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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국전쟁은 끝났는가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 11월 18일 아펙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갑작스러운 '종전선언' 제안은 전쟁이 1953년에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한국인들에게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지난 53년 동안 남과 북을 갈라놓았던 군사분계선이 존재하건만 무엇을 또 끝낸다고 선언한다는 것인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중 연합군이 정전협정에 서명하면서 한국전쟁은 막을 내린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일시 중지하기 위한 군사적인 내용만 포함할 뿐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인 내용은 빠져 있었다. 전쟁의 완전 종식을 위한 정치회담의 개최가 협정의 내용에 들어 있었지만, 이에 근거해 1954년에 열린 제네바 회담은 유엔군과 공산군이 서로의 주장만 떠들다가 끝났고, 더이상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재개를 막는 장치들도 대부분 효력을 잃었다. 남북한의 주요 항구에서 무기 증강을 감시하려던 중립국 감시단은 모두 쫓겨나고, 외부에서의 무기 도입을 금지하는 조항 역시 무효화되었다. 복잡한 지리적 요인 탓에 협정 체결 이후 합의하기로 했던 해상 군사분계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전협정의 무력화는 한반도에서 심각한 위기를 낳았다. 남과 북으로 각각 2km씩 총 4km 의 비무장지대를 두기로 했지만 오늘에 와선 결코 '비무장'이 아니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이어 2000년 6·15공동선언이 있었지만, 1999년과 2002년 두차례의 서해교전에서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한 해상 군사분계선 문제로 빈번하게 발생해온 납북어부 사건은 정전협정 하에서 정부가 국민들의 생업활동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정전협정은 실질적인 전쟁위협을 막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53년 동안 이어져왔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불완전한 정전협정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전협정의 한 당사국인 미국이 한국전쟁의 완전 종식을 선언할 수 있다고 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획기적인 제안이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은 6자회담이 끝나자마자 무력화되었지만, 앞으로의 6자회담에 포함될 한국전쟁의 완전 종식을 위한 논의는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9·19 공동성명이 북한 핵실험 전에 있었다면, 이번 6자회담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 열리기에 더더욱 중요하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앞으로 북미간 협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현재 대북협상을 주장하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1994년 당시 미국은 한국정부와 협의 없이 북한 핵시설을 겨냥한 폭격계획을 추진한 바 있다. 민주당의 압력 하에 부시행정부가 내놓은 획기적인 제안은 역으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최악의 상황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이러한 면을 고려한다면 최근 미국의 한국전쟁 종전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일부의 반응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전쟁의 종식과 그에 이은 새로운 협정의 체결은 어려운 고비를 몇차례 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협정을 위해서는 주한미군, 남북한 군축, 그리고 그것을 감시할 새로운 기구의 구성 등 산적한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과 보수언론의 반응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방안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한국전쟁의 종식과 평화협정의 체결이 한반도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으로 결코 현명한 대응이라 할 수 없다. 지난 53년 동안 한반도에서 '평화'가 아니라 '위기'를 보장했던 정전협정을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이 과연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더해 1973년 미국과 북베트남의 평화협정이 빠리에서 맺어진 뒤 2년이 지나 베트남이 공산화되었다는 점을 들어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이 위험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은 더더욱 비현실적이다. 당시는 미국이 남베트남 정부가 자력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끊어야 했던 상황이었지만, 지금 남북한은 그와 정반대의 국면에 처해 있다. 잘못된 상황비교를 통해 한반도를 다시금 위기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지금 한반도는 위기가 심화되느냐, 평화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모스끄바 3상협정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찬·반탁 논쟁으로 날려버리고 전쟁을 불러온 8·15 직후의 상황이 한반도에서 재연된다면, 그것은 곧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야기할 것이다.

2006.11.28 ⓒ 박태균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