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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산업재해는 국민건강권의 문제

최명선 /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993년 미국의 유명한 TV만화 〈씸슨가족〉의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태국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공장주가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지 모른다"며 공장문을 잠그고 외출한 탓에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대형 참사였다. 이를 추모하며 시작된 행사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캐나다, 대만 등 13개국에서는 법정기념일이 되었고, 110여개국에서는 공동행동을 진행한다.

 

우리 현실은 어떨까. 멀리 볼 것도 없다. 2008년 경기도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당했지만 사업주는 벌금 2000만원만 내고는 끝이었다. 4대강공사에서도 지금까지 2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국토해양부장관이 나서서 "산재사고는 노동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지난가을에도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에서 1600도가 넘는 용광로 작업중에 29살 청년이 사망했다. 10만원짜리 안전펜스 하나만 있었어도 그 청년은 살았을 것이다. 당시 한 조각가가 "그 쇳물로 못 하나도 만들지 말라. 그 쇳물로 청년의 조각상을 만들어 어머니가 가끔 찾아와 어루만지게 하자"는 시를 쓴 것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용광로는 여전히 끓고 있다.

 

현장의 고참 노동자들은 "예전에는 사망사고가 나면 반나절은 작업이 중단됐는데, 요즘은 한두시간 지나면 바로 작업을 재개한다"며 개탄한다. 이것이 산재로 한해 2500명이 죽고 9만명이 다치는,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인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서 노동자의 산재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요즈음 일본 원전사고로 온 국민이 방사능 걱정이지만, 지금까지 발전소 현장에서 몇년째 정비작업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엑스레이 촬영기사 등 병원 노동자, 항공승무원 노동자, 비파괴검사 노동자의 방사능 노출에 대한 문제제기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직업병은 일부 노동자의 불편한 현실?

 

과거 건설현장이나 조선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석면은 수십년 잠복기를 거쳐 폐암 등을 유발하는 '소리 없는 살인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몇년 우리 사회도 석면의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해서, 학교건물을 지을 때는 지붕을 씌워 피해를 예방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재건축 공사현장의 포클레인 기사, 건물해체 설비작업 노동자, 자동차라인이나 지하철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문제는 부각되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발암성물질에 일정기간 노출된 노동자에게 건강진단을 제공하는 '건강관리수첩' 제도가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를 발급받은 건설노동자는 8명에 불과하고, 노동조합에서 자체 조합비로 특수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하루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많은 노동자를 만난다. 지하철 승무원 노동자의 잦은 사고로 인한 공황장애, 각종 전자제품 제조 노동자가 벤젠 등에 의해 걸리는 백혈병과 혈액암, 식당의 급식조리사 노동자의 화상과 피부질환, 편의점이나 커피점 등에서 종일 서서 일하는 유통써비스 노동자들의 하지정맥류, 은행과 백화점 고객쎈터 노동자가 고객 감동과 미소 강요로 앓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등 직업의 수만큼 직업병도 다양하다. 더욱이 최장 노동시간과 만성적인 구조조정이 겹치면서 우리 일상은 그야말로 '과로사회'의 단면으로 채워져 있다.

 

산업재해가 방치되는 이유

 

이처럼 만연한 산업재해가 방치되는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이 일부 노동자의 문제라는 왜곡된 시각이다. 현재 산재통계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승인된 산재건수가 기본이다. 그러나 각종 정부 용역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정부 통계의 12배에서 30배에 달하는 100만명에서 278만명의 산재가 은폐되고 있다. 지금의 산재예방정책은 빙산의 일각 위에 세워진다 하겠다.

 

다음 원인은 허울뿐인 각종 안전보건 법제도와 기구들이다. 최근 건강검진 대행기관이 사업주와 결탁하여 검진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졌다. 현장의 안전점검 대행기관들의 현실도 다르지 않아, 중소사업장의 건강검진과 안전점검은 대행기관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또한 유해위험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의 경우, 각종 점검과 사업에 노조나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실질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는 비정규 하청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업무를 보는 원청노동자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사업장의 원하청 고용구조나 중소사업장의 현실은 외면한 채 자율안전만 부르짖는 각종 법과 제도가 현장에선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법제도가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1963년 제정된 산재보험법은 당시 7개의 발암물질을 규정한 이래 단 한번도 개정된 바 없다. 그러다 작년에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자체 조사와 문제제기가 있자 부랴부랴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발암물질에 대한 법적 규정이 미비하고, 사업장에서는 작업환경 측정이나 안전교육도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각종 직업성 암이 발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46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수년간 잠복기를 거치는 직업성 암에 대해, 일했던 당시가 아니라 ‘이미 깨끗하게 준비된 현장’에서 역학조사를 하고, 노출수치가 안 나온다며 삼성 노동자 16명의 산재신청을 전원 불승인했다. 그 와중에 투병중이던 노동자 6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MB정부 들어 산재보상 문제가 역주행하고 있다. 직업병에 대한 산재불승인이 계속 증가하고 추세이며, 뇌심혈관 질환의 경우 10건 신청에 9건이 불승인 판정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도 근로복지공단은 작년 1조 2천억의 흑자를 자랑했다.

 

안전한 일터 없이 행복한 삶은 없다

 

우리 대다수는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을 첫째로 꼽는다. 가구당 매월 21만원을 암 질환 관련 민간 생명보험료로 낼 정도다. 그러나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 사망 노동자의 80%가 직업성 암인데도 그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터의 발암물질에는 손도 못 대는 것이 현실이다. 일터에서 생기는 사고나 직업병은 한 집안을  파탄시키는 폭탄과도 같다. 그 가족과 일가친척까지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하는 산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최근 정치권에서 유행처럼 번져가는 복지 논쟁은 참으로 허망한 말잔치에 그칠 것이다.

 

2011.4.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