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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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사회통합 위한 이주민 정책 시급하다

조효제 /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

한국 대학의 동료교수에게서 급하게 메일 연락이 왔다. 학교의 외국 유학생이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난데없이 봉변을 당했고 경찰조차 미온적으로 대처한 듯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작년 7월 부천에서 발생했던 인종차별적 성격의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고, 그후 '성·인종차별반대 공동행동'이라는 시민사회 조직까지 만들어졌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지는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발생건수와 빈도뿐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외국인 체류자(불법·합법을 막론한 개도국 출신의 전체 유색인들), 결혼 이주자, 탈북 새터민 등이 겪는 차별과 배제와 소외가 개인적이거나 우발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굳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여기서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을 포함하면서도 그보다 더 넓은 차원의 어떤 새로운 배타적 경향의 출현을 심각한 문제로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편화·일상화되는 인종차별


예를 들어, 유색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과 탈북 새터민과 조선족 중국인에 대해 가해지는 배제는 인종차별, 성차별, 출신지차별, 계급차별 등이 중층적으로 얽히면서 그것이 '진짜' 한국사람을 규정하는 역 잣대가 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배타적 경향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필자가 체류중인 독일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필자는 현재 독일 대학과 계약을 맺고 가르치면서 독일 정부에 세금을 내는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의식과, 독일 사회가 외국인 이주자와 노동자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관찰하는 연구자로서의 의식을 동시에 지니고 살고 있다. 짧은 관찰 기간이지만 우선 전체 독일 인구 중 이주자가 차지하는 비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8200만 독일 국민 중 1500만명이 이주자 또는 그 후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거의 국민 다섯 중 한 사람이 이주자 출신인 셈이다. 그중 소위 '임시손님 노동자'(가스트 아르바이터) 출신으로 독일에 정주한 사람들과 그 후손이 가장 많고, 가족결합으로 건너온 사람들 그리고 정식 시민권을 취득한 이들이 있다. 또한 해외거주 독일계 동포 귀환자 450만명도 이주자로 분류되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서독의 경우 전쟁 후 터키, 이딸리아, 에스빠냐, 그리스, 뽀르뚜갈, 튀니지아, 한국 등에서 손님 노동자들이 유입되었고, 동독에서도 동구권과 베트남 등에서 온 손님 노동자들이 있었다.


눈여겨볼 독일의 이주자 정책
 
아시다시피 독일은 공식적으로 '이민국가'가 아니라고 오랫동안 주장하면서 지내온 나라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흔히 대비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외국계 거주자들이 늘어나면서 뒤늦게나마 현실적인 이주자 정책을 취한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이민국가의 정체성을 갖고 출발한 미국보다 독일의 경험으로부터 참고할 만한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즉 원래 한시적 노동력의 수입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점,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력'만 독일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건너와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점, 인간이 어울려 살다보면 인적·사회적·문화적 교류와 혼합이 자연스레 발생하고 그 후손들도 생긴다는 점, 법적 지위가 다양하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 경로를 통해 장기적인 체류자가 늘어난다는 점, 이질적인 집단의 증가로 각종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면서 동시에 유입국의 문화와 대중인식을 풍요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 등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이민 현실을 씨티즌십의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활하지 않아서 상당한 내홍을 겪었고 지금도 이 문제가 완전히 풀린 것은 결코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주에 관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시도한 국가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전환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며 법제도와 정책의 두 기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주집단을 동반자로 인정하는 것부터

우선 법제도 차원에서는 2005년 초부터 발효된 신이민법이 대표적인 전환 사례이다. 이 법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실질적인 '이민국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주민에 대한 처우와 법적 지위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고 제도적인 절차와 골격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정책의 차원에서는 집권 보수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해온 이니셔티브를 들 수 있겠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내의 다양한 이주집단을 초청한 '통합 정상회담'(Integration Summit)을 2006년 7월에 소집했고 다음해에도 이 모임을 재개했다. 터키계의 주요 단체들이 참석을 거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어쨌든 보수 집권세력이 사회 내의 이주자 집단들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을 '정상회담'이라는 상징적 형식으로 한 지붕 아래에 불러모았다는 사실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모임은 베를린을 비롯한 지역 자치주들 차원에서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통합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2007년에 국가통합계획(NIP)을 채택하고 400개의 구체적 정책을 제시했다. 이주자들을 위해 언어교육, 직업교육, 구직 알선 등을 제공하고, 특히 여성 이주자들을 위해 젠더 평등정책을 실시하며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풀뿌리 통합을 적극 지원하는 것 등이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언어교육에만 우리 돈으로 연 2500억원의 예산을 쓴다고 한다. 스포츠를 통한 통합이라는 정책도 흥미로운 제안이다.


통합, 동화, 다문화

여기서 독일이 '통합'이라는 개념--찬반 논쟁이 거세긴 하지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음을 지적해야 하겠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통합'이란 출신국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고 유입국에 완전히 흡수되는 '동화(同化)'가 아니라고 한다. 또한 '통합'은 여러 정체성들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다문화'와도 구분된다고 한다.


즉 주류사회의 언어·문화적 주도성을 중심에 놓되 하위의 소수정체성들도 인정하면서 그것들이 주류사회와 민주적으로 연결되게 하는 중간적인 모델--동화와 다문화 사이의 절충--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최근 한국에서 다문화정책이니 다문화가정이니 하는 말들이 정부 홍보 차원의 수사처럼 범람하고 있는데 이런 담론이 과연 우리사회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주장인지, 독일의 예를 참고삼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어떨까 한다. 


독일의 경험은 인간의 이주가 현대 세계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그것을 배제와 차별보다 공존과 공영의 원칙 위에서 처리하는 태도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포괄적 법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는 일이 빠르면 빠를수록 현명하다는 점도 잘 가르쳐준다. 이 점이 바로 우리 사회가 교훈으로 삼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계 이주자들의 성공적 정착이 주는 교훈

글을 마치기 전에 덧붙일 내용이 있다. 독일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계 이주자들이 대단히 성공적인 통합의 사례라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손님 노동자로 건너왔던 초기 이주자들의 성공담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2세들이 독일에서 주목받는 모범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성공했을 뿐 아니라, 문화, 예술, 전문직, 학문 등 사회 여러 분야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 있음을 기록해 두고 싶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이주자들이 인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와 복지제도 속에서 자신의 자질을 큰 장애 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점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20, 30년 뒤의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2세대가 본인들도 잘 성장하고, 우리 사회에도 풍요로운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좀 좋은 일이겠는가? '토박이' 한국인을 위해서도 그게 바로 살 길이라고 말하는 게 이성적인 태도가 아닐까 한다.


2010.4.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