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중국의 ‘힘의 외교’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조혜경 / 한림국제대학원대 연구교수
최근 아시아지역의 영토분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외교노선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20년간 저자세로 일관했던 중국의 외교정책이 최근 들어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힘의 외교'로 선회하고 있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석유를 비롯한 각종 천연자원의 보유고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무역거래의 80% 이상이 통과하는 핵심 해상통로인 남중국해와 인도 북동부 접경지역인 아루나찰프라데시 영유권 분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완의 식민지 역사청산에서 비롯된 영토주권 문제에 더해 자원개발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지역의 영유권 분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대립과 갈등이 수십년 동안 지속되어왔다.
강온양면 전략에서 강경 일변도로
중국정부는 영토주권에 관해서라면 어떠한 양보나 타협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처음부터 견지해왔고, 이를 주변국에 각인시키기 위해 무력시위를 채찍으로 활용해왔다. 동시에 분쟁당사국과 영유권 협상을 진행하며 경제교류 강화와 분쟁지역 자원공동개발이라는 당근을 제시하여 주변국과의 갈등을 잠재운다는 양면적 접근을 취해왔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중국의 움직임은 협상을 통한 공동의 이해증진 노력을 포기한 듯하다. 분쟁지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굳히기 위해 군사 진출을 가속화하고 비밀리에 분쟁지역의 독자 개발을 추진하면서 주변국을 자극하고 있으며, 막강한 경제력을 내세워 분쟁당사자를 굴복시키려는 힘의 논리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아루나찰프라데시 영토분쟁은 중국 외교노선의 일정한 변화를 예고하는 첫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2009년초 중국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인도에 제공하기로 한 29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저지하기 위해 ADB를 압박했다. ADB 차관 가운데 6천만달러가 분쟁지역인 아루나찰 홍수예방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ADB 차관을 무산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이에 발끈한 중국은 아루나찰 지역을 인도영토로 간주해온 ADB의 기존 입장을 폐기시키는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ASEAN 국가들과 일본, 호주 등 이웃국가가 중국에 손을 들어준 덕분이었다. 중국정부가 영토분쟁에 다자간 기구를 개입시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아루나찰 분쟁을 양국간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이슈로 만들고, 이웃국가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동원해 인도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자신감에 충만한 중국이 한층 수위를 높인 힘의 외교를 과시한 또다른 사례는 최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본과의 센까꾸(땨오위따오) 분쟁이다. 지난 9월 센까꾸 인근 수역에서 일본이 자국 순시선과 고의적으로 충돌한 혐의로 중국어선 선장을 구속하자 중국은 외교관례를 무시한 초강경 파상공세를 펼쳤고, 급기야는 희토류(稀土類) 대일본 수출 금지라는 극단적 조치를 내렸다. 영토분쟁이 고조될 때마다 무력시위를 비롯한 중국의 강경대응은 늘 있어왔으나 자원을 무기화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위협론 대두와 미국 개입의 확대
결국 일본은 벌금부과라는 최소한의 요식적 사법처리조차 포기하고 중국인 선장을 석방했다. 그러나 일본의 굴욕적인 백기투항에 만족하지 않고 중국은 사죄와 배상까지 요구해 일본에 큰 수모를 안겨주었다. 반면 중국은 올해에만 벌써 수차례 걸쳐 남중국해 시사(西沙)군도 인근에서 조업하던 베트남 어선을 나포 억류하고 국내법을 적용한 처벌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과의 센까꾸 분쟁에서 일본의 국내법 적용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던 중국정부가 시사군도 분쟁에서는 무조건 중국법을 따르라고 고집하는 것에 ASEAN 국가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이처럼 중국은 아시아지역에서 패권경쟁중인 인도와 일본을 굴복시키며 외교적 완승을 자축하고 있지만 최근의 공격적인 행보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위협론을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중국위협론이 과장된 것인지 아니면 오래전 역사적 경험을 미래에 투영한 허위인식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양자관계에서 중국의 '힘의 외교'에 떠밀리고 있는 국가들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중국의 힘을 경계하게 되고, 결국 미국을 지원군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적 선택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영토분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포기하고 아시아지역 영토분쟁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센까꾸 분쟁에서 백기항복한 일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국은 영토분쟁을 보류하고 심해자원을 공동개발하자는 오래된 카드를 일본에 내밀었지만, 일본은 일언지하에 중국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미국으로부터 센까꾸열도가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대상이라는 지원을 받아냈다. 또한 남중국해 영토분쟁에서 미국은 중재자를 자처하며 국제사회의 다자간 접근을 통한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나서 다자간 해결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미국이 배제되었던 아시아지역협력체에 미국의 개입도 본격화되었다.
신뢰 손상과 무역분쟁 부른 자충수
미국은 지난 7월 ASEAN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ASEAN, 한·중·일, 인도, 호주 등 범아시아지역 16개국이 구성한 동아시아정상회의에 공식가입을 결정함으로써 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의 주도권에 맞먹는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중국의 의도와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또한 중국은 센까꾸 분쟁에서 희토류 수출 금지로 즉각적인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이는 세계경제의 중국 의존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자극했고 그 결과 중국의 희토류 독점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희토류라는 이름과 달리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널려 있는 희토류 자원은 중국의 덤핑전략으로 인해 여타의 지역에서는 생산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이를 재가동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희토류를 대체하는 최신기술 개발도 탄력을 받고 있다. 희토류 자원을 이용한 압박외교가 단기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장기적 효력은 의문시된다. 오히려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신뢰는 큰 손상을 입었고 세계 주요국들과의 무역분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공격적이고 위압적인 태도가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대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패권외교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해석이다.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의 압도적인 패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특별한 일도,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보여준 일방주의적 외교행태는 아시아지역협력이 미래가 불투명한 요원한 과제라는 현실적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 한계는 지역협력의 결정적 장애물이었던 영토문제나 정치적 갈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책임있는 강대국이 되려면
최근 또다시 불거진 환율전쟁에서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미국의 일방적인 통화정책의 희생양이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넘쳐나는 해외자금 유입으로 평가절상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이웃국가의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은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등 이웃국가의 국공채를 대량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운명을 같이하는 이웃국가와의 연대가 아니라 오히려 위안화 절상압력의 부담을 이웃국가에 떠넘기는 길을 선택하여 지난 10년간 공들여온 아시아지역의 통화협력이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공허한 슬로건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최근 중국의 ‘힘자랑’을 둘러싼 논란은 아무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시아지역 협력과 통합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힘의 외교가 갖는 한계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의 편을 갈라 경쟁적으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은 미국을 아시아 공존의 파괴자로 지목하고 자신은 그 희생자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지만,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책임있는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 더욱 깊어진 갈등의 골과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0.10.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