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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은 촛불의 승리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은 숨가쁜 데가 있다. 연이어 생기고 겹쳐서 터지는 일들이 너무 많다. 지난주는 특히 그랬다. TV로 4‧29 재보선 결과를 밤늦게 시청했는데, 다음날 아침에는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그 다음엔 노동절과 촛불항쟁 1주년을 기념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수백명이나 체포되었고, 그것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참여자들마저 체포됐다. 세가지 사건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재보선 결과와 촛불항쟁 1주년을 기념하는 시민들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과 촛불집회 참여자 체포는 그런 저항에 현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여준다.


후자는 해석이 그리 까다롭지 않다. 검경에 의존하는 강경통치를 지속하겠다는 현정부의 태도는 예견된 것이었고, 적어도 당분간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석달이나 지속된 촛불항쟁을 겪고도 아무것도 학습하지 못한 터인데 재보선 결과를 보고 무언가를 배우리라 기대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과대평가이다. 오히려 더 강경하게 나가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통치가 흔들린다는 식의 상황인식이 청와대의 주된 기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재보선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에 비해 재보선 결과나 촛불항쟁 1주년에 대한 해석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재보선 결과가 그렇다. 투표소 안의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얼마나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는지와 상관없이 숱한 인연들, 공적 인간으로서의 정치의식과 사적 이해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뒤얽힌 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 결정을 정밀하게 해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선거의 분석이란 이 결정들의 집합이 보여주는 희미한 흐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고, 그만큼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좀 성급하다 해도 논쟁을 마다하지 않고 투표 결과를 해석하자면, 이번 재보선은 촛불의 승리로 보인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자.


모두 알다시피 민주당의 경우 수도권의 부평을 국회의원 선거와 시흥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무투표당선 지역을 제외하고 사실상 호남 전지역에서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에서는 친박진영의 무소속 후보가, 울산에서는 진보신당이 승리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이미 많은 언론이 지적했듯이 이번 선거에서는 당연히 예상되던 반MB 전선이 흐트러져 있었다. 민주당은 정동영씨의 출마로 내분 상태였고, 한나라당은 친이명박 계열과 친박근혜 계열 간의 계파투쟁중이었으며, 진보진영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판세 예측은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MB 전선을 확인한 선거


하지만 결국에는 반MB 전선이 실재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유권자들의 전략적인 투표행위의 결과로 보인다.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전무한 호남에서는 민주당 지지를 유보하는 자유로운 선택과 지역주의적 투표행위가 결합된 양상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밖의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당선 가능한 후보로 표가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요컨대 MB가 아니라면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방향으로 적극적 투표행위와 일정한 표의 결집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광범위한 반MB 정서와 정부정책에 대한 견제심리가 촛불의 힘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촛불 때문이라기보다 이명박정부의 실책들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어딘가에서 적었듯이 누군가가 뱀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의 뒤꿈치에 밟혔을 때이다. 촛불항쟁의 뒤꿈치에 밟혔을 때, 이명박정부는 그 혐오스러운 본색을 드러냈고, 그것이 반MB 정서를 강화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촛불은 대중의 공적 시민으로서 자의식을 강화했고 그것이 4‧29 재보선에서 적극적 투표행위를 이끌었을 것이다. 촛불이 시청앞 광장에서는 꺼졌을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꺼진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촛불의 힘, 정당 혁신으로 이어질까


하지만 촛불의 힘이 그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정당의 혁신을 더디게 할 위험도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수도권의 승리에 한껏 고무되어 있고 진보신당이 원내 진출을 자축하는 데서 그런 가능성이 비치고 있다. 들여다보면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들의 모습은 구태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경우 정동영씨의 출마로 빚어진 내홍은 그렇다 하더라도 부평을에 한미FTA추진단장이었던 홍영표 후보를 공천함으로써 반MB 연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서 부평을에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그 공이 민주당의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울산 북구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선거 직전에 다행히 단일화를 이루기는 했어도 그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결코 높은 점수를 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진보신당이 승리를 자축하는 데 그친다면, 언제고 다음 선거에서 시민들은 냉담과 냉소로 답해줄 것이다. 그런 기미는 최근 여론조사(4.30. 리얼미터)에서 이미 어느정도 나타났다. 선거 후에 한나라당 지지율은 대폭 하락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겨우 2.5% 상승했을 뿐이고 진보신당의 지지율도 고작 1.1% 상승에 그쳤다. 이들 정당이 시민들에 의해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이지 그 자체로서 지지를 이끌어낼 만한 혁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4‧29 재보선에 나타난 시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받아안기 위해서는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반MB 전선을 더욱 확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연합조차 제대로 수행했다고 하기 어렵지만, 다음 선거에서 시민들의 흔쾌한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선거연합에 앞서 정책연합을 발전시켜야 한다. 당장 금산분리완화법, 미디어관련법, 한미FTA 국회비준 등에서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정책적으로 공조하면서 선명 야당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절실하다.


교육감 선거의 아쉬움을 떨치려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성찰과 혁신이 절실한 이유는 4‧29 재보선의 성과를 조용히 이끌어낸 촛불시민들이 지금 엄혹한 탄압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명박정부가 지난 해 촛불항쟁에서 얻은 유일한 ‘교훈’은 강력한 초동진압과 원천봉쇄 그리고 나중에 위헌판결을 받든 말든 현행 집시법과 교통방해죄를 적용해 집회 참여 시민들을 괴롭히는 것만이 제2의 촛불항쟁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정부가 탄압의 폭력성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촛불시민들은 평화롭고 축제적인 집회를 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민주화 이전의 가두투쟁으로 되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잘 드러났듯이 좁은 정치적 공간 속에서도 창의적으로 항쟁의 돌파구를 찾아온 시민들의 역량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갑갑한 상황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노력이 간절하다.


끝으로 이번 선거가 여러모로 희망을 주는 것이었음에도 아쉬운 점 한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재보궐과 함께 치러진 두 곳의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개혁진영이 맥없이 주저앉았다. 경기교육감 선거의 승리를 이어가는 추진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 한 석은 정치적 의미는 크지만 이명박정부 아래 대중의 실익을 생각하면 교육감의 가치에 한참 못 미친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공천이 배제되기 때문에 시민운동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장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당들이 교육감 선거까지 챙길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며, 또한 시민운동이 지방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경기교육감 선거 승리의 중요한 계기가 경기지역 시민단체들이 일찌감치 나선 데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교육감 선거에 시민운동이 촛불시민들과 함께 역량을 모아낼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9.5.6 ⓒ 김종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