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구제역 대재앙과 MB식 축산 선진화의 종말
박상표 /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이제 구제역 발생은 소강상태에 들어섰는가? 정부는 지난 2월 6일 이후 구제역 의심신고가 단 한건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의심신고가 없으니 발생건수도 '0'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매몰두수는 계속 늘어간다. 2월 들어서도 매일 3~4만마리 가축이 살처분을 당하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정부의 눈가림식 통계 때문이다. 충남에서만 2월 7일 14건, 2월 8일 6건, 2월 9일 6건의 구제역 양성이 확인되었으며, 의심신고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구제역 발생 농장이 10km 방역대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정부통계에서 제외되었다. 2월 13일까지 충남에서 총 202건의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그중 정부통계에 포함된 것은 15건에 불과하다.
실패 예고된 백신정책, 좌충우돌 매몰대책
1997년 구제역 사태로 약 380만두의 가축을 살처분했던 대만은 전국적인 백신을 실시했음에도 2001년까지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후 2007년까지 매년 예방접종을 실시했지만 2009년 새로운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되어 2010년까지 발생보고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구제역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구제역이 종식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정부는 1차 예방접종 후 소는 14일자에 100%, 돼지 성돈(成豚)은 20일자에 70%, 비육돈(肥育豚)은 21일자에 80% 항체가 형성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백신접종을 실시한 지 한달이 지났음에도 구제역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애초에 실패가 예고된 정부의 잘못된 백신정책 때문이다. 농림식품산업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이미 16개 지역에 구제역이 확산된 상황에서 안동·파주 등 5개 지역의 소만을 대상으로 링백신(ring vaccination,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 내에서 실시하는 백신접종)을 하기로 결정했다. 돼지는 소에 비해 1000배나 높은 고농도의 바이러스를 공기중으로 내뿜으며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돼지를 백신접종 대상에서 제외했다가 올해 1월 7일이 되어서야 일부 지역의 씨돼지와 어미돼지에게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결국 1월 13일에는 새끼돼지까지 포함하여 전국 백신을 하기로 뒤늦은 조치를 내렸다.
둘째, 백신 자체의 한계 때문이다. 백신은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해서 발병을 완화시키며, 바이러스 배설량을 감소시켜 전파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다량의 바이러스가 침입할 경우 감염 자체를 막아주지 못한다. 게다가 돼지는 백신에 의한 방어율이 그리 높지 않다. 영국 퍼브라이트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접종 후 10일째 방어율은 19%, 29일째 방어율은 75%에 불과했다. 소는 예방접종 후 28일까지 구제역 임상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돼지는 예방접종 후 42일까지 그 증상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다.
셋째, 정부가 충분한 준비 없이 상황에 쫓겨 예방접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살처분 및 백신접종 방역팀에 의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널리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
넷째, 정부의 일관성 없는 매몰범위 축소 때문이다. 정부는 1월 20일 예방접종 후 14일이 지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감염가축만 매몰하도록 지침을 변경했다가, 1월 27일엔 백신접종을 마친 농장에서는 14일 이전에라도 감염가축만 매몰하도록 범위를 더욱 한정했다. 그 결과 같은 농장에서 구제역이 8차례나 발생해 그때마다 가축을 매몰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로는 자신에게, 허물은 아랫사람에게?
이처럼 구제역 대재앙이 초래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초동방역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치열한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축산농민을 탓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공(功)은 자신에게 돌리고 과(過)는 아랫사람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21일 한 언론은 1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과거 대책으로는 안되고 전문가들과 상의해 조만간 심층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에야 농식품부가 그날 밤부터 급히 회의를 열어 백신접종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전국 백신접종 방침도 대통령이 관계장관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항체를 비롯한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한 뒤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창범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12월 4일부터 백신접종을 검토하여 12월 20일 백신접종에 대해 내부결정을 하고 백신 제조를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기 17일 전부터 농식품부에서 실무적으로 백신접종을 검토했으며, 국무회의 하루 전에 이미 농식품부에서 백신을 제조하라고 지시까지 한 상황이었다. 최근 축산정책관은 문책성 경질을 당하였고, 현재 외부전문가 채용을 위한 일반공모가 진행중이다.
설 연휴가 끝난 2월 8일에도 이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구제역 재발을 막기 위해 방역체계 개선방안과 축산업 선진화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러한 지시는 재탕은커녕 밍밍해져버린 삼탕에 불과하다.
또다시 우려먹는 축산화 선진화방안
지난해 1월 경기도 포천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방역당국은 간이 항체키트에 의존한 잘못된 진단으로 초동방역에 실패했다. 정부는 3월부터 구제역 방역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문제점을 개선하고 축산업 선진화를 위해 가축질병관련 제도개선전담반을 운영했다. 그 결과물은 7월에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방안으로 발표되었으며, 2010년 10월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매뉴얼에 따르면, 구제역 의심신고를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반드시 농식품부에 통보하고 수의과학검역원에 항원검사를 의뢰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안동에서 이 지침이 전혀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초동방역에 실패하고 말았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매뉴얼 탓도 축산농민 탓도 아니다. 바로 도덕적 해이에 빠져 무능한 정부 탓이다. 그런데도 유정복 농식품부장관은 2000년에 만들어진 케케묵은 매뉴얼 탓에 구제역이 확산되었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화살을 돌린 바 있다. 도대체 누가 현역장관도 모르게 2010년 10월에 바뀐 구제역 매뉴얼을 결재했을까 궁금하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구제역 조류독감 등 가축질병 발생을 최소화하고 국내 축산업을 성장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축산업 선진화 전담반을 또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방역체계 개선방안과 축산업 선진화방안은 이미 지난해 써먹었다. 산삼도 아닌데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 것은 곤란하다.
