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북핵문제 해결, 2007~8년이 고비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중단된 지 일년 만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10년 이상을 끌어온 터라 회담의 중단과 재개가 낯설지는 않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마당에 긴장감이 더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 두고 많은 보도와 진단이 이어지고 있지만 상황은 의외로 단순하다. 여전히 북한과 미국은 둘 다 서로를 압도하기 어려우며, 중국과 남한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최근까지 6자회담의 재개가 누구의 승리인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사실 누구의 승리도 아니다. 북한의 핵능력을 대폭 강화시켰으니 부시행정부의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핵실험 탓에 자기들 주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내부의 산적한 문제에 필요한 도움도 받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북한도 승리자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6자회담의 재개는 그동안 마주보고 달리던 기차와 같던 북한과 미국이 핵실험 이후 막다른 길로 치닫는 상황에 부담을 느끼는 와중에서 중국의 중재로 잠시 숨을 고르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은 해소되지 않은 채 상대방을 위협할 카드를 버리려 하지 않는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혹자는 북한의 생명줄을 쥔 중국의 태도변화가 이러한 교착상태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듯하다. 특히 외교적 곤경에 빠진 부시행정부는 이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과 핵실험을 계기로 중국이 북한에 대한 비판과 제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사실이나 이 때문에 북중관계의 파탄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기본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구도에서는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근본적 문제해결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열릴 6자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적 기대보다는 상황이 다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협상에서 의견 충돌은 피하기 어렵겠지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행동, 즉 북한의 2차 핵실험이나 미국의 추가제재를 막고 협상국면을 최대한 지속시킬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문제해결을 위한 전환점은 6자회담 이외의 공간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2007년 한국 대통령선거와 중국공산당 제17차 당대회, 그리고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 등 이어지는 정치일정 속에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쪽의 역량이 강화되고 주도권을 갖게 될 경우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이 열릴 것이다. 6자회담처럼 정부대표가 참여하는 회담에서는 민간부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그외의 정치공간에서는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한 내에서 한반도 비핵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남북협력의 지속이라는 원칙을 견지할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다. 비핵화는 국제협력을 뒷받침할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확고부동한 목표로 제시되어야 한다. 내년의 정치공간에서 이러한 공감대가 재확인되고 더욱 확산되어야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경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 개최될 중국공산당 제17차 당대회에서는 현재 후진타오 총서기와 원자빠오 총리 중심의 지도체제가 이어질 것이고 한반도정책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한의 대북정책이 동요하고 한국이 미·일 주도의 대북강경책으로 기운다면 중국은 홀로 북한을 지원하는 처지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남한에서 평화세력이 강화된다면 중국은 더욱 자신감있게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미국내 일부 대북강경파들은 내년 대통령선거 이후 등장할 남한의 새 정부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인식을 내비치고 있는데 이는 남한의 선거결과에 따라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강화되고 한반도의 긴장도 고조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남한의 민의가 다시 확인된다면 미국의 강경파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약진한다면 대외정책의 획기적인 전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즉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내에서도 진지한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인데 남한의 평화세력이 이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모색한다면 미국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처럼 2007~8년은 남한의 민간세력이 한국과 중국, 미국을 가로질러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할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기회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북한과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협상과 공동행동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난 몇년간의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호불신과 오해가 상상하기 힘든 재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07~8년은 한반도가 어두운 터널의 끝을 향해 달릴지 아니면 막다른 길을 향해 달릴지를 좌우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2006.11.07 ⓒ 이남주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