에 따른 경기둔화가 일어나고 있고, 수입비용이 증대함에 따라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다.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써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비롯된 금융경색도 금융시장과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대외여건만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의 정책실패가 경제사정 악화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수출증대로 경기를 부양하고자 고환율정책을 편 결과 물가상승을 부채질한 꼴이 되었다. 수출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수출의 70%가량을 대기업이 담당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결고리가 약화된 상황에서 수출증대의 경기진작 효과는 미미했고, 오히려 물가상승으로 실질소득이 하락해 소비가 감소하면서 내수가 크게 침체되었다. 그 결과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은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매우 부진하고 자영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고환율정책은 서민 주머니 털어서 수출기업을 보조한 셈이다.
물가에 비상등이 켜지고 고환율정책이 도마에 오르자 정부는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내놓으면서 당분간 성장보다는 물가안정과 민생안정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기상여건이 악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747 비행기를 이륙시켰다가 비행이 어렵고 승객들이 항의하자 불시착한 꼴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또다시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금리인상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내리는 정책은 외환보유고만 축내고 오래 가지 않아 실패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교역조건 악화라는 외부충격을 받은 우리 경제는 어느정도 긴축을 해야 한다. 수입물가 상승으로 우리의 구매력이 떨어졌으니 여느 가정주부와 마찬가지로 살림을 좀더 알뜰하게 꾸려나가야 할 것 아닌가? 금리인상이 가져올 부작용이나 긴축의 고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 이 고통을 회피하면 회피할수록 문제는 더욱 커지고 나중에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MB노믹스의 핵심은 고성장정책
그런데 정부는 아직도 고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경제철학은 성장지상주의이기 때문이다. 성장이 최고의 목표고 성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안정을 중시해야 할 여건 아래서도 고성장을 추구하다 부작용을 심화시켰던 것이고, 아직도 속내는 하루속히 고성장정책으로 회귀하고 싶은 거다. 실제로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서도 "감세, 규제완화 등을 중심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능력을 확충해나간다는 MB노믹스의 기본틀은 계속 추진"한다고 했다. 대대적인 감세와 규제완화, 거꾸로 가는 정책들이다.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인하하면 그 혜택의 대부분이 대기업과 고소득자, 고액자산가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감세정책은 가뜩이나 심각한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고통분담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성장정책으로서도 하수다. 가뜩이나 돈을 쌓아놓은 대기업들이 경기는 나빠지는데 법인세 깎아준다고 투자를 더 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우며, 고소득자와 고액자산가는 소비성향이 낮아서 이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것은 소비진작에 별 도움이 안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내수위축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다. 공공부문 주도로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영세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규제완화도 문제다. 정부는 '친기업'정책을 규제완화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친기업'이라는 게 사실은 '친재벌'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철폐나 금산분리 완화 등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더욱 조장할 것이다. 하도급거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와 단속을 약화하겠다는 것은 노골적으로 재벌 편을 드는 것이다. 재벌을 더 키워서 한국경제를 이끌고 나가도록 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중소기업이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부품소재 분야의 취약성에 기인한 대일 무역적자 해소도 바라볼 수 없다. 양극화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양극화는 구조적 문제다.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관관계는 약화되고 생산성 격차는 날로 확대되는 구조가 문제다. 재벌대기업의 자산과 매출 비중은 늘어나는데도 고용은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가 과대팽창하고 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산업구조와 고용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이 필수다. 이명박정부는 성장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구태의연한 발상 때문에 한국경제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구조개혁을 외면하고 있을뿐더러, '친재벌'적인 규제완화 정책으로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시대착오적 경제철학을 버려야
진보진영에서는 흔히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시장원리를 존중하기보다는 시장에 대한 거칠고 직접적인 개입을 일삼으며 구시대적 '관치'의 습성을 드러냈다. 노골적인 외환시장 개입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요금이나 은행수수료 등과 관련하여 정부 압력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려는 발상이 반복적으로 표출되었고, 심지어 'MB물가지수'라는 것을 만들어 집중 관리한다고 하기도 했다. 금리정책에서도 한국은행을 압박하면서 독립성을 위협하기도 했다. 최근 지역발전정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새만금 조기개발 등 대대적인 토목건설 프로젝트요, 지방 이전 기업에 개발권과 토지수용권을 줘서 초헌법적으로 난개발을 부추기겠다고 하니 구시대적인 건설경기 부양정책의 냄새가 물씬 난다. 한반도 대운하의 변형이 아닌가 싶다.
MB노믹스의 핵심은 고도성장이다. 그런데 경제는 거꾸로 가고 있다. 성장정책의 여건을 잘못 판단했고, 성장으로 일자리나 양극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잘못되었고, 감세, 규제완화, 친재벌, 관치, 건설경기 부양 등 성장을 위해 동원하는 정책수단이 시대착오적이다. 경제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정부가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2008.7.30 ⓒ 유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