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특집 1] KBS사태에 중립지대는 없다
강형철 /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번 KBS 사장 해임사태를 보면서 그간 공영방송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KBS와 MBC 그리고 EBS라는 우수 공영방송을 가진 데에 자긍심을 느꼈던 것이 무색해졌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방송 품질 면에서 서구의 우수 사례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창의력이나 건전성이 서구의 그것들에 크게 뒤지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미약한 공적 재원 규모나 군부독재가 남긴 외상을 고려한다면 지난 20년간의 발전상은 사실 놀라울 정도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역동적 사회변혁의 중심에 서서 문화적·정치적 진보에 일정부분 기여하며 서구 공영방송의 일반적 모델에 근접하는 길을 걸어왔다. 이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정적인 일본 체제를 반영하는 데 그쳐 문화적, 정치적으로 모두 보수적이며 관료적인 색채를 띠어온 것과 대비되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제 필자는 이러한 평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 공영방송 사장이 감사원의 표적감사에 의해 해임권고를 받고, 깨끗하지 못한 과정을 거쳐 임명된 여당측 이사들이 그에 대한 해임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이를 해임하는 한편, 검찰이 그를 잡아다가 조사를 벌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일반적 속성을 생각하면 이러한 일들이 전혀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명백한 침탈에 적지 않은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침묵하거나 방관, 방조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이들이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보여왔던 다소의 진보적 가치는 지난 노무현정권과 코드를 맞춘 데 불과한 것이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지난 정권 내내 공영방송을 비판해왔던 보수진영의 주장이 옳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는 다시 이들의 주장대로 코드 사장을 해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공영방송을 '관영'방송으로 생각하는 정부
팀제 실시 등 정연주 사장의 성급한 개혁이 KBS의 조직문화를 해치고 복지혜택을 줄인 것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국가의 침탈에 대한 침묵과 방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서구의 '공영'(public)방송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는 '공중'(public)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힘써왔으며, 이는 당대 정부의 성향에 휘둘리지는 않는 전문직 문화에 의해 지탱되어왔다. 전문직 문화는 공영방송이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소수자들을 더욱 배려하는 '적절한 공정성'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실망을 넘어 절망스러운 것은 정권의 전횡에 대해 많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관련학자들조차 "잘한 것은 아니지만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이 사태를 '구여권 잔존 인물인 정사장과 현정권의 싸움' 정도로 보고 '중립'에 서기를 원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대통령이 통치를 위해 감사원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며 현실론을 펼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은 이 사태를,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해임권이 있다고 하고 민주당은 없다고 하는 '논란거리'로 생각한다. 주류 신문들이 나서서 정사장 해임이 옳다고 하고, 정작 KBS 자신과 MBC도 더이상의 '공정성' 시비가 무서워서인지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못을 알릴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기대할 것은 사법부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법원이 정사장의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결하면 정사장의 해임은 정당한 것인가? 필자는 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현행법을 근거로 정사장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 '그 죄가 해임될 만한 정도의 죄인지' 등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공영방송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안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해서는 안되며, 만약 이러한 사안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법체계가 있다면 반드시 이를 고쳐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서구의 공영방송에는 국가방송이나 관영방송이 아닌, 당대의 정부의 관여에서 유리된 독립기구로서의 지위가 부여되어왔다. 물론 사장을 왕이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의 절차가 있고 이에 따라 국가권력이 면직권을 지닐 수도 있겠지만, 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영방송 사장이 물러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사장 해임이 코드가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영상의 배임 등의 '비위'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자. 공영방송 사장을 몰아낼 때 '코드가 맞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대는 나라는 없다. 독재국가라면 내 사람이 아니면 이유 불문하고 자르는 것이 '상식'이며, 그나마 절차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라면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다른 이유를 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사장 해임도 이후에 나온 여당 대변인의 논평 등을 보면 '공정성'에 대한 불만, 즉 코드의 문제였던 것이 확실하다.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공영방송을 위하여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독립성에 바탕을 둔 현대 삼권분립의 정치체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모습으로 인식된다. 이 체계에서는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장 등 독립기관장을 행정부 수반이 해임할 수 없다. 공영방송 또한 입법부처럼 독립기관의 지위를 부여받을 때에만 국가씨스템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이 가능한 사회기구이다. 하버마스는 서구 봉건사회 해체기에 신문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결하는 공공영역의 역할을 하면서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한 후 신문은 일반적으로 자본의 도구로서의 역할에 머물며 공공영역으로서 기능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럴 때 현대사회에서 공공영역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바로 공영방송이다. 자유주의시대에 출발한 신문과 달리 방송은 국가개입주의 시대에 태동하여 자본의 영역보다는 공동체의 영역에 자리매김되어왔으며, 이윤추구 동기에서 해방되고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어왔기 때문이다.
정연주 사장의 해임사태는 한국에서 어렵게 건설해온 공공영역의 가능성을 일거에 없애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권력이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 자체가 공공영역이며 공영방송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상업방송의 난립상황에서 공영방송이 방송의 표준 향상을 위해 기여하는 기능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2008.8.20 ⓒ 강형철
* 〈창비주간논평〉에서는 이명박정부의 언론통제와 방송장악 시도를 계기로 촉발된 공영방송에 대한 논의를 앞으로 네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해외의 공영방송 운영실례와 시사점, 우리 언론현실에서 공영방송이 맡아온 역할과 지향점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공영방송이 공기(公器)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칼럼을 실을 예정입니다. ―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