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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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비정규직 법, 제대로 개정해야 한다

하승창 /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 


결국 비정규직 법에 대한 여야협상이 결렬되었다. 정말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오늘부터 100만 실업자가 발생할 것인가? 실업자가 급증하여 거리가 IMF 때처럼 노숙자로 넘쳐날 것인가? 그렇다면 야당과 양 노총은 비정규직 문제에 아주 무책임한 집단이 될 테지만 실상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관련 전문가들이 '동시에’ 100만 실업자가 생길 일은 없다고 밝힌 지 오래지만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이런 목소리에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이 법의 시행으로 해고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법이 유예된다면 대개 자기 자리를 유지할 공산이 큰 이들이다. 오늘부터 일부 언론의 지면에는 야당의 무책임함을 강조하기 위해 각종 해고사례와 그 피해자들의 사연이 실려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지도 모른다. 그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다.
  

실업대란, 민생안정 호들갑 떠는 한나라당의 속내


그러나 이런 경우는 이 법이 지닌 애초의 시행취지에 반하는 것임을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사용기간 2년’이란 제한을 둔 것은, 그런 정도의 기간을 고용한다면 정규직으로 보아야 함을 전제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오로지 기업의 일방적 이해인 노동유연성 확보에만 매달린 탓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 며칠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정책을 강조하고 시장통을 다니며 각종 서민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모습이다.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만큼 ‘서민’이라는 계층에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데 왜 이명박정부의 서민정책에는 비정규직 대책이 없을까?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사용기간 제한 때문에 기업이 비정규직을 해고할 것이고, 실업대란이 발생할 테니 사용기간을 연장하거나 이 법의 시행을 유예하자고 말한다. 결국 비정규직의 상태를 개선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다. 서민의 핵심인 비정규직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서민을 위한다며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대통령의 호소는 이중적 태도라는 의구심을 확대할 뿐이다. 


비정규직 현실 외면한 그들, 이제 와서 더 방치하자고?


한나라당이 기간연장을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내놓거나 법 시행을 유예하려 했던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동시에’ 100만이나 되는 실업자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자신들의 인식이 진실로 심각한 것이었다면 지난 2년간 비정규직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본격적인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와서 열악한 현실을 3년이나 더 그대로 두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술 더 떠서 그것이 비정규직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인 양 호도하는 형국이다.


민주당이라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2년 전 노동계에서 그토록 ‘사용사유 제한’(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기간제노동자 사용을 허용)이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였을 때, 사용기간 제한과 함께 (현재 그다지 큰 실효성이 없는) 차별시정조치가 뒤따른다면 비정규직 보호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단지 2년이란 시간만 연장해놓았을 뿐 처지가 달라진 것은 별반 없다. 그러므로 민주당 역시 지난 2년간 비정규직의 고용과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이 법에 암묵적 동의를 보낸 필자 본인을 포함한 일부 시민운동도 마찬가지다. ‘2년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조항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지만, 이를 지키지 않을 때 벌칙조항이 없는 법은 실상 유명무실하다.


시급한 보호대책, 근본적 개혁처방 동반해야


한나라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시 비정규직 법의 처리를 시도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 이 법의 시행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의 처지가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 사용기간 2년을 채우기 전에 해고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고, 그렇더라도 사용자가 특별한 불이익을 받을 벌칙조항이 없으니 해고된 노동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에 내몰릴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 노동시장은 다른 나라처럼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도록 한다지만, 분명한 사실은 과도한 비정규직 노동시장 형성이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급속히 악화하고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과 일상적인 사회 불안정성을 일으키고 우리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보호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상태를 개혁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正道)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것이 단기간 내에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현행 법이 시행되는 만큼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통한 정규직 전환 유도와 더불어 2년 전 논의에서 반영되지 않았던 사용사유 제한, 실효성있는 차별시정제도 도입, 불법적 파견 철폐 등을 포함한 개정작업이 시급하다. 동시에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가 일부 노조 탓이므로 노조만 변하면 된다는 식의 희생양 만들기가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와 양극화되는 노동시장 체제를 전반적으로 개혁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


2009.7.1 ⓒ 하승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