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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다자기금, 아시아통화기금으로 발전하는가

문우식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 2009년 5월 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2차 ASEAN+3 재무장관회의에서 아시아 역내의 통화협력을 위한 치앙마이 다자기금(CMMI)의 각국 분담금이 확정되었다. 또한 향후 운영방식 및 법적절차의 문제도 조속히 마무리해서 올 연말까지는 출범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이로써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통화기금(AMF)이 제안된 지 12년 만에 역내 통화협력기구의 성립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아권의 경제위기에 공동 대처하자며 결성된 치앙마이 체제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의 결과인 듯하다.
 

아시아통화기금 설립에 한 발 더 다가간 역내통화협력


아시아에서 본격적인 통화협력 논의는 1997년 8월 태국 외환위기가 불거진 직후 일본이 AMF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은 동아시아 통화블록을 통해 엔화의 영향력을 높이고 아시아경제의 주도권을 잡고자 일찍부터 역내 통화금융협력에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당시 이 제안은 미국의 반대와 중국의 견제, 그리고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미온적인 태도 탓에 실현되지 못했다. 특히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은 AMF가 IMF와 조직상 겹치고, 느슨한 금융지원제도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일본의 제안이 아시아에서의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후 2000년 5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개최된 ASEAN+3 재무장관회의에서 역내 유동성 지원장치로서 스왑(swap, 맞교환)협정에 합의함으로써 동아시아 각국에서 16개의 양자간 통화스왑 체제가 발족했다. 이 합의는 역내 금융협력 면에서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약정금액의 10% 정도까지만 자체적으로 자금공여를 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IMF와 연계해 지원된다는 점에서 IMF의 부속기구 성격이 강했다. 또한 유동성 위기를 방지하기에는 지원규모가 적으며, 양자간 지원협정으로 역내 유동성 위기가 주변국으로 전파되는 경우에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2005년에는 IMF의 자금지원과 연계되지 않는 스왑자금의 비율을 10%에서 20%로 상향조정했고, 2007년에는 양자간 통화스왑을 다자간 통화스왑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에는 스왑을 공동기금으로 만들고 그 규모도 395억달러에서 800억달러로 늘렸으며, 다시 올해 2월에 1200억달러로 증액했다. 이어 지난 5월 3일에는 일본과 중국이 각각 기금의 32%, ASEAN 국가가 20%, 그리고 한국이 16%를 부담하는 것으로 분담비율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독자적 통화협력체로의 발전을 위한 선결 과제

기본적으로 치앙마이 다자기금은 역내의 통화금융협력체로 발전해가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AMF 구상처럼 역내의 독립적인 협력체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우선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는 이미 지적했듯이 역내 국가에 유동성을 지원할 경우 기존의 IMF 자금지원과 어떻게 연계되느냐이다. 이 연계조건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우선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미국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AMF 반대론이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아시아에 대한 금융지배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1997년 당시 AMF에 반대했던 로렌스 써머스 전 재무차관과 티모시 가이트너 국제차관보가 오바마 정권의 국가경제위원장과 재무장관으로 재직중인 것을 보면 그렇다. 한편 최근의 G20 런던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IMF의 역할 확대는 AMF의 입지를 제약할 또 하나의 주요 변수이다. 따라서 AMF가 출범하더라도 독립적인 통화협력체로서 기능하기보다는 상당기간은 IMF를 보완하는 부속기구에 그칠 공산이 크다. 


치앙마이 다자기금이 독립적인 통화기구로 작동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역내 감시체제(surveillance system)의 수립이다. 특히 AMF가 설립된다면 IMF와는 별도로 감시체제를 갖출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아시아 국가들이 IMF 회원국으로서 경제동향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보면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AMF가 수립된다 하더라도 IMF와의 밀접한 협력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아시아통화협력에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치앙마이 다자기금의 분담금 확정에서 최대 수혜자는 ASEAN 국가들이다. ASEAN 국가들이 20%, 일본과 중국이 각각 32%의 분담비율을 차지하는 상황하에서 일본이나 중국이 ASEAN 국가들과 연합한다면 대출결정을 비롯해 다수결원칙이 적용되는 많은 부분에서 다자기금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ASEAN 국가들이 가장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한국은 16%라는, 경제력에 비해 다소 많은 분담금을 낼 수 있게 됐지만 중국이나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과 연합하더라도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게 되어 장기적으로는 입지가 오히려 좁아진 셈이다.


아시아 통화협력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치앙마이 다자기금의 사무국을 유치하는 일이다. 지금은 ASEAN+3 의장국들이 돌아가면서 사무국의 역할을 해왔지만 치앙마이 다자기금이 탄생하면 연구 및 감시조직과 더불어 회의를 준비할 별도의 사무국이 필요해진다. 사무국 설립은 AMF 설립을 위한 마지막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일본이나 중국의 경쟁으로 우리나라나 ASEAN 국가들 중 하나에 사무국이 설립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무국의 한국 유치는 바로 AMF의 한국 유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양보 없는 외교적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2009.5.13 ⓒ 문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