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김정일 방중과 두가지 걱정
김근식 / 경남대 교수, 정치학
김정일 위원장이 또 중국을 방문했다. 일년 사이에 벌써 세번째다. 방중의 정치적 의미와 경제적 성과, 향후 한반도 정세와 북한 개혁개방 전망 등 이러저러한 평가들이 백가쟁명으로 제출되지만, 필자는 무엇보다 걱정이 앞섬을 부인할 수 없다.
첫번째 걱정은 날이 갈수록 한반도 정세에 외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냉전시기 상대방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기 위해 외세와 손잡고 그들의 힘에 의존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잘 알고 있다. 북한에 맞서기 위해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에 의존적이었고 경제발전과 안전보장을 담보받으려 했다. 한미동맹에 맞서 북한 역시 소련과 중국에 손을 벌리고 도움을 받아야 했고 한반도는 어느새 남북이 아닌 외적 요인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었다. 냉전시대 기승을 부렸던 한·미·일 남방 삼각동맹과 북·중·소 북방 삼각동맹이 동북아 대결의 최전선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가 부른 외세의존형 대결구도
다행히 탈냉전 이후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이 본격화되고 민족화해가 증진되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반도 문제는 조금씩 남북이 주도하는 형국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조성한 화해협력의 한반도 정세는 그해 말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으로 극적인 북미관계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6자회담이 교착중이던 2005년 당시 한국은 대북특사의 방북으로 6·17 면담을 성사시켜 6자회담 재개를 유도해냈고 결국 9·19 공동성명이라는 북핵문제의 답안을 도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남북관계 진전과 민족화해의 증대는 곧 한반도 문제에 남북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필요조건이자 근본토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잦은 방중은 북한이 중국에 한층 가깝게 다가가고 있으며, 이는 곧 북중협력 강화와 함께 불가불 대중(對中) 의존이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지지와 함께 경제적 지원과 군사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연히 북한은 중국과 더욱 긴밀해지고 남북 주도가 아닌 북중 조율의 의사결정이 앞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명박정부 이후 남북관계 악화와 민족화해 퇴행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외부의 힘이 증대되고 있음은 비단 북중관계에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한국 역시 대북 지렛대를 포기한 채 강경과 대결에 집중함으로써 미국에 매달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천안함 이후의 사태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미국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매번 미국 항모가 서해로 들어오고 미군과 함께 군사훈련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의 안보를 안심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군사적 대결과 긴장 완화도 이제 북한은 중국과, 한국은 미국과 의논하며 도움을 청해야 하는 궁색한 외세의존적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체제위협 방어하려는 북중연대 전략
두번째 걱정은 북한의 향후 전략 모색이 한반도 긴장 고조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데서 나온다. 남북관계 악화와 북미갈등 지속 속에 김정일 위원장은 체제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아무리 보수적인 정권이라도 이렇게까지 남북관계가 역행하리라고는 아마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남북관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던 최승철 부부장이 철직(撤職)당한 것은 북한의 당혹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롭게 조성된 남북관계 파탄 국면은 한미동맹과 연계되어 결국 북핵문제 악화와 북미대결 지속으로 이어졌고, 이는 김정일 위원장으로 하여금 새로운 국가전략을 궁리하게 하는 대외적 환경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야 하는 대내외적 필요성이 코앞에 와 있는 지금, 김정일 위원장은 기존에 채택했던 국가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변화된 환경에 맞는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행여나 그 새로운 모색이 북중연대를 통한 생존전략으로 기우는 것이라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경제협력과 지원확대 수준을 넘어 북한의 안보까지 중국에 의존하는 국가전략이라면 이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에 매우 불행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북의 중국 의존이 우려스러운 까닭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때까지 북한은 안전보장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고 경제지원을 한국으로부터 받아내려는 일관된 대외전략을 추구해왔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에 대북적대정책 철회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일관되게 요구했고 이를 압박하기 위한 유력한 방도로서 핵 카드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대북포용정책 이후에는 경제협력과 지원을 남측에 의존하려는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같은 값이라면 남북관계에 의존해서 경제회복을 꾀하려는 전략이었다. 10·4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 개보수를 제의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중국이 신의주-평양 간 도로 개보수를 제의했지만 거절했다면서 남측의 도움을 선뜻 수용했다. 경제협력을 중국보다 한국과 하겠다는 북한의 전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악화되면서 더이상 남측에 경제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북미관계 역시 교착과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하면서 북한의 안보를 미국만 바라보며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G2로 부상한 중국에 안전보장을 의탁해도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지난해 천안함 이후의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그런 판단으로 기울었을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은 더이상 미국과의 협상에 목매지 않고 북미관계 정상화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 북미 적대관계를 상수로 놓고 당분간 중국을 통해 북한의 안보를 챙기려 한다면 이는 결국 한반도 정세의 냉전적 회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경제지원을 남측에 기대하지 않고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려는 전략 역시 장기적으로 한반도에 부정적 정세를 형성하게 된다. 2009년 하반기에 북한은 조문특사까지 보내서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는 등 연이은 대남 유화조치를 통해 이명박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명박정부의 완강한 고집과 기다림의 전략에 의해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이후에 북한은 이명박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채 강성대국 진입을 위해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중국에 대폭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원 개발과 인프라 건설뿐 아니라 다양한 경제협력이 중국에 쏠리게 되면 향후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그다지 필요성과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의 경제전략은 통일을 고려하면 더더욱 걱정스러운 일이다.
남북관계 파탄, 한반도에 다시 외세를 부른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이 안보와 경제를 모두 중국에 의존해서 생존을 모색한다면 이는 당분간 북미협상과 북미관계 개선이 불필요하게 되고 아울러 남북관계 개선도 그리 절실하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곧 북미갈등과 남북대결이 장기화되고 구조화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긴장고조와 정세불안에 기여할 뿐이다. 이명박정부의 기다림의 전략에 북이 굴복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연연하지 않는 기다림의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은 이래저래 한반도에 걱정거리와 한숨소리만 들리게 한다. 그리고 그 걱정의 근본원인은 남북관계 파탄에 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강경책으로 남북관계가 완전히 망실되면서 외세가 주도하는 한반도가 되어버렸고, 북한은 한국 및 미국과 관계개선을 포기한 채 중국의 품에 안기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걱정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리의 개입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이명박정부에 이를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2011.6.1 ⓒ 창비주간논평