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그래도 MBC는 포기할 수 없다

노종면 / 언론노조 공정선거보도위원장, 전 YTN 노조위원장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1990년 9월 4일 MBC에서 방영될 예정이던 〈PD수첩〉의 당일 방송분 제목이었다. 농민들의 반대로 민감한 이슈가 돼 있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다뤘기 때문에 적지않은 반향이 예상되었고, 때마침 전국 농민대회를 앞두고 었었기에 '큰집'에서 불편했을 수도 있었겠다. 그때도 누군가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를 까였을까? 예고 방송까지 나간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제때 방송되지 못했다. 당시 MBC 최창봉 사장은 방송 연기를 지시했다.


MBC 노조가 저항했지만 최사장은 노조위원장과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당시 정권이 3당 합당의 여세를 몰아 KBS 노조를 군홧발로 짓밟은 지 불과 몇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1990년, 언론통폐합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언론수난기는 이명박정부의 2008년과 소름 돋도록 닮아 있다.


1990년과 2010년, 우리 언론의 두 현실

1990년 노태우정권은 감사원 특별감사와 이사회 제청을 거쳐 KBS 서영훈 사장을 해임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 역시 감사원 특별감사와 이사회 제청을 거쳐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다. 둘다 이유는 부실경영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래도 노태우 대통령은 해임권까지 포함된 임면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방송법 개정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임명권만 남아 있었으니 과감하다 해야 할까, 무모하다 해야 할까?


1990년 MBC 사장은 내부 반발을 무시하고 〈PD수첩〉 방송 연기를 강행했다. 2008년 MBC 사장은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PD수첩〉 사과방송을 강행했다. 1990년 MBC 사장은 노조원 2명을 해고했다. 2008년 정부는 〈PD수첩〉 제작진을 고발하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며 이듬해 체포와 기소가 이어졌다. 18년 전 MBC 경영진이 했던 일을 정부와 수사기관이 자임한 셈이다.


2008년으로부터 2년이 지난 2010년 4월, MBC에서 파업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1990년대로 돌아가 1990년 MBC 해고사태 2년 뒤를 보자. 어김이 없다. 1992년 MBC에서는 '50일 투쟁'으로 불리는 장기 파업투쟁이 벌어졌다. 구호는 '공정방송'과 '해직자 복직'이었다.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기, 3당 합당으로 '거대한 여당'만 존재하는 구도 속에서 빚어진 해고 사태가 2년 뒤 파업으로 이어졌다. 모순이 곪고 곪아 터진 결과였다. 공교롭게도 1992년 파업을 할 때 대통령 선거 석달 전이었던 것처럼, 2010년의 파업은 지방선거를 두달 앞두고 시작되었다.


되풀이되는 방송장악 시도와 저항

그렇다면 2010년 4월 MBC의 파업도 2008년부터 곪아온 무엇이 터지고 있는 것인가? 근본적인 모순은 권력에 의한 방송장악 기도다. 1990년에 민영방송을 허가하는 방송법이 날치기 처리된 것처럼 2008년부터 이명박정부는 미디어법 개정을 추진해 이듬해 역시 날치기 처리했다. 또한 KBS와 YTN 등의 사장 교체과정에서 방송장악 의지를 더욱 선명히했다. MBC 내부에서는 〈PD수첩〉에 대한 정부의 고발, 검찰 수사, 사장 교체 등이 MBC마저 권력의 손에 넣으려는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현재의 MBC 파업은 사장 교체나 김우룡씨의 ‘큰집 쪼인트 발언’으로 갑자기 촉발된 것이 아니다. MBC 손보기에서 MBC 접수 기도까지 이어진 2년의 과정에서 응축된 분노가 바로 지금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1992년 가을에 그랬던 것처럼.


1990년대의 빛바랜 영상에서 HD 화질로 거듭나고 있는 패러디 영상의 결말은 어떠할까? 1992년에는 파업에 돌입한 지 한달 만에 경찰 천명이 MBC에 들어가 187명을 연행하고 7명을 구속했다. MBC 노조는 이후에도 장외투쟁을 이어가다가 파업 돌입 50일 만에 공정방송협의회 강화 등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이 미흡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합의 직후 구속자가 석방되었고 퇴진 압박을 받던 최창봉 사장은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채 1993년 3월 사퇴했다. 해직자들도 6월에 복직되었다.


긴장감 높아지는 MBC 안팎

1992년의 상황을 2010년에 단순 대입하면, 파업 돌입 한달이 되는 5월초나 고소 후 10여일 뒤 MBC 사장은 공권력을 끌어들일지 모른다. 사장이 마지막이라며 제시한 복귀 시한이 지남에 따라 MBC 안팎에서는 경찰 투입, 대량 징계가 임박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설마 그리 할까? 권력은 곧잘 무리수를 둔다. 불법 파업하면 불법이라고 잡아가고, 합법 파업하면 불법적으로 잡아간다. 여론이 무서워 못할 것 같은데, 여론이 무서워하겠지 하며 칼을 휘두른다. ‘강공을 통한 지지층 결집’이라는 논리 하나면 선거도 큰 변수는 안된다. MBC 내부 권력도 선거까지 기다렸다가 혹시 배후권력이 선거에서 질 경우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을 우려할 것이다.


협상의 기술로 보더라도 칼을 빼들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보통 협상은 양쪽이 양보할 무언가가 있을 때 가능하지만 지금 MBC 사장과 MBC 노조 사이에는 승패만이 존재한다. 칼을 쥔 자는 이럴 때 칼을 휘두른다. 칼로 상처를 낸 뒤 그 상처를 치료해주는 조건으로 타협을 하려는 의도이다. 칼은 MBC 사장, 아니 권력이 쥐고 있다.


1990년대와 달라진 것들

그러나, 칼이 통했던 1990년대와 지금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지만 치명적으로 다르다. 우선 2008년 KBS에서 정연주가 쫓겨나고 신태섭이 쫓겨났지만 그들은 법원에서 승리했다. 정연주를 부관참시하려던 검찰로부터도 이겼다. 2008년 YTN에서 6명이 해고되었지만 그들 모두 해고무효 판결을 얻어냈다. 2009년 〈PD수첩〉도 검찰을 상대로 승소했다. 1990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다. 상처를 입어도 버텨내면 명예로운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수없이 확인하고 있으므로 두렵지 않은 것이다.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MBC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구속과 해고의 칼날을 응시하며 입이 아닌 몸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도 MBC는 포기할 수 없다.'


2010.4.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