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7‧28 재보선과 MB정부의 선택
고원 / 상지대 학술연구교수
전국 8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7·28 재보선은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났다. 당초 재보선을 둘러싼 객관적 상황은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방선거의 여진이 남아 있었고, 알다시피 선거를 앞두고 민간인 불법사찰,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 성희롱 발언,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까지 겹쳐서 악재가 빈발했다. 권력의 핵심부는 이중 삼중으로 분열하는 등 레임덕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재보선이 치러지는 곳들은 대부분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한나라당의 완승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요인은 무엇인가. 7·28 재보선은 향후 정국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이명박정부의 레임덕 위기는 해소되었는가? 한나라당은 차기 대권경쟁과 관련하여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의 재보선 평가는 대체로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민주당의 오만함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층 결집의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는 일리있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가지 모두 재보선의 핵심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보수층 결집의 결과인가 야권에 대한 경고인가
먼저 보수층 결집이라는 주장은 객관적 지표에 의해 간단히 논박될 수 있다. 이번 재보선 8개 선거구 전체의 투표율은 34.1%였다. 이는 지난해 4·29 재보선의 34.5%에 약간 못 미치고, 10·28 재보선의 39.0%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치이다. 이는 보수층이 위기감을 느껴 결집했다고 볼 수 있는 정도의 지표는 아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여느 때만큼 통상 투표하러 나온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과 MB에 반감을 가진 무당파층이 꽤 많이 불참한 정도였을 뿐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딱히 보수층이 결집할 만한 뚜렷한 계기 같은 것도 없었다. 한나라당이 '겸손모드'로 자세를 낮춤으로써 정권심판의 화살을 피해 나간 면은 있으나 그것 역시 결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렇게 보면 민주당의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도 과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에서 심판의 의지를 불살랐던 유권자들은 원래부터 민주당과는 거리감이 있었던 무당파층이 많았던 만큼 긴장감이 사라진 이번 재보선에서 투표장에 기를 쓰고 나와야 할 유인이 상당히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여기에 지방선거 후 안이함과 내부 당권싸움으로 일관해온 민주당의 태도는 반MB 무당파층은 물론이고 지지층의 동원마저도 막아버린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보면 정당간 역학구도에서는 제로썸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막상막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민주당 지지자들의 동원이 상당히 감퇴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투표율이 그런대로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을 유지한 면은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보수층 결집의 가설로는 타당성이 떨어진다. 그것은 오히려 지난 지방선거에서 MB심판 쪽에 표를 던졌던 무당파 유권자들 중의 일정 부분이 이번에는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을 것으로 봐야 한다.
유동층의 확산이 말해주는 바
그렇다면 무당파층의 일정 부분이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과연 민주당에 대한 심판의지일까.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정치의 거시적 트렌드를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와해되어 왔다. 민주당(열린우리당)은 2005년 이후 정당기반이 붕괴되어 여전히 회복 불능의 상태에 처해 있으며, 한나라당 역시 촛불집회 이후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서서히 기반 붕괴의 길을 걷고 있다.
대중은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불신과 함께 보수 전체의 무능과 타락을 신랄하게 경험하면서 그에 대한 피로와 불신을 구조적으로 쌓아나가고 있다. 그래서 무당파층은 여전히 거대한 비중으로 정당체제의 바깥에서 유동하고 있다. 이 무당파층은 지금까지는 야권 성향의 집단이 많았지만 지금은 여권 성향의 집단들도 대량 창출되고 있다. 근래 각종 선거에서 보수층 동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한가지 근거이다.
이처럼 정당체제의 붕괴라는 조건에서 결국 대중의 투표 선택기준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바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어느 쪽도 정당정치적 수준의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다만 한나라당이 정당 모두에 대한 불신의 공간에 잘 적응하는 선거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이 '지역일꾼론'의 깃발 아래 지역주민의 이익논리를 파고드는 유형의 인물우위 공천을 적중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재보선 이후 향후 정국에 대한 전망도 일정부분 가능하다. 즉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이명박정부의 레임덕 위기가 어느정도 완화되었을지는 모르나 해소되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는 결코 없다는 점이다. 보수층이 결집했다거나 심판론이 거꾸로 민주당을 향하게 되었다거나 할 수 있는 논거가 약할 뿐 아니라 그밖의 별다른 계기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MB정권의 민심 오독, 국민적 불행 부를라
MB정부와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몸을 낮추면서도 속으로는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곳에서의 선거 승리에 한껏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모양새다. 더구나 이번 선거에서 친MB인사들이 많이 당선되고, 무엇보다도 MB의 핵심 오른팔 이재오 의원이 정치무대에 복귀한 것에 벌써부터 한나라당은 술렁거리고 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이명박정부의 국정운영이 공세적으로 갈 것이라고 보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커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MB정부가 4대강 공사를 다시 강행하겠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그러나 그럴 경우 MB정부 레임덕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 또한 충분히 크다. 이번 재보선의 민심은 결코 MB정부가 지금까지와 같은 국정운영을 지속해도 좋다는 메씨지가 아니다. MB정부가 민심을 또 다시 오독하여 독단적이고 공격적인 국정운영을 펼치려 한다면 민심의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한나라당 내부의 대권경쟁 구도 역시 그런 선상에서 전망해볼 수 있다. MB가 박근혜 진영을 흔들려는 목적 아래 개헌이나 선거구제 개편 같은 이슈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려 한다면 내부의 권력투쟁은 더욱 가열화되고 여권은 총체적 혼돈에 빠져들 것이다. 다만 MB가 현상유지의 태도를 지속할 경우 보수 전체의 공멸 가능성을 견제하기 위한 양자간의 정치적 조율이 시도될 가능성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는 결국 권력의 독점과 유지, 그에 따른 갈등과 혼란의 길을 가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그들과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선택이다.
2010.8.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