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개헌과 선거개혁 앞서 정치패러다임 전환을
선학태 / 전남대 교수, 정치학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지난 8월 31일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대통령 권력을 국무총리와 국회가 나눠 갖는 이원정부제 또는 부통령을 두는 4년 중임 대통령제, 그리고 국회를 상·하 양원으로 구성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앞서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진통제로 다스릴 수는 없다”며 지역주의 정치 청산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메씨지를 던졌다.
이는 헌법을 포함한 정치제도를 바꿈으로써 제도적 피로감을 드러내는 '87년체제'를 깨보려는 국회와 대통령의 문제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덜어내고 지역갈등을 해결하여 사회통합을 다져보자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정치제도 개혁이 지금 우리사회의 화두인 통합과 화합의 틀을 일궈낼 수 있을까?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 나누는 이원정부제, 능사일까
우선 이원정부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라는 국가수반, 의회의 신임 여부에 의존하는 총리라는 정부수반이 공존하는 정부형태를 말한다.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회 다수당인 경우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이 국정을 사실상 주도하는 대통령제에 근접한다. 반면에 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된 경우 다수당 총리와 소수당 대통령으로 구성되는 이원정부제는 국정 주도권이 총리에게 넘어가는 내각제에 근접한다. 이원정부제는 이처럼 총선 결과에 따라 정부형태가 달라지는 제도적 유연성과 탄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에서 이원정부제에는 두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하나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권력과 돈줄을 거머쥐고 있는 쪽은 중앙정부이니 대선과 총선이 중앙정부 장악을 위한 지역정당들의 사활전으로 전개되리라는 씨나리오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과 총리 모두 한나라당 혹은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민주당 단독으로 장악되는 씨나리오다. 이 경우 ‘슈퍼 대통령’이 출현함으로써 의회의 견제 메커니즘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지역갈등 악화 불러올 수도
그렇다면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대안인가? 미국의 4년 중임 정·부통령제는 연방제와 조합돼 있다. 단순화하자면 미국 대통령은 외교 및 국방의 권한에 치중하고(선전포고권, 계엄선포권도 하원에 있다) 대부분의 내정 권한은 주(州)로 넘기는 권력분점형이다. 우리의 경우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채택된다면 현행 중앙집권제와 조합될 것이고, 특정 지역 출신 대통령의 승자독식이 사실상 8년으로 연장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때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다른 지역의 정치적 상실감과 박탈감을 상상해보라. 참으로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중 어느 정부형태로 개헌이 되던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덜어내는 데는 그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현행 중앙집권의 틀 속에서는 지역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게 분명하다.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橋角殺牛)의 형국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지역대표성을 보장하는 상원을 둔 양원제가 함께 도입된다면 지역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중앙집권제하의 양원제는 그 효과가 반감되거나 무의미해질 수 있다. 게다가 그러한 두 정부형태 중 어느 것이든 과연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분출하는 우리사회의 계급계층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얼마나 유용할까 의문이 앞선다.
지역독점 막으려는 선거개혁이 놓치는 것은
선거제도는 어떤가? 정치권에서 지역할거 정치의 완화를 명분으로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혼합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런 '2표 병립형 혼합제'가 정당의 지역별 의석독점 현상을 가라앉히는 탈지역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종친회나 동창회 등 사조직을 결집, 불과 5% 이하의 득표율로도 당선이 가능해 의원 대표성 문제가 제기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더욱이 2표 병립형 선거제도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후보가 호남과 영남에서 교차당선됨으로써 의석분포의 지역독점을 완화할 수는 있으나, 그 댓가로 지역에 기반을 둔 낡은 보수·중도 독과점 정당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개연성이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호남과 영남에서 교차당선돼 설령 전국 정당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지역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지, 우리사회 계급계층 갈등을 제대로 대표할 수 있을지 자못 의문스럽다. 정치권은 선거제도의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승자독식의 다수제 패러다임이 문제다
무릇 민주주의 발전수준은 정치제도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치제도 개혁의 본질은 패러다임 선택의 문제이다. 즉 국정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위해 다수파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다수제 패러다임이냐, 아니면 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을 위해 소수파에게도 권력지분을 허용하는 합의제 패러다임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현행 87년체제는 강성 다수제 패러다임에 기초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정치시장에서는 치열한 '경쟁'과 '수(數)적 우위'에 따라 정치적 승부가 갈린다. 그 결과는 승자독식이다. 지방의회-지방정부-입법부-행정부-청와대를 거의 모조리 장악한 슈퍼 한나라당 정권이 등장했고 수도권 의원들이 국회를 지배한다. 다수파에 권력이 집중되는 모양새이다. 이로써 과연 국정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통합과 화합이 이뤄지고 있는가? 되레 우리사회에 갈등과 분열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한다. 우리의 다수제 패러다임은 이를 관리하는 데 속수무책이다. 앞서 지적한 개헌을 포함한 정치제도 개혁안도 합의제 패러다임의 흔적이 없지 않지만 전체적인 구도로 보면 다수제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합의제 패러다임 위에서 개헌논의, 제도개혁을
이제 우리는 한국 정치패러다임 시프트를 고민해야 한다. 다수제 패러다임을 뒤로하고 합의제 패러다임에 눈을 돌릴 때가 됐다고 본다. 합의제 패러다임에서 이원정부제냐 4년 중임 정·부통령제냐, 그도 아니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냐 같은 택일적 논쟁은 주요 변수가 아니다. 각기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어떻게 권력분점을 제도화할 수 있느냐를 중시한다.
즉 수직적 차원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서 권력을 분할하는 실질적인 지방분권의 제도화를 꾀하며, 수평적 차원에서는 보수연합정부, 진보연합정부, 보수·진보연합정부 등의 형태로 정당 간 연립정치의 제도화를 지향한다. 이를 통해 소수파에도 국가의 정책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제도적 인쎈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에 갈등과 긴장을 만들어내는 불평등과 차별, 소외를 녹여 진정한 화합과 통합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합의제 패러다임의 전형인 서유럽 정치씨스템이 이를 경험적으로 웅변한다.
독일식 '2표 연동형 혼합제'를 제안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제도개혁으로 나타난다. 합의제 정치패러다임 토대 위에서 개헌을 포함한 우리의 정치제도 개혁이 디자인되기를 기대한다. 그 제도적 틀의 첫 단추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독일식 '2표 연동형 혼합제'일 것이다. 이 선거제도는 대통령제를 비롯한 어떤 정부형태와도 조응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정부형태와 선거제도 사이에 논리적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우리사회의 갈등을 대표할 수 있는 균형 잡힌 '다당제를 하부구조로 하는 보수-진보 정당블록구도'를 창출하고 패권 정당이 나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국회와 정부에서 연립정치를 유도해낼 것이다. 더불어 행정권과 입법권을 과감히 지방으로 넘기는 준연방제적 지방분권화를 통해 중앙정치의 과부하를 덜어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수순이다. 앞서 말한 양원제와 제도적 친화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같은 합의제 패러다임의 제도적 매트릭스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사회의 다종다양한 갈등을 조정 관리하고 통합과 화합의 꽃을 무지개처럼 피어오르게 할 동력이 될 것이다.
2009.9.9 ⓒ 선학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