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DMZ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만들자
한반도의 신뢰구축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창비주간논평>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의 국제적 시야를 확보하고 국내의 주요 쟁점을 외국독자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국제관계 전문지
이승호 / DMZ포럼 대표
자연을 보존하는 노력이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난 20년간 6자회담 당사국들--남한,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은 쌍방향으로 또는 다각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적지로 바꾸는 집단적인 노력도 6자회담 당사국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중립적인 과학자와 학자들이 주도하는, 주요 적대국 간의 환경적·문화적 협동은 DMZ를 어떤 독특한 기회의 장소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비무장지대의 자연적·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노력은 평화구축에 도움이 되고 한반도 평화의 정착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군사·경제·정치·외교적 조치가 강구되었다. 한때는 핵무기시설에 대한 선제정밀타격이 고려되기도 했지만 북의 보복이 초래할 파국을 고려하여 기각되었다. 최근에는 서해에서의 천안함 침몰과 그 원인을 둘러싼 논란으로 6자회담 당사국들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북의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를 강제하기 위해 경제제제 수위를 국제적으로 더 높이려 한다. 그러나 북한경제와 경제적 고립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한다면, 또한 역내에서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이 북에 경제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런 조치의 효과는 의심스럽다.
교착상태 빠진 6자회담, 새로운 활로 찾아야
그럼에도 의미심장하고 구체적이며 매우 희망적인 선언과 합의를 도출하는 등 몇몇 주요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협상 관련 당사국들은 장기적인 견지에서 합의와 선언문을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으며 협상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오히려 평화협상을 통한 외교 정상화와 경제원조, 안전보장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북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의 점진적인 해체에 앞서 평화협상과 경제원조를 원한다. 이런 상황은 6자회담 당사국들 사이의 새로운 불신과 더불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만들기를 위한 공통의 토대를 찾는 데 불길하게 작용하고 있다.
뿌리 깊은 불신의 역사로 미루어보면 북의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전에 환경과 문화의 잠재적 중립지대에서 6자회담 당사국들 간의 신뢰구축 수단을 찾아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한반도의 DMZ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알다시피 DMZ는 휴전(1953년) 이래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그곳은 희귀식물과 꽃,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에게 우연하게도 낙원이 되었다. 비무장지대는 전쟁의 파괴적인 작용이 끝난 이후 자연이 어떻게 스스로를 복원하는가를 놀랍게도 분명히 보여준다. 생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만들어내면서 다양한 생물이 번성해온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많은 강과 강기슭이 가로지르고 있고 숲과 습지, 초원, 늪, 하구 등이 풍부하다. 반달가슴곰, 표범, 스라소니, 산양, 그리고 어쩌면 호랑이를 포함하여 1100개의 식물종, 80종이 넘는 어류, 50종의 포유류가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검은얼굴저어새, 두루미 같은 멸종위기에 빠진 수백종의 조류가 DMZ를 거쳐 몽골, 중국, 러시아, 베트남, 일본,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다. 한탄강과 임진강 근처에 위치한 주상절리(柱狀節理, 마그마가 냉각할 때 수축에 의하여 기둥모양의 갈라진 틈이 형성되는 것)나 철원의 석회암동굴 같은 지질학적 특색은 높은 보전 가치를 갖는다. 비무장지대 안에는 아직도 탐사하고 보존해야 할 수많은 역사적 고고학적 보물이 있다. 철원 근방의 고대 수도인 궁예도성도 그중 하나다. 조선시대의 중요한 사적도 있다. 한국전의 수많은 싸움터 역시 DMZ 내에 있다.
생태보고 비무장지대의 역사문화적 가치
이처럼 비무장지대의 문화적·생태적 가치는 하바드대학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과 유엔재단(United Nations Foundation) 및 CNN의 창립자인 테드 터너를 포함하여 전지구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시아학회 2003년 DMZ포럼에서 윌슨 교수는 DMZ는 "게티스버그와 요세미티공원을 합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DMZ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만도 상당할 것이다. 터너는 전쟁의 상징인 DMZ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전지구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평화를 증진시키는 한가지 방법은 DMZ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일이다. 나라간 협력을 도모하고 "교육과 과학, 문화, 통신 및 정보를 통해 평화구축과 빈곤퇴치, 지속가능한 개발, 그리고 문화적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1945년 11월 16일에 유네스코(UNESCO)가 창립되었다. 유네스코가 그런 목적을 이루는 가장 분명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문화적 중요성과 자연적 중요성이--또는 그 양자의 중요성이 모두--있는 지역을 보존하고 알릴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을 확립하는 것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890개의 유산이 등록되어 있으며 각각은 현재와 미래 세대에 중요한 문화적·생태적 보물을 대표한다.
자연·문화유산의 보호를 약속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서명한 나라만이 자국의 유산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릴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남한과 북한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국이며 DMZ가 두 나라 사이의 경계이기 때문에 공동으로 DMZ를 세계유산목록에 올려야 한다. 북한은 이미 금강산을 비롯한 여러 곳에 대해 세계유산 등록지정을 신청한 바 있으며 한국도 설악산을 포함하여 많은 유산을 세계유산의 후보로 올려놓았다. 주목할 점은 금강산과 설악산이 DMZ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서 이 모든 지역은 전세계 시민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생태적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DMZ 국제공원'이 가져올 경제적·정치적 혜택
DMZ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면 남한과 북한은 세계유산의 자문단 및 세계유산쎈터로부터 훈련 및 연구 지원과 기술적 협조, 광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후원으로 남한과 북한은 'DMZ 국제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런 공원은 DMZ 전체를 가로지르는 생태지대를 만들고--이미 남북한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금강산과 설악산의 연계를 재구축할 수 있다. DMZ 국제공원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남북한 등을 포함한 전세계의 수많은 방문객에게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의 터가 되고 그 과정에서 수익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DMZ 국제공원은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안전한 보금자리가 된다. 무엇보다 어느쪽도 DMZ 인근에서 적대적인 군사행위로써 공원이 제공해주는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익을 잃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공원의 창조는 또한 한국전에서 사망한 모든 민간인과 군인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데 다자간 동의를 이끌어내고 DMZ에 배치된 재래식 무기 감축에 관한 남과 북의 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문화재복원 및 보존연구를 위한 국제쎈터(ICCROM) 같은 조직의 중립적인 과학자 및 학자들과 연계하여 공동으로 연구함으로써 DMZ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데 동의하고 DMZ를 연구 보존하는 것이 주요 강대국들의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현재로선 이같은 협력만이 실행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로 남아 있다. 적대는 분명히 생산적이지 못했고 북에 대한 선제군사타격이나 강압적인 경제제제를 계속하는 것은 소득이 없다. 그중 어느 하나의 정책만으로도 생태적인 재난을 초래할 수 있으며 동북아에 더 큰 불안을 확산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과 그 우방들은 교착상태를 인정하고 북한이 오랜 기간 존속할 정도로 안정되어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여 새로운 장기정책을 입안해야만 한다.
어떤 경우든 현재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먼저 DMZ에 대한 환경적·문화적 접근을 통한 신뢰구축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남과 북이 DMZ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하는 데 동의할 수 있도록 북돋아야 한다. 새로운 국제적인 중립 조직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쎈터는 한반도의 주요 적대국들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DMZ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후보로 올리는 데 남한과 북한이 동의한다면 6자회담 당사국들이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DMZ의 환경과 문화보전은 한반도의 정치적 군사적 교착상태를 해결하는 데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번역 유희석/전남대 교수)
2010.10.13 ⓒ Asia-Pacific Journal/한국어판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