대형 기업농 위주의 농업 구조조정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을 위한 축산업 선진화방안으로 제시된 축산업 허가제는 농업분야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일 뿐이다. 정부는 오랫동안 소규모 농가를 도태시키고 대규모 기업농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축산업 허가제를 한다고 구제역 바이러스가 정부 허가를 받고 농장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사실상 허가제와 다름없는 축산업 등록제가 시행중이다. 축산농가는 적정한 축사면적 확보를 위해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하고, 청결유지 의무를 위해 소독시설을 설치하고 축산폐수배출시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축산업 등록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따라서 허울뿐인 허가제 전환이 아니라, 축산업의 대규모화 및 집중화를 완화하고 지역의 다양한 농장들을 지원함으로써 동물의 건강과 식량안보 및 식품안전을 증진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수의과학검역원·식물검역원·수산물품질검사원 3개 기관을 통합하려는 농림수산식품 검역검사본부 설립방안도 구제역 초동방역 실패를 해결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 이것은 농식품부가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정부조직 개편의 방안일 뿐이다. 초동방역 실패는 농식품부 산하 수의과학검역원과 지방자치단체 산하 가축위생연구소의 업무협조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개편 방안은 수의과학검역원과 가축위생연구소를 통합하고, 인사교류와 교육을 통해 진단 능력을 향상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다.
축산업 기반 붕괴되나… 국민 탓 그만하길
구제역 방역은 살처분이나 예방접종보다 사후관리가 더 중요하다. 예방접종 후 2주마다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임상증상을 관찰하고 정밀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을 색출하고 소독 등 방역조치를 취해야 한다. 매몰지의 2차적인 환경재앙을 막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앞으로 3~5년 동안 예방접종과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더라도 국내 축산업이 예전의 수준을 다시 회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고유가와 국제곡물가 폭등으로 사료비가 치솟고 있고, 한미 FTA와 한EU FTA 등 급속한 농업개방화도 추진되고 있다. 자칫하면 구제역 재앙을 계기로 국내 축산업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우려도 높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모든 책임을 농민 탓으로 돌리고 있는 이명박정부가 자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들춰내려는 이명박정부에 조선시대 문신 이경석의 〈사직기양우역제문(社稷祈禳牛疫祭文)〉 한 대목을 보낸다. 인조 임금은 1637년 우역이 크게 유행하여 농사와 축산이 엉망진창이 되자 사직에 제사를 지내며 다음과 같이 고했다. "죄는 내게 있고 백성에게 있지 않으니 차마 백성들로 하여금 구덩이를 메우고 함정에 빠지도록 하겠는가?"
[참고자료]
1637년 1월, 인조는 병자호란의 패배로 삼전도(三田渡, 현재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 부근에 있었던 한강 나루터)에서 청태종에게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린 굴욕까지 당한 후였다. 그해 겨울도 올겨울만큼이나 혹한이 몰아쳤다. 1636년부터 시작된 청나라 군대의 침입으로 우역(牛疫)이 조선으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직(社稷)은 곡식신(社)과 토지신(稷)을 일컫는 말로 보통 도성의 서쪽에 사직단을 세워서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냈다. 제문을 지은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은 왕족 출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대사헌으로 인조를 수행하여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이로, 1637년 삼전도의 굴욕을 기록한 삼전도비의 비문을 지었다. 다음은 그가 남긴 〈사직기양우역제문(社稷祈禳牛疫祭文)〉의 번역이다--필자.
안타깝게도 내 덕이 없어 화를 만난 것이 혹독했도다. 큰 난리 이후 자연재해가 그치지 않다 하늘에 제사드려 겨우 그쳤는데, 우역이 다시 발생하여 사방에 만연하기를 한해, 두해, 요즘이 극성을 부려 소란 소는 다 죽을 지경에 빠졌는데 구할 약이 없도다. 소 없이 어찌 백성이 밭을 갈며, 밭 갈지 아니하면 식량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백성이 슬프고 나 또한 가시에 찔린 것처럼 쓰라리도다. 바라노니, 가을에 신령의 선물이 있기를. 계속 이런 재앙이 있어 백성이 장차 밭두둑만 바라보는 것은 나로 인한 죄고, 나로 하여금 죄를 얻게 할 것이다. 재앙이 사람과 가축에 두루 미쳐 희생용 짐승과 기장을 드릴 방법이 없게 되니 마음이 긴박하도다. 죄는 내게 있고 백성에게 있지 않으니 차마 백성으로 하여금 구덩이를 메우고 함정에 빠뜨리도록 하겠는가? 빛나는 신명이시여, 백성의 임금이 되어 정성을 다해 기도하나니 거룩한 곳에서 길일을 잡아 공손하게 좋은 제물을 바치노니 원컨대 남모르는 도움을 내려 백성들을 구활해주소서."
李景奭 《白軒先生集》 卷之十六, 文稿 應製錄 上
(신동원 《한국마의학사》, 한국마사회마사박물관 2004, 103면, 번역은 재인용)
2011.2.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